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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산 Jan 24. 2023

개와 늑대의 시간 (2)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의 귓가에 노예가 한 말이다. 승리의 영광에 도취하지 말라. 신의 영광을 넘어서지 말라. 인간의 필멸을 직시하라. 너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다. 깨달아라. 쉼 없이 속삭였다. 로마 개선식의 오랜 풍습이었다.


죽음을 기억하는 일. 곧 삶을 직시하는 일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몰락이다. 월계관을 쓰고, 백마를 타고, 시민의 추앙을 받아도,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작아진다. 나를 돌아본다. 주변을 돌아본다. 삶이 건강해진다.


건강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죽음을 기억하는 일과 세상에 대한 겸손이 따로 놀았다. 그냥 정말 죽고 싶었다. 두 번째로 만난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석양을 향해 주사위를 힘껏 던질 때와는 달랐다. 폭풍의 언덕이었다. 칼날 같은 바람에 온몸이 베였다. 휘청였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간헐적으로 방문했다. 간단한 상담이 많았다. 그날은 특별했다.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다. 격리를 조언받았다. 대답 없이 진료실을 나왔다.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눈물이 막 터졌다. 숨이 확 막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무너졌다.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 그때는 몰랐다. 낙인과 같았다. 입원은 마지노선이었다. 원망의 꼬리물기가 이어졌다. 가정과 학교,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다. 마라톤 수준이었다. 모든 원망은 자책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내가 싫었다. 나를 죽이고 싶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격언을 햄릿에서 부활시켰다. 신의 권능에 도전하지 말라는 교훈을 죽느냐 사느냐, 실존의 문제로 확장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햄릿은 늘 휘청였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생각병이었다. 미친 연기로 이어졌다.


철학자 자크 라깡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욕망 이론으로 햄릿을 재해석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딱 햄릿이었다. 햄릿은 타인의 욕망에 휩쓸렸다. 아버지의 복수에 시달렸다. 어머니의 재혼에 우울했다. 숙부의 패륜에 분개했다. 연인의 방황에 동조했다.


나 또한 그랬다. 욕망의 가지치기에 실패했다. 타인의 욕망을 따랐다. 타인의 시간에 살았다. 가정불화가 깊었다. 좋은 장남을 연기했다. 학교는 부조리했다. 착한 학생을 연기했다. 일상에서 가면을 썼다. 외줄 탄 광대와 같았다. 위태로운 줄 위에서 늘 긴장했다.


탈이 났다. 마음의 병이었다. 누적된 연기의 한계였다. 요릭의 해골을 든 햄릿의 심정이었다. 한때는 친한 광대였지만, 어느새 무덤가의 해골이 된 요릭이었다. 모든 것이 덧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확 넘어갈 힘이 없었다. 쭉 허우적거렸다.


살자. 한번 살아보자. 짐을 쌌다. 무거운 걸음으로 병동을 찾았다. 입구부터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공간은 환했는데, 눈앞은 캄캄했다. 두려웠다. 도망쳤다. 접수과정에서, 생각이 변했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라는 편견에 스스로 패배한 것이다. 첫 시도가 실패했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성공했다. 복도에서 독방까지, 온통 백색의 벽지였다. 모든 풍경이 강렬했다. 신입을 관찰하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애써 담담한 척 걸었다. 창문은 전부 두꺼운 창살로 막혔다. 화장실 천장까지, 모든 곳에 CCTV가 있었다.


낯선 기분은 얼마 안 갔다. 시간이 약이었다. 익숙해졌다. 똑같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인간군상이 다양할 뿐이었다. 매번 환자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저마다의 사연이 강렬했다. 나는 약과였다. 옆 건물에는 도서관도 있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 글도 끄적였다.


특별한 치료는 없었다. 주기적인 상담과 항우울제 복용이 끝이었다. 밖에 있을 때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가정과 학교에서 격리된 사실이 핵심이었다. 격리된 공간에서 지난날을 복기했다. 내게는 송곳 같은 날이었다.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발작의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삶은 복잡했다. 애증의 관계였다. 내부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외부적으로는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문제는 폭력과 폭언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어머니에게 향했다. 어머니의 폭언은 자녀에게 향했다. 가슴에 한이 쌓이고 쌓였다. 폭발 전 단계였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엉망이었다. 훗날 판사가 되겠다는 놈은 학교폭력을 당하는 짝꿍을 방관했다. 열심히 문제집만 풀었다. 학생 인권과 충돌하는 시기와 지점이 아니었는데, 교권은 바닥을 쳤다. 교사가 교실의 통제권을 잃었다.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였다.


가정에서의 불화, 학교에서의 모순은 나를 병들게 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참기 어려웠다. 알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했다. 알 속에서 껍질을 작은 부리로 쉼 없이 균열 냈다. 잃을 것은 무기력이라는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나침반이었다.


날개를 폈다. 관성의 둥지에서 박차고 비상했다. 대가는 컸다. 영원한 상흔이 남았다. 고교 입학식만 3번 했다. 자퇴와 재입학을 2번씩 반복했다. 5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의지의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의 시간에서 혼자 씨름했을 뿐이었다.


입원 생활. 외관상으로는 감옥이었다. 다만 사색이 있는 감옥이었다. 총 한 달 하고 보름에 가까웠다. 충전의 시간이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았다. 두 번째로 만난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전에는 낙인이었다. 이제는 훈장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웠다. 위기의 순간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읊조리는 습관을 익혔다. 거친 비바람에도, 검은 그림자에도 무릎 꿇지 않는 힘이었다. 언젠가 통과할 개선문의 끝자락이 나락이라도, 좌절하지 않는 힘이었다. 낙관하는 힘이었다.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직시하는 일. 평생의 숙제다. 로마가 개선장군에게 겸손함을 주문한 까닭이다. 셰익스피어가 실존의 문제를 환기한 까닭이다. 라깡이 욕망의 가지치기를 제안한 까닭이다. 아직 오지 않은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석양의 늑대를 피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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