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다가오면 두발 어색해져요
종종 나는 독특한 포인트에서 쑥스러움을 느낀다. 처음 간 동네빵집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추천메뉴까지 물어물어 빵을 사들고 나올 땐 언제고 몇 번의 방문을 거듭하며 "또 오셨네요?" 혹은, "오랜만에 오셨네요" 정도의 인사를 듣는 단계가 되면 괜히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 네에" 하며 낯을 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급격히 언어기능이 고장 난 로봇이 된 채로 가게를 나오고서는 한동안은 방문을 자제한다. 마치 그 사이에 사장님이 마법에 걸려 나를 완전히 잊기를 바라는 듯 말이다. 대체 왜 그럴까?
일회성의 만남은 되려 편한 반면 여러 번 보면서 안면을 익히고 영역에 접근해 오면 어색해질 때가 있다. 물론 기분 좋고 감사한 일임에도 몸 어딘가에 내장된 부끄러움 단자가 친밀한 대화를 방해한다.
이런 나와 달리 극외향인인 우리 엄마는 누구에게든 쉽게 말을 걸고 친구가 된다. 한 번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분하고도 친해져서는 지하철에서 딸인 나보다 그분이랑 더 대화를 많이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이에 거리를 두고 이를 관망하거나 변변찮은 리액션을 조금 한다.
일전에는 이런 성향을 바꾸고자 노력도 했다. 일부러 크게 인사를 하고 억지 질문을 만들어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렇게 조각조각 이어 붙인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뚝뚝 떨어졌고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을 터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깔끔하게 관두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소극적인 단골로 변변찮은 리액션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도 몇몇의 긴 인연들이 있다. 자연스러운 대화로 친해진 편안한 거리의 사이들이다. 부끄러움 단자가 내장된 이상 영혼 없는 노력은 멈추고 이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