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 프랑스어 관용구다. 황혼을 뜻한다. 석양이 보이는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내가 키우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간이다. 전복의 시간이다.
고교 1학년 때 그 시간을 처음 만났다. 창가로 노을이 보였다. 회의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교실에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자퇴하자. 오래된 생각이었다. 실천이 어려웠다. 이제는 칼을 뽑자. 배수진을 쳤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사물함으로 갔다. 짐을 몽땅 챙겼다.
누군가 물끄러미 보았다. 오래된 친구였다. 별말이 없었다. 외면하고, 창밖을 살폈다. 교문 앞에 두 명 정도 서성였다.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사라지자, 창밖으로 책가방을 내던졌다. 높이가 별로 안 높았다. 나이스! 마음으로 외쳤다. 어설프게 첩보 작전을 흉내 냈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신발을 꺼냈다. 강산 잘 가.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대충 인사를 받았다. 곧장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화단에 떨어진 책가방을 잽싸게 주웠다. 교문 밖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도 멈추지 않았다. 해방감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더 달렸다. 쭉 달렸다.
그날 용기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다. 학교라는 닭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이라는 주삿바늘에 살처분되었을 것이다. 그날 탈출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계가 되었다. 경쟁 이데올로기의 부속품이 되었을 것이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다 수명이 다했을 것이다.
다음날 가출을 했다. 딱히 대책은 없었다. 돈도 없었다. 그냥 걷기만 했다. 반나절을 굶었다. 순창에서 친구가 올라왔다. 분식집에서 오므라이스를 얻어먹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새삼 느꼈다. 동네를 같이 걸었다. 해가 저물었다. 건투를 빌며 헤어졌다.
밤이 깊었다. 한 상가에 들어갔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신문지를 깔았다. 바로 누웠다. 잠이 금방 들었다. 다음날 시립도서관 화장실에서 대충 씻었다. 열람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쌓아놓고 마구 읽었다. 새삼 학교 수업보다 유익했다. 마음도 편안했다.
주유소로 첫 출근을 했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해병대 출신의 사수가 일을 안 알려줬다. 첫날은 분위기만 느끼라고 했다. 퇴근 무렵 차들이 몰려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손님을 받았다. 기름도 막 넣었다. 사고가 터졌다. 하루 만에 잘렸다.
다음은 전단지였다. 장소는 인후동 위브어울림 아파트. 외관이 휘황찬란했다. 잔뜩 위축된 상태로 경비원을 피해 다녔다. 한 집 앞에서 주저앉기 전까지. 온 가족의 도란도란 대화가 고스란히 들렸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는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눈물이 터졌다.
하루는 강원도 원주였다. 한 찜질방에서 이틀 연속 잠만 잤다. 머리가 맑아졌다. 출가를 결심했다. 강산 스님! 법명도 그대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PC방에서 가까운 사찰을 검색했다. 출발은 화창했는데, 도착은 까마득한 밤이었다. 다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한번은 청소년 쉼터였다. 금암광장 근처였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등록 절차를 밟았다. 색깔이 확실한 동네 형들을 만났다. 경찰서를 들락날락한 무용담, 고아라서 포기한 순정, 검정고시 합격을 위한 사투, 저마다의 사연에 낭만과 슬픔, 탄식이 있었다.
정착은 고시원이었다. 완산경찰서 인근 웰빙고시텔. 보증금 때문에 원룸은 어려웠다. 좁았지만, 소중한 안식처였다. 있을 것은 다 있었다. 공용화장실도 불편하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마다 격주로 카레와 찌개가 나왔다. 그때마다 밥을 정말 게걸스럽게 먹었다.
술 담배를 시작했다.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다. 나는 매번 빈손이었다. 공짜 술을 많이 얻어먹었다. 배려를 받은 셈이다. 담배는 일찍 접었지만, 술은 체질에 맞았다. 다만 초기에 잘못 배웠다. 필름이 여러 번 끊겼다. 한번은 놀이터에서 정신을 잃어 경찰차를 탔다.
잠깐 학교에 복귀했다. 칠판 구석에는 나의 복귀 날을 D-day로 삼은 낙서가 있었다. 별로 안 친했던 학우들까지 격하게 반겼다. 한 선생님은 초년에 나처럼 방황해야 말년이 편하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수업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나의 총량은 어마어마했다.
다시 학교를 떠났다. 역마살은 여전했다. 전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버스 안에서 긴 사색에 잠겼다. 인천 영종도의 이모네 다락방.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다락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가끔 바다가 보이는 공원에서 산책도 했다. 방파제 너머의 바다 냄새가 힐링이었다.
힘든 날이었다. 부끄러운 날이었다. 죄와 벌이 많았다. 선악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지금도 괴로운 까닭이다. 후회는 없다. 방황은 길었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가출 청소년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이 되기까지, 모든 날이 점과 선의 연결이었다.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삶이라는 미완의 책에서, 이전 장을 덮기도 전에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죽는 날까지 반복해서 읽는 페이지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해방의 시간이었다. 추앙의 시간이었다. 나를 옥죄는 사슬을 끊어내고, 진정한 자아와 악수했다.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 때, 카이사르가 한 말이다. 나 또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다.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할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반란에 실패한 노예가 될 것인가. 숙고 끝에 전자를 택했다.
처음 만난 개와 늑대의 시간. 나는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다. 황혼의 언덕 위에 똑바로 섰다. 그 전복의 시간, 찰나의 순간에 나는 석양을 향해 주사위를 힘껏 던졌다. 자퇴를 결심하고 창문 밖으로 책가방을 던진 순간, 내 인생은 달라졌다.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