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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익 Mar 10. 2022

쿠렌치스의 미친 실험: 슈베르트/첸더 <겨울 나그네>


https://youtu.be/0K9mpWnUGI4

원작/번안: Schubert/Zender, 지휘: Teodor Currentzis, 테너: Sebastian Kohlhepp, 관현악: SWR Symphonieorchester




혼란스럽다.


번안자는 Hans Zender라는 사람인데 그의 번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번안은, 때로는 몹시 식상하고도 천박했지만, 때로는 진기한 실험성을 보여주었다. 아마 이 번안 목적은 슈베르트의 음울함과 정서적 다면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실험 정신에 있었을 것이다.  그 실험이 성공적이었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직까지는 '글쎄올시다'이다.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고 원곡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악절들을 원곡에 버무려서 섞어 놓은 덕택에 슈베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심상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들은 것 역시 사실이고. 그러나 이 번안이 탁월하다고 말하기까지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롭다는 것만으로 찬탄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또한 이 번안이 새롭다고는 하지만 혁명적일 만큼의 혁신을 보여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번안을 채택한 쿠렌치스의 개성은 도통 감 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아간다. 모차르트 레퀴엠에서 들려준 것은 아직 고삐가 풀리기 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번안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Kohlhepp이라는 테너의 노래는 특별히 흠잡을 것이 없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특별히 흠잡을 데는 없다.


이쯤 되면 슈베르트를 볼모로 잡아 놓고 한스 첸더와 쿠렌치스가 하나의 현대음악 실험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연주를 하나의 '의도를 띤' 실험이라고 한다면, 그 실험적 기획의 '의도''맥락', '한계와 비판점', '함의'가 무엇인지 이 네 가지 정도는 변별해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그것들을 변별해 내기가 어렵다. 구태여 의도와 맥락을 추측해 본다면, 상기한 대로, 고전적인 낭만음악을 현대적 오케스트레이션 속에 비판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슈베르트의 다면적 정서를 번안자가 인식하는 정서관이라는 '맥락'보다 부합하게 재배열하려것이 '의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제대로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아예 평가절하하기도 거북하고, 고평가 하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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