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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골 Jan 13. 2021

슬기로운 쇼핑생활 - 하의 편

바지를 구매해야 할 때 알아두면 좋은 것들

  저번 상의 편에 이어서, 하의와 관련된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을 써보고자 한다. (다음 편의 주제는 아마도 아우터가 될 예정이다.) 사실상 남성의 하의=바지인지라 여러 종류의 바지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물론 최근 젠더리스 패션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패션)이 트렌드가 되면서 남자들도 치마바지 혹은 치마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입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이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사견으로는, 아직까지 치마는 여성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그에 따라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브랜드들도 남성들의 체형에 맞게 치마를 디자인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남성들이 잘 소화하기에 크게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한다. 모험적인 시도는 좋지만, 언제나 어떤 일이던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마바지나 치마를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들은 바지를 입어도 멋질 사람들일 것이다.)

  남자들의 바지 종류라고 해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코디가 여성들에 비해 제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세하게 나누어보자면 물론 훨씬 다양하게 세분화할 수 있겠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결국 반바지 or 긴바지이다. 반바지는 대부분 여름철에 착용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1년의 대부분을 긴바지를 입고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아래 다루게 될 내용은 대부분 긴바지를 구매할 때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이다. 



다른 건 몰라도 바지만은


  글을 시작하기 전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다른 카테고리들은 모두 괜찮다. (심지어 향수마저도 블라인드로 구매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가 브랜드의 니치 향수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선호하는 향에 어느 정도의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 바지만은 꼭 입어보고 사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구매후기라도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한다. 실측 치수가 같아도 입었을 때 아주 크게 달라지는 것이 바지이기 때문에 입어본 적이 없는 브랜드의 블라인드 구매는 실패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상의의 경우 치수로 표시되는 것은 어깨, 가슴, 총장(길이)가 기본이고 디테일하게 들어가봐야 팔길이, 암홀(어깨에서 팔을 집어넣는 구멍의 크기)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바지의 경우 기본적으로 허리, 허벅지, 밑단, 총장 까지가 기본이고 디테일 하게는 엉덩이, 무릎, 종아리, 밑위 (가랑이 부분), 인심(허벅지 안쪽의 길이), 아웃심(허벅지 바깥쪽의 길이) 까지 표기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적 데님브랜드인 플랙이 실측 사이즈를 아주 디테일하게 표시하기로 유명하다.) 이 말은 곧, 패턴에 있어서 상의보다 훨씬 신경 쓸 부분이 많다는 것이고, 같은 실측 사이즈여도 상의보다 실제로 착용했을 때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상의보다 하의가 인간의 움직임에 더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개인적으로 상의가 조금 작으면 갑갑한 느낌이 조금 있을 뿐 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하의가 작을 경우 굉장히 갑갑한 기분이 들고 전체적으로 행동이 제약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흔히 말하는 '옷 몸살'이 생기기도 한다. 거꾸로 바지가 너무 크다면? 온 종일 바지가 내려가는 것에 신경쓰며 바지춤을 움켜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바지만은 실제로 내 몸에 착용을 해보고, 조금 움직이기도 했을 때 편안해야만 손이 더 자주 가게 된다. 


바지 핏 관련 용어 정리 


  상술했듯이 남자들에게 있어 '하의=바지' 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은 상의와 달리 하의의 경우 큰 틀에서 보면 선택지가 제한적인 편이다. 때문에 많은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바지가 낼 수 있는 색감과 핏을 표현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을 제대로 알고 구매해야 온라인으로 바지를 구매했을 때에도 자신이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핏을 뽑아낼 수 있다. 

  바지를 소개할 때는 바지의 넓이를 설명하는 용어와 바지의 길이를 설명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바지가 어떠한 핏으로 나타나는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치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들을 구분할 수 있으면 바지 쇼핑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이트 핏 : 가장 기본적인 청바지 핏, 흔히 말하는 '일자 핏'이다. 사람의 다리는 골반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넓어지고 발 쪽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 바지 역시 골반부분은 보통 너비, 밑으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기장이 예쁘게 맞아 떨어지면 가장 기본적이고 깔끔한 느낌을 낼 수 있는 바지이지만 반대로 너무 짧은 경우 다리가 짧아보이고 너무 긴 경우 신발과 맞닿는 부분의 주름 (흔히들 '곱창'이라고 표현하는)이 예쁘게 지는 바지가 아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바리에이션으로 슬림스트레이트, 와이드스트레이트라는 핏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슬림핏 보다는 조금 넓고 (슬림 스트레이트) , 와이드핏보다는 조금 좁은 정도의 핏 (와이드 스트레이트) 으로 이해하면 좋다. 


스트레이트 핏의 대명사 격인 리바이스의 501 데님. 기본에 충실한 바지이다. 스트레이트 핏은 글자 그대로 곧게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다리의 형태에 맞춘 핏을 보여준다. 

(출처: 리바이스 공식 홈페이지)


  테이퍼드 핏 : 테이퍼드 핏은 '끝이 가늘어진' 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tapered'에서 유래한 말로 허벅지는 스트레이트핏보다 여유롭고 밑으로 내려올 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바지를 말한다. 벗어서 펼쳐 놓으면 항아리나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같은 둥근 형태를 띄게 되는 특징이 있다. 많은 남자들이 굵어진 허벅지로 인해 고민하던 와중 구세주처럼 등장해 최근 정말 많은 브랜드에서 테이퍼드 핏의 바지를 내놓고 있다. 기장의 구애도 크게 받지 않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통상적인 기장보다 짧은 편일 때 특유의 핏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그라미치의 루즈 테이퍼드 팬츠. 허벅지 통이 크고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편안한 실루엣이다. 편하고 웨어러블한 바지를 찾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출처 : 그라미치 영국 공식 홈페이지)

  

  스키니 핏, 슬림핏 : 한 때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단어의 의미 그대로 마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허리부터 발목까지 조이는 핏의 바지이다. 다리가 길고 가는 사람들이 잘 어울리게 입으면 다른 바지에서 느낄 수 없는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는 핏이지만, 대개 보통 사람들의 다리와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핏이기도 하다. 스키니 핏을 가장 잘 보여줬던 브랜드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인데, 많은 남자들이 이러한 핏을 따라해보려다가 후회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최근 몇년 간은 다른 핏들에 밀려 입지가 약해진 느낌이 있는데, 유행은 도는 것이라고 다시 바지 핏이 조금씩 좁아지는 경향이 몇몇 브랜드의 룩북에서 드러나고 있으니 자신의 핏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랍에 넣어두었던 슬림핏의 바지를 다시 꺼내보아도 좋을 것이다.


생로랑의 슬림 블랙진. 통상의 바지보다 훨씬 슬림한 핏을 자랑한다. 물론 잘 소화하면 가장 섹시한 바지 중 하나가 된다. 

(출처 : pinterest)   


  와이드 핏 : 와이드 핏은 글자 그대로 통이 넓은 바지를 의미한다. 넓은 정도에 따라 '세미 와이드', '리얼 와이드' 라는 명칭을 붙이는 브랜드들이 있지만, 결국 다 비슷한 와이드핏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브랜드에서 네이밍하는 핏은 그 브랜드 입장에서 설명한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입었을 때 어떤 핏이 나오느냐이다. 결국 우리는 브랜드가 제시한 핏 가이드가 아닌, 실측 사이즈에 맞추어 옷을 사야한다.) 와이드핏의 특징은 허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넉넉하다는 데에 있다. 와이드핏의 경우 발목 근처로 오는 짧은 기장이나 거꾸로 기장을 길게 가져가서 신발의 윗부분이 덮이게끔 사이즈를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튜디오 니콜슨의 와이드 팬츠. 발목 부근에서 잘리는 기장의 크롭 와이드 팬츠이다. 이 경우 양말을 활용한 포인트를 주는 코디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출처 : 스튜디오 니콜슨 공식 홈페이지) 


  크롭 핏 : 위의 용어들과는 조금 다르게, 크롭이라는 단어는 바지 전체의 모양보다 길이를 표현하는데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그래서 위의 단어들과 결합해서 '와이드 크롭 핏', '슬림 크롭 핏', '크롭 테이퍼드 핏' 등으로 많이 사용이 된다. 크롭 핏이란 발목 부근까지 바지 기장이 오는, 보통의 바지보다 짧은 기장의 바지를 의미하는데 이는 서양인보다 허리의 길이가 길고 다리의 길이가 짧은 동양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핏이 된다. (물론 모든 동양인이 서양인 대비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나 역시도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으며 발목도 두꺼운 편이어서 와이드 핏을 제외한 대부분의 팬츠를 크롭한 기장으로 입는 것을 선호한다. 롤업을 해서도 길이를 조절할 수 있지만, 크롭 핏 바지와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잘 고른 데님, 열 바지 안부럽다. 


  나는 데님 덕후다. (스웻셔츠 설명에도 비슷한 얘기를 썼던 것 같은데, 둘다 덕후다.) 소장하고 있는 데님이 보세 상품부터 고가 브랜드까지 20점이 넘는데, 누군가는 데님을 그렇게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입을 때마다 전부 천차만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데님의 장점을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 관리가 쉽다 

  데님은 애초에 작업복에서 파생된 의류이다. 그 말인 즉, 어지간해서는 찢어지거나 옷감이 상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크림진이나 화이트진, 채도가 낮은 연청바지를 제외하고는 오염에도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데님은 '세탁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옷이다. (물론 가끔 이것에 과하게 집착해서 몇 년동안 청바지를 세탁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데님은 하의인 만큼 많은 땀과 오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오래 세탁하지 않은 데님에서는 특유의 꿉꿉하고 좋지 않은 악취가 난다. 가급적이면 때가 되었을 때 세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풀이 일어나기 쉬운 울팬츠나 TR소재의 팬츠, 주름을 잡아줘야 하는 슬랙스류보다 훨씬 관리가 쉽고 아무렇게나 툭툭 입었을 때 오히려 더욱 멋스러운 아이템이 바로 데님이다. 


- 워스트 코디가 되는 일이 잘 없다

  상의를 구매할 때 많이들 '이걸 어떤 하의에 매치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디자인이 예쁘고 사이즈가 잘 맞는 데님이 있다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데님은 특유의 편안한 느낌과 컬러감으로 위에 어떤 상의를 매치해도 최소한 어색하지는 않은 느낌을 보여준다. 물론 베스트 매치인 아이템은 따로 있겠지만, 최소한 두 아이템이 너무 따로 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의 뿐만 아니라 신발에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한 핏과 디자인의 데님에는 구두, 워커, 스니커즈, 러닝화 등 어떤 종류의 신발을 신어도 캐주얼한 느낌을 연출해낼 수 있다. 


- 추천 데님 브랜드

  가격대 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입어보고 소장해본 경험을 토대로 추천을 몇 가지 해보자면

  - 유니클로 (??? ~ 6만원대) : 유니클로는 생각보다 데님을 잘 만드는 브랜드이다. 태생이 일본 브랜드이다 보니 서양인들의 체형에 맞춰서 디자인된 해외브랜드보다 한국인들의 체형에도 잘 맞는 편이다. (기장 수선을 따로 할 필요가 적다는 뜻이다.) 한창 생태계 파괴자 수준으로 칭송받던 전보다는 원단이나 퀄리티가 조금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지만 애초에 가격대가 부담이 없다보니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데님 중 하나이다. 기본 유니클로 라인보다는 유니클로의 고급 라인에 해당하는 유니클로 U라인의 데님을 추천한다. 가격대의 시작점이 ???인 이유는? 세일가에 구매할 경우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도 괜찮은 퀄리티의 데님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옷을 싸게 사는 방법은 결국 많은 검색과 발품이다. 


유니클로 U 라인의 셀비지 스트레이트 진. 5만원이라는 가격대비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출처 : 유니클로 공식 홈페이지)


   - 리바이스 (5만원 ~ ???)  : 옷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근본'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리바이스의 데님을 추천한다. 리바이스는 데님의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한 브랜드이고, 특유의 탄탄함과 거친 맛으로 대표되는 '미국스러움'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자체적으로 자사 제품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복각해서 만든 LVC(Levis Vintage Clothing)나 데님 매니아들이 사랑하는 레졸루트, 오어슬로우 등의 브랜드들의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 전부 리바이스 제품이라는 점이 이 브랜드의 위대함을 설명해준다. 미국영화 속 거칠고 마초적인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데님을 입고 있다면 아마도 리바이스일 확률이 꽤 높다. 다만 재팬 라인을 제외한 상품들이 서양인의 체형에 맞게 디자인이 되어 있고, 유행보다는 자신들의 고집에 따라 제품을 디자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백화점에도 당연히 입점이 되어있는 브랜드이니 입어보고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추천 라인은 501 (스트레이트), 511(슬림 스트레이트) 이다. 유니클로와 반대로 가격대의 끝점이 ???인데, 이는 잘 관리된 빈티지 리바이스 청바지의 경우 굉장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 하와이안 셔츠에 챔피온 티셔츠 그리고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있다. 밑단이 넓은 부츠컷 형태의 517로 추정된다

(출처 : bamfstyle.com)


  - 모드나인 (5만원 ~ 13만원) : 청바지를 만드는 국내 브랜드도 정말 많아졌지만, 국내 브랜드 중 하나만을 추천하라면 단연코 모드나인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님이기도 하다. 모드나인은 지금처럼 유명세를 얻기 전부터 데님 매니아들에게 국내 브랜드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 중 하나였다. (그 때는 가격대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세일도 거의 하지 않았었다.) 최근에는 워낙 유명해지기도 하고, 브랜드 스스로도 욕심을 부려 트렌디한 디자인도 많이 내놓고 있다. 원단과 만듦새로 유명한 브랜드인만큼, 해외 브랜드들을 시도해보는 것이 두렵다면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모드나인의 블랙진은 위에도 언급한 명품 브랜드인 생로랑과 동일한 원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추천 라인은 기본 스트레이트핏인 MOD1, 슬림 크롭라인인 MOD4, 와이드 스트레이트핏인 MOD6이 있다. 


슬랙스는 소모품이다

  20대 초중반에게 청바지와 쌍두마차 격에 해당하는 바지는 아마도 슬랙스일 것이다. 슬랙스라는 단어는 '느슨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인 영단어 'slack'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통이 넓고 헐렁한 편안한 바지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TR(폴리에스테르 + 레이온을 혼합한 합성섬유) 소재를 메인으로 한 캐주얼한 정장바지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중학교 때 고향인 광주에서 이러한 바지가 유행을 했었는데 당시 중학생들이 이러한 바지를 부르는 이름은 신기하게도 소재 이름을 딴 TR바지였다. 소재인 것을 알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신기할 따름이다.) 

  청바지가 캐주얼함의 대명사라면 슬랙스는 댄디함, 깔끔함의 대명사 격인 바지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여성들이 깔끔하고 댄디한 룩의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연인이 있는 남성들이 데이트룩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속칭 '남친룩'의 대명사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다.) 

  슬랙스도 여러가지 소재로 제작되고 있다. 특히나 천연섬유인 울을 다량 함유해서 만든 울 슬랙스의 경우 고급스러운 광택과 컬러감, 울 소재의 보온성 등으로 인해 겨울 바지로서 아주 제격이다. 그러나 울의 경우 가격이 높은 천연섬유이고 특히나 바지처럼 마찰이 많은 의류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가공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대가 매우 높아지는 편이다. 따라서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슬랙스의 소재는 대부분 위에 언급한 TR 소재의 슬랙스이다. TR 소재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을 혼합한 소재로 합성섬유인 만큼 가격이 싸고, 폴리에스테르의 장점인 강한 내구도와 레이온의 장점인 부드러운 촉감과 광택을 적절히 혼합한 소재이다. 다만 이 TR 원단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보풀이 잘 일어난다는 점이다. (특히나 가방 등의 악세사리와 마찰이 일어나는 엉덩이 부위가 치명적이다.) TR소재는 아무리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보풀이 아주 쉽게, 그것도 보기 싫은 형태로 발생하게 되는 소재이다. (울 니트나 울 슬랙스, 트라우저도 보풀이 발생하긴 하지만, 같은 보풀이라도 느낌이 조금 다르다. 울 소재에서 일어나는 보풀은 원단의 털 끝 부분이 일어나면서 헤어리(hairy)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반면 합성소재에서 일어나는 보풀은 생기는 대로 동글동글하게 말려서 굉장히 보기 싫은 형태가 된다.) 

  따라서 슬랙스의 경우 (특히나 블랙 컬러의 경우) 때와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데일리하게 입기 좋고 일정 가격대 까지는 내구도나 만듦새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적당한 가격대의 제품을 구매해서  지나치게 보풀이 발생했거나 오래 입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 구매하는 형태의 소비를 추천하는 편이다. 


마치며

  많은 남성들이 대부분 바지 핏을 눈대중 수준으로 입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몇해 전 친구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여자인 친구의 소개팅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사람도 착하고 참 마음에 들었다는데, 정말 깬다고 느꼈던 것이 바로 바지 밑단이 구두와 맞게 떨어지지 않아 주름이 보기 싫게 지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친구가 조금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였던 것도 한 몫을 했다.) 그 정도로 바지는 전체적인 코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전체적인 코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겨울에는 아우터, 그 외의 계절에는 하의라고 생각한다. 상의와 신발에 아무리 신경을 썼다고 하더라도 바지의 핏 하나만으로 코디 전체의 분위기를 어그러뜨릴 수 있다특히나 바지는 상의보다 더 '입던 것만 입는' 경향이 강해지는 의류인 만큼, 손이 자주갈 수 있는 마음에 드는 바지를 몇 벌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옷을 어떻게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입어보기 귀찮다고 아무렇게나 구매하지 말고, 시간을 조금 내어 바지 쇼핑에 나서는 것을 적극 권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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