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을 쓸 시간이 많이 줄어든 걸 느끼고 있다. 매일 생각하는 글 쓰는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마음은 아침에 출근하는 피곤함에 휘발되기 일쑤다. 작가의 길을 가면서도, 늘 함께 붙어 다녔던 글 쓰는 사람의 이미지는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만큼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은 습관으로 이이지는 선순환의 일상을 겪어야만 한다. 한때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몽롱한 뒤뇌를 시원한 세숫물로 헹궈 내면서 글을 썼다. 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기 위해 선택한 정신이 아직 꿈나라에 머무른 시기에 써 내려가는 글의 맛은 남달랐다.
그렇게 글을 지속해서 써온 나에게 내려진 보상은 순간의 시원한 소낙비와도 같았다. 책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책이라면 그렇게도 싫어하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내가 쓴 책의 실물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맞이했다. 내 이름으로 나온 책 한 권을 내 앞에 내놓고 책상에 앉았을 때의 기분은 그걸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도 그 일부의 사람 구분에 속했다는 기분이야말로 어떠한 성취감과도 바꾸기 힘들었다. 그렇게 아침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첫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온 지가 벌써 2년이 되었다.
첫 책이 출간된 후로 한 권의 책을 더 펼쳐내면서 나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로 불릴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한 권 두 권 출간하면서 나에게 게으름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쉽게 써질 것만 같았던 글이 이제는 머릿속에서부터 생각으로 글을 속도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생각이 많으면 공부가 잘 안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복잡한 머리로는 도무지 좋은 글을 쓰기가 힘들다. 사실 좋은 글의 정의를 나 혼자서 내릴 수는 없다. 글이 좋다는 것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일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될 작가 한 사람의 인생을 쏟아 넣은 유일 무이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써 놓은 글을 누군가에게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나씩 고쳐 나가면서 더 좋은 글로 발전하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본다면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글이라는 게 자신만의 색깔이 배어 있지 않으며 상점에 쌓여 있는 여러 책들과 비교할 만한 큰 가치를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 오랫동안 써온 글이더라도, 나만의 모양새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전문 서적이나, 정보 또는 의사 전달의 목적에만 한정되어 있는 재미없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글의 의미를 머릿속을 비우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춤을 추고, 누군가의 평가를 바라는 글이 되지 않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깨끗하고, 마음껏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에서 나오는 글을 손가락으로 뽑아내는 것이 글 쓰기의 기본적인 정신상태다. 마치 춤을 추더라도 리듬에 몸을 맞긴 사람과, 배운 춤을 그대로 따라 하기 바쁜 뻣뻣한 춤사위는 바라보는 사람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과도 같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산된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나는 그저 나오는 글을 그냥 흐르게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책으로 펴낼 글이라면 수정하고 다듬으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