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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Nov 05. 2020

쉬운 동양 철학 19

이어령 VS 김수영

1968년 1월에서부터 3월까지는 우리 지성계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빛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1964년 한일협정을 비상계엄이란 억압적 수단으로 관철시켰던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를 서서히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일본의 한일협정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이 문학인들이었으니, 1968년은 그야말로 문학인의 지성이 새로 벼른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때였다. 1960년대에는 4.19 민주혁명,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6.3 한일협정 반대 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던 격동기였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시민들과 5.16 군사 쿠데타 주도 세력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때, 1968년 1월 20일 조선일보 ‘문예 시평’ 코너에 30대 중반의 젊은 평론가가 문학계에 거침없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가 바로 이어령이었다. 문제는 젊은 지식인 답지 않게 그가 4.19 민주혁명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는 데 있다. 두 입장 중 어느 한쪽을 공격하는 순간, 누구라도 공격하지 않는 쪽 입장에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패기만만한 젊은 평론가답게 이어령의 글은 거침이 없고 유려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계몽주의적 오만함이 짙게 드리워져있다. 정치권력의 검열보다는 대중의 검열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할 땐 심지어 파시즘적 태도까지 풍기고 있다. 그에게 대중은 ‘맹목적인 대중’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눈이 없으니, 누군가가 그들의 눈이 되어주어야 한다. 바로 자신과 같은 지성인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자 이어령의 눈에는 독재권력의 검열보다는 맹목적인 대중들을 따르는 것이 더 위험한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독재권력은 맹목적인 대중들을 통제라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자유를 부가한 민주주의는 대중들의 맹목성에 날개를 달아줄 거란 불안감이었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들고 사회에 참여하는 문인들을 “대중들의 박수를 받아 가면서 무너진 구 정권을 욕하고 좌경적인 발언을 하여 그들의 구미에 맞추고” 있다고 비하하게 된다. 억압받던 대다수 사람들의 소망을 듣고 그들은 대변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일 뿐인데, 이어령의 눈에는 그게 좌경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야심가들에게만 적용될 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들이나 문인들에게 적용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이어령에게서 이런 균형 감각은 찾을 수가 없다. 작가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견지하려는 문인과 문학자의 포즈만 취하고 있는 문인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동엽(‘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개그맨 아님), 김수영 시인을 보라. 문학의 힘으로 그들은 이승만 독재에 극렬하게 저항했을 뿐만 아니라, 4.19 혁명의 한계까지도 비판하지 않았던가. 정치적 자유, 혹은 현실적인 자유와 무관한 순수한 예술과 문학이 있다는 평론가의 발상. 나아가 그런 순수한 예술과 문학이 더 가치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타당한 것일까? 정치와 현실에 무관심하도록 만드는 순수문학! 사실 이마저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당시 1960년대 문화계라는 문맥에서 본다면, 지금 이어령은 선배 친일 문학자들에게 순수문학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역사와 사회에 대해, 혹은 민주주의에 대해 문학과 문인들은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수영은 자유의 시인이다. 자기니까 쓸 수 있는 것을 쓰는 것! 내용이나 형식에서 타인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 것! 이럴 때에만 글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문학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김수영이 후배 평론가 김수영의 글을 보고 얼마나 분노했을까. 정치적 자유를 부정하고 정신승리적인 내면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주장. 심지어 정치적 부자유가 오히려 순수문학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 등이 얼마나 문학의 본령을 오도하는지, 김수영은 알고 있었다. 당시 김수영은 박정희 정권이 강력한 파시즘적 독재 정치로 귀결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과거보다 더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그만큼 유신 독재의 암울한 전망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후배 평론가 하나가 4.19 혁명 직후의 문학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문학이 더 순수하고 예술적이었다는 황당한 궤변을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김수영은 마침내 1968년 2월 27일에 이어령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게 된다.

글을 조금 풀어보자면, 모방이나 표절은 작가나 예술가에게 최고의 악덕이 된다. 자신이 절실히 느끼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느낀 것처럼 과거의 글들을 모방한 글들은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이 프랑스 소설가 뷔토르를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새로운 소설은 항상 기존의 형식에 반대하는 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던 사람이 그였으니 말이다. 결국 새롭게 탄생한 작가나 예술가는 과거 선배 작가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정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지 않아도 작가나 예술가가 가장 자유롭게 창조한 작품은 그 존재 자체가 자유에 대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류 문화계뿐만 아니라 권위적인 정권에게 예술과 문학은 ‘불온’ 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건 주류 기득권 세력들이 원하는 예술과 삶이 아닌 다른 예술과 삶, 주류 세력들의 억압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자기만의 예술과 삶을 작가나 예술가들은 꿈꾸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권력의 검열보다 대중의 검열이 더 문제가 된다는 이어령의 논법이다. “문화를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문화인 자신의 문예관이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 받고 있는 그 문화의 위협보다도 몇 배나 더 위험한 일”이라고 이어령은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김수영의 판단으로 이어령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획일적인 검열이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만 강요한다면, 대중의 검열은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난장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말이다. 새로운 문학, 진정한 문학을 하려면, 일체의 검열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불가피하므로, 더 당당해야 한다. 이어령의 궤변과 예언을 마지막으로 좌절시키려는 듯, 김수영은 마지막 힘을 다해 외친다.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는 촛불 정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민중들이 나아가 시민들이 하나 되어 외쳤던 대통령 탄핵. 그것을 보고 대중에게 휘둘리는 종잇장 취급을 했던 몇몇 정치인들. 그렇다고 지금의 정부가 썩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그람시가 말했던 것처럼 대중적 지성인으로서 민중들 곁에 있었으면 한다.

표현의 자유 하니까 떠오르는 말이 있다.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여러 가지 검열되지 않은 정보들은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접해왔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재생산 해왔다. 지금 우리는 표현의 자유보다는 표현의 책임을 생각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예술가들을 정치색이나 윤리적 문제를 빼고 그들의 예술을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윤리적 문제는 언제나 비판받아야 마땅하므로 빼지 않고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는 문인들의 영원한 딜레마일 것이다. 나 역시도 숭실대 출신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일제 치하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자진 폐교를 했던 역사를 사랑한다. 그런데 친일파였던 안익태 선생의 기념관을 짓는 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조심스럽다.

김수영을 검색하다 봤는데 ‘김일성 만세’를 인정할 수 있어야 언론의 자유란다. 우리나라에선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도 무조건 그런 말을 하는 걸 막는 대는 반대한다는 뜻이다.


간지 김수영 선생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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