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사실, 우울증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입학했을 즈음이었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이니 십 년이나 계속된 셈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모든 사람들이 사소한 일을 하기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런 것들 말이다.
씻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옷을 정리하고, 그런 것들 말이다. 십 년 뒤에 정신과를 찾아가 진단을 받고 나니 깨달았다. 내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내가 아파서 그랬던 거구나.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이 떨어져, 약속이나 일정은 늘 핸드폰에 메모하고 살았다. 잊어먹지 않으려 알람도 서너 개씩 맞춰놓고 살았다. 처음엔 집중력이 떨어진 채로 행동하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욕을 먹으니, 사람들이 무서워져서 욕을 먹지 않으려 아득바득 메모하고, 일정을 남들보다 배로 체크하며 살아갔다.
그게, 십 년이 되니 한계가 온 거다.
그 사실을 깨닫자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았다. 게으른 사람이다, 느린 사람이다, 네가 못난 거다. 네 잘못이다.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니.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 분명 처음 정신과 진단을 받으러 갔을 땐 울지 말고 침착하게 말해야지 싶었는데, 막상 의사 선생님과 얘기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나를 나이롱환자로 생각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심각해져서 메모를 하시더라. 착각하실 만도 했다. 나는 무시당하기 싫어서 온 힘을 써서 멀쩡히 하고 다니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웃겼다. 선생님은 웃다 울다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조울증 약까지 주실까 말까 고민하던 기색이셨다.
여하튼 그렇게 우울증을 판정받았다.
우울증의 원인은 사실 알고 있다.
부모님이다.
근데 문제는 그 우울증의 원인을 끊어낼 수 없다는 거다.
부모님이 내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다. 고작 부모님의 잘못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한 것뿐이다.
내 대학교부터, 내가 들어갈 직장까지, 모든 걸 정해놓고 나에게 강요한 것뿐이었다.
근데 웃긴 건, 부모님이 내 직업은 무엇으로 할지, 내가 어떤 전공을 삼아야 할지는 정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부모님이 관심 있는 내 인생은, 내가 얼마나 큰 대기업에 들어가느냐, 내가 대학교를 인서울에 가느냐의 문제였다. 실제로 부모님은 내가 무슨 과였는지를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정확히 아셨다.
그래서 진지하게 인서울 대학을 나왔는데, 왜 삼성을 들어가지 못하냐고 묻는 분들이다.
인서울 타이틀을 따려고 순수 미대를 보냈는데 삼성을 어떻게 들어가지??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디자인으로 전공을 돌려 1년 하고 잘릴 계약직으로 대기업에 취직하자,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미친 듯이. 아직도 그 얼굴이 선명하다. 디자인이라 1년 하고 잘리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말해도, 네가 열심히 한다면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나를 압박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안다.
부모님은 세상 물정을 몰라, 나에게 터무니없는 걸 강요했다는 걸.
하지만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걸,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노력 탓으로 돌렸다. 그 와중에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점점 잊어갔다. 부모님에게 점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기 싫으니, 계속 대기업 계약직을 전전하며 부모님의 눈치를 맞추고, 부모님이 원하는 공무원 시험을 쳐보고,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어떤 일에도 진심이 아니니 인생이 안 풀린다.
인생이 안 풀리니, 또다시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인생이 꼬인다.
아빠의 의견을 부풀리고 왜곡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움직일 수 있게 전달하는 엄마와, 노력으론 안될 것이 없다며 소리치는 아빠 같은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부모님과 떨어지고 싶어서, 고등학교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도, 결국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곁에 오게 된다는 거다.
결국 정신과를 가게 된 것도, 최근에 일을 같이 하게 된 사람이 회피형이어서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같이 일하는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 기분이었다. 일의 강도와 상관없이, 일의 성과에 대한 책임 말이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라면 내가 납득이라도 할 텐데, 동등한 협업 관계라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에겐 언제나 그런 사람들만 곁에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좀 달라져보고 싶었다.
정말로 내 인생이 이 따위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약을 먹으면서 달라져보려고, 브런치 북을 쓰려한다.
브런치북의 결말에 마지막에 도달했을 땐, 내가 어딘가 좀 달라져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