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박사 1년을 마무리하면서
2020년 6월.
지난 수요일을 기점으로 박사과정의 1년이 정리되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마지막 박사 구두시험(Viva)과 비슷한 형태로 매년 연간 평가를 하는데 지난 9월에 박사를 시작한 나로서는 지난 수요일의 온라인 구두발표가 그 첫 평가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많이 받은 터라 횡설수설 바보처럼 말을 이어가서 평가는 어찌어찌 종료가 되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별다른 지적사항 없이 '통과' 마크를 받았다. 평가가 끝나기 직전, 지도교수와 평가자는 큰 개선사항은 없지만 연구 방법론을 좀 더 정교하고 정확하게 만드는 걸 생각해보라며 조언해주었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지도교수가 지난 3월 던디대학교에서 있었던 심포지엄에 대해 얘기해보라며 운을 띄웠다. 막상 심포지엄에 가서 발표를 한 건 나인데, 나조차 잊고 있던 에피소드를 들먹이며 그녀가 말했다. 심포지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00이(내가) 화가 났었다면서, 이런 현실적인 상황도 논문에 반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사건은 사실 별 것 아니었다(고 당시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난 3월 던디 대학교에서 어떻게 현대미술에서(사실은 사회적 전 부분에서) 동/서양의 이분법이 작용하는지,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그 분류가 미술재료(수묵화/유화)와 연관이 되어 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내 연구 목표는 그런 미술의 동서양 이분법을 유화와 수묵화의 특성을 모두 이용하는 방법론을 채택함으로써 해체, 교란시키는 것이라는 식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발표가 끝나고 짧은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고, 세 명 정도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바라는 게 뭐라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또는 당신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나는 이분법적인 논리 외에도, 그 사이의 다양한 결이 있으며 그 중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미술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내 주장이고, 내 연구가 그런 새로운(사실 새롭지도 않지만) 해석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문제는 그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자 그는 "당신이 뭘 원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건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며, 아마도 당신은 주변으로부터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동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의 주장은 옳은 면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동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은, 전 사회적 과제이며, 탈식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그러나 또한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건 너무 힘드니까 포기하라는 건가? 혹은 한 사람의 예술가(특히 화가)가 할 수 없는 일이니 다른 방향을 생각해보라는 건가? 나는 약간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과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내가 박사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한 연구 기관에서 동료들과 지도교수들의 조언과 격려를 받으면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대답은 틀린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훌륭한 대답도 아니었다. 나는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과제를 하고 있다는 비판, 또는 우려에 대해 나 개인으로서 대답한 것이 아니라 특정 교육 기관의 권위를 빌려 응수한 것이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말해주자, 내 지도교수 중 한 분은 당장 어느 나라 사람이며, 성별이 뭐냐, 어떤 사람이었냐며 코치코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전형적인 중년 영국인 남성 연구자였다(너무 뻔한가? 하지만 사실이다). 내 지도교수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속상하겠지만 그런 편협한 지엽적 질문은 무시해라. 하지만 탈식민주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발언을 하는 족족 너는 앞으로 그런 질문 또는 비판을 받을 것이니 그런 사람들 무리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다. 당시에 나는 저런 질문은 뭐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그렇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여간 발표에서 내 지도교수가 그 사건을 다시 언급한 걸 계기로, 사실은 그것이 꽤 중요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그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가능케 하는 질문자의 사회문화적 또는 정치적 태도다. '그건 너무 혼자 감당하기에 큰, 어려운 문제잖아요'라는 투의.
지금 돌이켜보건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권위나 특정 학위의 권위에 기대기보다, 나는 '왜 동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에 초점을 맞추어 응수해야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최초로 발간한 것은 1978년이다. 그리고 지금은 2020년, 동서양의 분리와 오리엔탈/옥시덴트를 구축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공론이 마련된 시점으로부터 벌써 40년 이상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물론 동서양의 이분법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혹자는 그 이분법을 해체해야 한다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연구의 목표가 너무 원대한 것 아니냐 묻는다. 그는 사실 그런 질문을 2020년에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다.
동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그의 주장(질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에 대한 좀 더 나은 대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라는 것은 물리적 경계가 아니다. 그 어디에도 동과 서,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명확한 영토적 경계선은 없다. 그리고 사이드를 비롯한 무수한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오리엔트 즉 동양이라는 개념은 유럽의 자기 정체성 부여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허구이다. 그 가상의 아이디어는 유럽의 식민지 점령, 그리고 패권의 팽창과 함께 구체화되고 더 정교해졌다. 즉,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 역시 최초에는 한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들의 동의, 사회적 국가적 동의를 얻어 하나의 지식이 되고 학문이 되었으며, 나아가 전 세계를 손쉽게 이해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동서양의 분리를 해체하는 것은 한 사람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투의 비판은, 정확히 말하자면 반역사적인 비판이다. 아프리카에서 수천만의 사람을 배에 짐처럼 실어 아메리카로 데려간 다음, 그들을 설탕 또는 면화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로 부려먹자는 것도 한 사람의 상상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최초의 상상은 자본주의적 팽창 그리고 인종주의적인 편협함에 기인하여 사회적 동의를 얻고 실제로 현실화되지 않았던가? 그런 과거를 기억한다면, 동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자는 주장이 왜 개인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단 말인가? 예술이 한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일종의 상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실제로 무수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이동시켜 노예로 혹사시키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의 가능성을 시각화화는 것이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이므로, 그것이 '너무 원대하다는' 투의 비판은 여러모로 옳지 않다.
그래서 리뷰를 마무리하고 하루 이틀간 이 문제를 곱씹어보며 다음에는 이렇게 응수해주리라, 하고 결심했다. 아마 그냥 어리둥절해하던 나에게 잔뜩 분개한 얼굴로 그런 질문은 '문제적'이라는 것을 지적해준 지도교수님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 질문을 문제적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낯선 환경에서, 나에게는 쉽지 않은 타인의 언어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까지 모색한다는 건 여전히 벅차고 어렵다. 어리고 말을 어눌하게 하는 동양 여자에 대한 손쉬운 편견은 몇 번을 겪어도 화가 나고, 여전히 '남'의 사회인 이 나라에서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막막할 따름이다. 그래도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 더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것은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내 의지와 노력뿐이며, 더 나아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부모, 친구들, 선생님들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한 개인의 노력 만으로 모든 걸 성취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주변에서 어떻게 반응하든, 나는 나를 언제든 교육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