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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압살롬 Jun 30. 2023

L2: 사랑하는 친구 A에게

오빠 오늘 상담에서 너무 재밌는 얘길 들었어.


우리가 왜 친구일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가 오래도록 서로의 뒤를 지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달까. 나는 내게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나의 행동이 그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라도, 나를 믿어주는 오빠가 있으니 여하의 것들은 이제 아무렇지 않아져 버렸어. 그리고 오빠의 그런 맹목적인 신뢰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내가 느끼는 사람들과의 이질적인 거리감을 더 깊게 만들기도 해.


우리가 친구가 되기 전에는, 내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 그리고 그런 뭉근한 적의와 비난 속에서 나름대로 상처받는 일이 많았던 거 같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멈출 수 없었던 선택과 몸짓들, 또 그만큼 불어나던 미심쩍은 평가들 속에서 좌절한 날들도 많았었어.


그래서 오빠를 처음 봤을 때를, 우리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영원을 약속하기 전이던 그때를, 또 종교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이전의 그날들을 가끔 떠올려보곤 해.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애정 결핍에 걸린 사람의 그것처럼 낭비하기 전에, 나는 오빠를 친구로 맞아들이고, 오빠가 주는 공짜 같은 친절을 양껏 또 넘칠 만큼 내 것으로 받아들였어. 의심 없이 주어지는 호의와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아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였지. 내 십 대가 그러했듯 나의 이십 대도 치열하기만 할 뿐 무정한 것이겠구나 체념할 즈음에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된 거야. 엄청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ㅎㅎ.


오빠는 가난 때문에 나는 경쟁 때문에 오빠와 내 가슴에 서려있서릿발 같은 슬픔.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랑의 비참함 때문에 쉽게 허용할 수 있던 가벼운 밤들. 어쩌면 그런 켜켜한 추억마저 성품의 일부로 사랑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었던 거야.


사랑의 지나친 정열이 지난날의 외로움의 깊이를 보여주듯이, 우리가 서로를 지나치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한 지독한 불신 때문이었나 봐.


상담자는 계속해서 상처가 많았던 내 삶이, 또 그 상처를 짓씹기 위해 한 우리의 과장된 몸짓들이, 어쩌면 누군가를 해치는 병일지 모른다고 해. 우리가 원해서 알게 된 삶의 책략이 아님에도, 우리가 원해서 학습하게 된 모진 마음이 아닌데도,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묻어있던 모난 심성에 대한 해소할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 그리고 이건 여전히 무겁고 또 무거워.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할 때면, 책상에 앉아 답 없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할 때면 말이야, 행복한 사람들 사이의 화목한 환대보다, 불행한 사람들 사이의 절박한 신뢰가 더 아름다운 면이 있다는 믿음이 생겨. 솔못 위를 날아가는 백로의 날갯짓에서 보이는 불안이, 그로 인해 장담할 수 없는 내일이, 저들의 한적한 날갯짓을 더 처연하고 아름답게 돋보이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난 항상 깨끗한 찻잎 같은 우정을 꿈꿨지만, 진창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아주는 우정을 알고 있노라 하고 자랑할 수도 있게 되었어.


오늘 상담사에게서 가 감정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기 어려워한다는 것도, 또 내 자신이 감정적으로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도 함께 들었지. 아마 나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이라면 코웃음 칠 저 말이 나에게 기묘한 해방감을 주었다고 한다면, 오빠는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극단적인 감정에 치달을 때도, 연민 없는 판단 속에서 평화를 누릴 때에도 오빠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 말이야. 오빠가 자신의 일관성 없는 감정 상태에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나는 이상한 곳에 달라붙어있는 오빠의 어리석은 감정의 머리채를 잡곤 해. 그리고 그곳이 원래 붙어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나를 오빠에겐 묻곤 하지. 그래야만 오빠는 괴로운 혼란에서 벗어나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자신과 또 둘러싼 상황에 대한 악담을 쏟아부어. 나는 그 악담에 붙어있는 오빠의 불행한 유년과 꼬인 심사를 익숙하고 편안한 노래처럼 즐기고, 오빠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자신의 유년을 되찾고 있다고 말하지. 이거 봐.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다시 배워가고 있어.


오빤 내게 무조건 적인 신뢰를 알려주고, 나는 오빠에게 불안 없는 관계를 알려줘. 그래서 오빠와 내게 감정은 신뢰할 수 없고 불안하기만 한 시한폭탄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겠지만 그럼 어때. 우리에겐 누군가를 배려하게 하는 윤리적 원칙이, 또 그 원칙을 사랑하는 정당한 마음이, ‘정상적인’ 감정이 자리해야 할 곳을 굳건히 대신하고 있는 걸. 이성이라는 믿을만한 방법을 통해서 말이야.


그래서 차라리 후련했어. 나는 감정이 헤집어질까 두려워 클래식을 듣지 못하고, 오빠는 엉켜있는 심정을 감당할 곳이라곤 음악 밖에 없으니 바이올린을 집어 올려. 이렇게나 우린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봐주지 않고 있어. 문학전공인데도 말이야.


나는 우리가 아직 진창에 있기 때문에 아직 시원히 울 수 없다고 그리고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다고 말할래. 억눌린 마음들을 놓아주기엔, 아직 이 가시밭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우리 조금만 더 병에 걸려있자고 말하고 싶어. 섣불리 나으려고 하지 말고, 쉽게 건강해지려고 하지 말고, 조금 더 처참 해지자고 말이야. 그리고 언젠가 내 결혼식이 오면, 그날에 내가 처음으로 오빠의 연주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면 말이야. 그제야 나는 눈으로 울고 입으로 기뻐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억누르다 못해 없어야 할 곳에 붙어버린 그런 억울함들이 평범한 눈물과 웃음으로 승화될 그날을 기다려보자.


이거 봐 오빠, 괴로움은 끝나지 않아. 불안도 끝나지 않아. 하지만 그래서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 나는 이런 식으로 언젠가 우리가 향할 연옥을 기다리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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