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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골 Oct 05. 2020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나의 취향에 대한 자아성찰과 소개

  지난 글에서 패션에 정답은 없다고 단언하듯 이야기를 했고, 여전히 그것은 내가 옷을 생각할 때 첫 번째 원칙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모든 옷을 멋있다고 생각하거나 모든 옷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의 '좋은' 이 'good'의 의미였다면 이번 글에서 이야기할 내가 '좋아하는'은 'like'의 의미이다. (불행히도 나는 생각이 그다지 개방적인 편은 아니어서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편이고 옷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했을 때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옷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옷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번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어떤 주제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나의 취향이 글에 반영될 것을 대비하여 이번 글에서는 아직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쌓여가고 있는 중인 나의 취향과 선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단순히 옷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사실상 자기소개에 가까운 내용이 될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나에 대해 그다지 궁금하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할 테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것을 한 번만 재고해주길 바란다.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나?


  여성들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바가 없으니 차치하고, 남성들의 옷을 입는 스타일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울리는 장르를 찾아 거기에 집중하여 멋진 스타일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정말 많고,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 나는 아직 정확히 스스로 어떤 장르의 옷을 입는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확 몰두하는 것을 찾기 전까지는 무언가에 굉장히 빨리 질리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후드티에 운동화를 신다가도, 그다음 주가 되면 셔츠에 면바지가 입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싸고 좋은 아이템을 사기보다는 적정 가격대에서 내가 보기에 예쁘고 기본을 갖춘 아이템을 많이 사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SPA나 도메스틱 브랜드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고 구매력이 갖춰진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가까운 친구의 말로는 분기별로 스타일이 바뀐다고 하는데, 동의하진 않았지만 딱히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굳이 한 가지 단어로 정의를 해보자면 '이지 캐주얼'에 가깝다. 이는 정확한 장르 구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편한 분위기의 옷을 좋아하고 그에 맞춰 옷의 핏이나 실루엣도 넉넉하게 가져가는 내 취향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이다. 기본적으로 상의, 하의, 신발 모두 사이즈를 크게 가져가는 편인데, 이는 뼈가 굵고 키에 비해 프레임이 큰 내 체형 탓도 있지만 지나치게 사이즈를 작게 가져가는 우리나라 남성들의 경향성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리이기도 하다. 몸에 딱 맞게 입었을 때 좋은 소수의 경우 (보통 포멀한 룩에 어울리는 아이템들, 셔츠나 와이드 핏이 아닌 슬랙스류, 끈이 없는 로퍼가 대표적이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옷을 넉넉한 실루엣으로 입는 편이다. 옷이 아무리 예쁘고 비싼 값을 주고 샀다고 해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툭툭 걸친다'는 표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옷들이 이에 적합한 아이템들이다.



<좌> 유니클로 U 룩북, <우> Margaret Howell 룩북.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가장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가지고 왔다. (물론 얼굴은 빼고)

(사진 출처: Hypebeast, Margaret Howell 영국 공식 홈페이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끈으로 묶는 신발은 개인적으로 발 길이보다 크게 신는 것을 추천한다. 서양인의 경우 발볼에 비해 발 길이가 긴 속칭 '칼발'인 사람이 많고 동양인의 경우 발 길이에 비해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사람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신는 나이키, 컨버스 등의 해외 브랜드들은 서양인의 발에 맞춰 나오다 보니 발 길이에 맞출 경우 발볼로 인해 신발의 모양이 망가지고, 높은 발등으로 인해 신발의 혀 부분이 뜨게 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혹시 자신의 신발 혀 부분이 옆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자주 해본 사람이라면 신발을 5~10mm 정도 크게 신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넉넉하게 신발을 신는 것은 발의 혈액 순환에도 도움이 되어 발에 땀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더 나은 착용감을 제공할 것이다. 신발이 헐떡거릴까봐 걱정된다고? 신발끈은 단순히 디자인의 목적으로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오버사이징을 할 경우 신발끈으로도 잡히지가 않아 발뿐만 아니라 허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대부분의 신발을 10mm 크게 신고, 개인적으로는 최대 15mm까지만 크게 신는 것을 추천한다. 뭐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신발 오버사이징이라고만 입력해도 이렇게 많은 영상이 나온다. 물론 유튜버들의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처본)


좋아하는 브랜드는?

  

  관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데, 우선 내 옷장에 가장 많이 있는 브랜드는 유니클로이다. (유니클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쓸 예정이다. 한 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슈가 있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내 옷장에 유니클로가 많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위에서 말한 나의 스타일과 구매력을 고려했을 때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다른 SPA 브랜드로 대체해보고자 많은 시도를 했다. (심지어 그때는 유니클로에서 일을 하던 때라 직원 할인을 받을 수 있던 시기였다.) 단언컨대 단 한 번이라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더라면 나는 고민 없이 유니클로를 다른 브랜드로 대체했겠지만, 애석하게도 50%도 만족해본 경험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유니클로에 대해 가지는 '한철 입는 옷', '싸구려 옷'이라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유니클로는 분명히 가격대에 비해 옷을 잘 만들고, 열심히 고민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그와 별개로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나이키이다. (나이키 역시도 나중에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사실 메종 마르지엘라나 르메르와 같은 더 높은 포지션에 있는 브랜드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 브랜드들의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과 구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섣불리 말하는데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어쨌든, 의류와 신발을 떼어놓고 보면 나이키와 비슷한 수준으로 선호하는 브랜드들이 각각 있지만 종합해서 고려해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나이키이다. (사실상 애증에 가깝다.) 포멀한 차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탓에 구두 류보다 운동화를 훨씬 많이 착용하는 편인데, 디자인 측면에서 나이키의 대체재 역시 찾기 어렵다. (디자인과 별개로 퀄리티는 떨어진다. 나이키는 가격 대비 퀄리티가 아주 조악한 브랜드에 속한다. 오죽하면 마감이나 퀄리티가 너무 좋을 경우 가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한다.) 의류 라인업 역시 나이키 ACG나 NikeLab 등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다른 스포츠 브랜드들보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아래 두 신발은 내 기준 각각 2020년과 2019년 최고의 신발들이다. 둘 모두 출시와 동시에 말 그대로 '역대급'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리셀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제품들이기도 하다. 특히 좌측의 에어 조던 1 디올 모델의 경우 차 한 대와 맞먹는 사악한 가격을 형성 중이다.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좌> 나이키 에어 조던 1 X 디올 출시가 약 300만원, 리셀가 측정불가(..) <우> 나이키 X 사카이 LD 와플 울프그레이 출시가 약 20만원, 리셀 가격 70~90만원


기피하는 코디는?


  위에 언급한 대로 아직 정확한 장르를 가지고 옷을 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장르적인 부분에서 싫어한다고 할 만한 요소는 없다. 다만 모종의 이유로 지난 몇 년간 거의 사지 않은 스타일의 옷이나 하지 않은 코디법들이 몇 가지 있다. 어디까지나 정말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1) 니트 + 셔츠 or 스웻셔츠 or 가디건 레이어드

  거의 2년 넘게 하지 않은 코디법이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 친구가 입어주었으면 하는 상의 코디'로 스무고개를 하면 열 손가락 안에 반드시 나온다는 코디법인데, 내가 이 코디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갑갑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 코디는 셔츠와 니트 모두 크지 않게 입는 것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셔츠의 경우 대부분 내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의 것을 입는다. 사이즈가 큰 셔츠를 안에 레이어드를 할 경우 가슴과 어깨 부분의 여유분이 레이어드 한 옷의 아래에서 구겨지면서 모양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가디건의 경우 갑갑함은 나머지 둘보다 덜하지만 단추를 오픈해서 입는 경우 셔츠를 빼서 입어야 할지 넣어서 입어야 할지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선호하진 않는다. 상술했다시피 나는 기본적으로 '툭툭 걸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려할 요소가 많은 코디가 굉장히 번거롭게 느껴진다.


2) 후디 풀오버 + 슬림한 슬랙스 류

  첫 글에서도 잘 매치하기가 어려운 코디로 꼽았던 조합법이다. 기본적으로 후디 풀오버의 경우 스웨트라는 재질의 측면과 후드와 거기에 달린 끈이라는 요소들로 인해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분위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지만 반대로 포멀한 코디에 어울리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된다. 거꾸로 슬림한 핏의 슬랙스의 경우 아직 오피스룩과 거리가 먼 대학생들에게 깔끔하고 댄디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최적화된 하의이다. 청국장과 피자도 잘 섞으면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쉽게 그 맛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정도의 느낌인 것 같다.


3) 상반된 무드의 아이템 매치

  이 역시도 첫 글에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장르를 하나 정해서 입지는 않지만 가급적이면 비슷한 무드의 아이템을 매치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보통 옷차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할 때 그날 꼭 입고 싶은 아이템을 하나 선정해 놓고 맞춰나가는 식이 되는데, 만약 내일은 꼭 에어조던 1을 신어야겠다면? 자동으로 슬림한 슬랙스나 치노팬츠 류, 몸에 맞는 셔츠류는 탈락이 된다. 반대로 내일은 꼭 포멀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기고 싶다면? 스트릿한 신발이나 기타 어글리 슈즈 류의 신발은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믹스매치를 잘하는, 정말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센스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안전지향적인 코디를 선호한다.


믹스매치의 최강자 지드래곤. 이쯤 되면 사람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다. 떼어놓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이미지 출처 : 이데일리)


마치며


  아직 쓸 거리가 한참 남았는데, 마치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친구를 앉혀두고 두 시간 넘게 혼자 수다를 떤 느낌을 불현듯 받아서 여기서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사실 요즘 나는 옷과 권태기에 빠졌다. 정말 갖고 싶다고 생각해서 어렵게 구한 아이템도 결국 입고 돌아다니면 해지고 더러워지는 옷인 것은 똑같고, 생각보다 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 중고장터에 내다 팔거나 환불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릴 옷도 거의 없이 꽉 차 있는 옷장과 서랍장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게 내 머릿속인 것 마냥 갑갑한 느낌마저 든다. 곧 생일인데, 스스로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한 시간을 채 가지 않고 꺼져버리기도 한다. 내가 뭐가 필요한지,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연휴를 보냈는데 이 글을 쓰며 조금은 정리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긴 수다를 여기까지 읽어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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