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으로 살고 깡으로 죽는다!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이다.’라고 나무위키에서 설명하고 있다. 멘토와 멘티 관계는 동갑 친구가 될 수 있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멘토가 될 수 있다. 멘토는 이끌어주는 사람을 말하고 나 자신보다 월등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을 찾으면 된다.
나의 경우 멘토는 나보다 어린 친구였다. 그도 고등학교 졸업 후 S 대기업에 입사하고 약 25년을 근무한 친구였다. 처음 만나는 날 난 그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학력, 경력, 자격증이 많은 친구였다. 나는 당시 건축설비 산업기사로 전전긍긍할 당시 만났다. 기능장 취득이라는 목표로 만났지만, 그는 자신만의 열정으로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능장을 취득하지 못하고 달성하지 못했다. 그 친구의 추진력은 월등하였고 우수하였지만, 지금은 그 친구보다 월등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멘토를 능가하고 있다. 이제는 다른 멘토를 찾았다. 앞에서 소개한 기술사를 가진 산업 교수이다. 이분도 기술 명장을 꿈꾸고 있다. 현재 대학 강의를 하고 있다. 연봉 2억을 스스로 벌고 있다. 그 기술사가 만든 카페에서도 찾아주는 이가 있으며 책도 출판하고 있다.
나 역시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논문을 쓰고 있다. 한국의 박사는 박사도 아니다. 라는 말하는 일부 사람이 있다. 박사도 아닌 사람은 그렇게 말할 자격도 없다. 나는 꼭 박사 타이틀을 달 것이다. 또 다른 멘토는 석사 학위를 취득한 법대의 원장님이시다. 서울에 소재한 건설법무대학원이다. 원장님은 존중할 정도가 아니라 범접하지 못하며 그분은 법학박사로 교수님이지만 석사 학위 2개를 더 갖고 있으며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분이다. 그분의 가정도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고 형제가 많았지만, 교수님의 법학 대학교의 수업료가 없어 시집간 큰누나가 도와주었다고 한다. 교수님의 학비를 받기 위한 노력은 ‘동생이 교수하고 싶은데 누나가 도와주면 안 되는지?’라고 하셨다. 또한, 교수님은 변호사를 취득할 때도 같은 방법으로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고 한다. 멋있는 누나와 동생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그 교수님은 나에게 석사 논문을 지도해주신 분이다. 물론 그분으로 인해 건설 법무 포럼위원장을 하였고 포럼위원장을 하면서 토론자와 반론자 등의 교수님과 변호사를 섭외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포럼은 강남 전문건설회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마무리되었다. 졸업식에는 공로상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멘토인 교수님을 전화로만 찾아뵙는다. 인생에서 2명의 멘토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분은 H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있는 키가 작은 친구이다. 그 친구는 직장을 다니며 3년 이내 기술사를 5개 취득한 친구이다. 나는 그 친구의 도움으로 93일 만에 건축 시공기술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자격증을 찾아왔다. 2015년 5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공기술사를 찾고 나서 기쁜 마음에 고깃집 식당에서 고기를 태우면서 나와 배우자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통상 3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술자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깡생깡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올림픽 부대에 근무하였다. 그 당시 구호는 ‘깡생깡사’였다. ‘깡으로 살고 깡으로 죽는다.’라고 말하면 동네 깡패인 줄 안다. 항상 잘된다는 신념과 자신감으로 살아왔다. 기술사도 그런 정신으로 시작하였다. 스승이자 멘토인 그 친구는 나의 잠재력을 내면에서 치솟게 만든 장본인이다. 짧은 시간에 1차 합격을 하고 2차도 바로 합격하였다.
나는 공부하면서 에피소드도 제일 많았다. 나와 같이 공부한 한 분은 1998년 IMF 시절에 일괄사표를 같이 썼던 전 건설사의 과장님이었다. 과장님은 내가 취득한 이후 약 5년을 더 공부하고 기술사 자격을 취득했다. 내가 취득하기 전 그 과장님은 나에게 기술사 공부를 제의했던 분이고 내 옆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난 과장님인 선배를 배신하고 97일 만에 1차를 한 번에 합격하고 2차 시험도 한 번에 합격하여 그 과장님의 자리 옆을 비우게 되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 이유는 기술사 공부는 약 2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고 합격하는 것이 보통인데 왜 당신은 97일 만에 합격하느냐? 라고 비난이었다. 또 한 가지는 2015년 3월 합격자도 30명만 주었다. 2015년 첫 응시자는 약 1,000명 이상이 기술사에 도전하고 있었다. 약 3%의 합격자의 명단이 있던 나는 자신감이 더욱 생기게 되었다. 이후,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그 과장님은 나에게 선배이자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사수였지만 기술사 공부에서는 내가 멘토가 되어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었다. 나는 과장님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공부를 하면서 만들었던 노트와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여 그 과장님은 오랜 기간에 낙방하였지만 만 5년 만에 취득하였다.
나에게 겪은 세 명의 멘토가 있었고 이런 멘토와 멘트 관계는 가족에게도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현재는 내 자녀가 멘티가 되었다. 기술사란 무엇인지 몰랐던 철없는 아들과 딸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항상 나에게 질문한다.
왜 이렇게 되나요?
방법은 무엇인가요?
만들 수 있나요?
할 수 있나요?
이 방법은 어때요?
해결책은 뭐예요?
이제는 멘토 관점에서 자식과 타인을 지도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당신도 멘티이지만 멘토로서 활동할 수 있다. 사람은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여야만 생존 법칙에서 이길 수 있다. 멘토라는 사람은 나에게 독자에게 인생의 나침판이면서 등대로서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깊이가 깊지 않고 넓게 알려고 한다. 다만 어떤 길을 향해서 가야 할지를 밝혀주는 등대로서 배가 암초에 좌초하지 않고 항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등대지기처럼 살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매진하여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전해주고 싶기에 오늘도 책을 보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