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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31. 2020

[DAY113(2)] 와이너리에서 사는 닭과 공작새

지수 일상 in Porto


Taylor's Port. 테일러의 와이너리라고 부르는 이곳은 포르투에서 잘 알려진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의 눈을 사로잡은 광경, 와이너리 아니랄까 봐 덩굴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지금은 여름이 오지 않아 열매가 아직 영글어지지 않았지만 한창 더운 여름이 되면 얼마나 탐스럽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을까 생각하니 아직 입구였지만 또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바로 포도가 잘 열렸는지 확인한다는 핑계 삼아 포르투에 또 올 수 있기 때문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리셉션으로 가니 입장료를 지불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할 수 있었다. 직원분이 너무나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셔서 어려운 것은 없었고 암스테르담에서 방문했던 반 고흐 미술관에 이어 두 번째로 듣게 되는 오디오 가이드라 얼른 들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과연? 조금 구식의 오디오 가이드라 이것저것 만지면 투어 입구 쪽으로 향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선 끝없이 보이는 수많은 오크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태어나서 와이너리라고 하면 경북 청도에 있는 동굴 와이너리밖에 가보지 못했던 나는 이렇게 큰 규모도 놀라웠지만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오크 향을 제대로 맡을 수 있어 정말 신기했다. 와인 특유의 냄새도 약간 나면서 오크 나무 냄새와 섞여 나른하면서도 향긋한, 기분 좋은 느낌이 정말 이 공간 전체를 사로잡는 듯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오크통을 직접 보다니? 이제 투어의 시작이었지만 코로 한번 와이너리를 경험하고 나니 얼른 미각으로 테일러 와이너리만의 와인을 맛보고 싶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편도, 그렇다고 적은 편도 아니었지만 혼자 온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동행과 함께 이곳을 찾은 게 괜히 다행이었다. 앞서 열 맞춰 세워져 있던 일반적인 오크통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나게 큰 오크통이 입구로부터 제일 먼 끝에 있었는데 마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시그니처 같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그리고 순서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웠기에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다른 사람들을 대신 찍어주었다.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찍어주다 보니 느낀 점은 실내가 너무 어두워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으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눈코입 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 것이다. 휴 역시 사진기사가 모델보다는 마음이 편하지?



테일러스 와이너리를 선택한 다양한 이유 중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한국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이곳을 선택했는데 설명 수준이 거의 박찬호 급이었다. 분명 이쯤 되면 끝날 것 같은 가이드의 설명이 아무리 듣고 들어도 끝나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제대로 찬찬히 들어보자며 중간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벤치에도 잠시 앉아가며 집중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나와 동행의 혼은 빠져버렸다. 결국에는 다 듣지 못하고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살려주세요? 터덜터덜 앞으로 가다가 Wine Test라는 표지판을 보고 나는 게임에서 부스트 아이템을 먹은 캐릭터처럼 앞으로 질주를 했다. 테스트 공간은 수풀이 잘 정돈되어 있는 작은 정원에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야외에서 시음을 할 수 있었는데 날씨가 좋아서일까 그저 앉아만 있었는데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졌는데 바로 마당에서 시음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닭과 공작새가 지나다닌다는 것이다. 아니 왜 와이너리에 이 친구들이 있는 거죠? 그 둘의 존재도 웃겼지만 둘의 조화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



거의 시음하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처럼 미소를 머금고 시음을 했는데 너무나도 한 입정도만 줘서 그런지 정말 아쉬웠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빈티지)을 한 잔씩 시음한 나는 너무나도 감질맛 날 정도로 적은 양에 와인 한 병을 사가야 겠다며 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나의 수화물이 기내 캐리어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내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액체의 제한이 100ml밖에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해 마음 같아서는 오크통 통째로 한국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휴... 요 조그마한 미니 빈티지 와인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딱 두  입 정도면 끝날 것 같은, 이곳에서 감질나게 마셨던 것처럼 말이다.



와이너리 투어를 다 하고 나와서 동행과 나는 저녁까지 함께 먹기로 했다. 원래는 와이너리 투어만 함께 하고 찢어지려고 했던 기존 계획과 달리 둘이 너무 말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분도 여느 때처럼 내가 더 어린 경우였는데 처음 만난 사이지만 그래도 나를 동생처럼 잘 챙겨주려는 분이라 그런지 서로가 살아온 배경 환경이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흐름이 끊이지 않았다. 동행이 알아온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 찾아갔지만 브레이크 타임이 조금 남은 시간이라 강 가에 앉아 조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강가라 그런지 세지는 않아도 바람이 꽤 불었는데 따뜻한 노을과 함께 불어오는 조금은 서늘한 바람이라 딱 적당한 온도였다. 푸른 강을 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펑 뚫리는 것 같아 멍하게 물결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일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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