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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골 Mar 06. 2021

무신사, 왜 그랬어요..

무신사 여성 전용 쿠폰 발급 논란에 대한 넋두리

  내 글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무신사.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 브랜드 한정으로) 취급 브랜드가 가장 많고, 이용자 수도 많으며 소비자들이 작성하는 후기를 통해 보다 소비자 입장에 가까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 옷을 입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옷을 어디서 살지 고민할 때에도 주저 없이 무신사를 추천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무신사에서 발급하는 쿠폰을 두고 성차별 논란이 일었다. 여성 소비자에 한해서 조건 없이 최대 19%까지 할인이 되는 쿠폰을 꾸준히 발급을 해왔다는 것이 주 골자이다. 무신사는 쇼핑몰 초기부터 기본적으로 남성들을 위한 옷들을 많이 취급하는 사이트였고, 그에 따라 현재에도 이용자 중 남성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쇼핑몰에 속한다. 2016년 우신사라는 여성 쇼핑몰을 추가로 런칭했지만 반응이 그렇게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성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핑몰에서 이러한 내용의 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쿠폰이 여성 상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소비자들에게는 할인율이 크지 않았던 남성 상품에도 적용이 되었으며, 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남성 소비자를 게시판 이용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당 문의 삭제 및 60일의 활동정지 처분을 내렸다는 데에 있다.

  19%라는 할인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신사 등급 체계 상 가장 높은 등급인 다이아몬드 등급에 속하는 고객에게 지급되는 쿠폰의 할인율이 13%에 그치기 때문이다. 6% 차이가 뭐 별거냐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다이아몬드 등급 달성을 위해서는 2천만원 이상의 상품을 무신사에서 구매해야 한다. 무신사가 아무리 최근의 상품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들도 취급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신사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객 층은 10대, 20대들이고 이들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취급하는 상품의 가격대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무신사에서 2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규 고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과연 어떤 쇼핑몰이나 브랜드가 2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소비한 소비자보다 신규 고객을 더 우대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또 굳이 그 쿠폰을 남성 상품에까지 적용되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남녀공용 상품이 많고, 옷을 크게 입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남성 제품을 구매하는 여성들이 많다고는 해도 이해하기는 힘든 정책이다. 애초에 우신사라는 사이트를 추가로 런칭한 무신사의 행보와도 맞지 않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성차별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고 현재 무신사 인스타그램의 관련 공지 및 이후 게시물에는 관련해서 조롱과 비난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남성 소비자들의 경우 한 쇼핑몰에 소위 ‘정착’ 하게 되면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무신사만큼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쇼핑몰이 아직 까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성 고객들의 무신사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는 꽤나 높은 편이었는데, 이번 사태가 남성 전체를 기만하는 사례로 보여지게 되면서 남성 소비자들의 분노와 박탈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무신사의 공지를 보면 마치 ‘그동안 해당 쿠폰이 남성 상품에도 적용되어왔다는 것을 몰랐다’ 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벤트성으로 지급된 단발성 쿠폰이 아니고, 여성 소비자라면 매월 지급이 되어온 이 내용을 몇 개월동안 무신사 정도의 규모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쇼핑몰이 캐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해명이다. 게다가 쇼핑몰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문의 글을 남긴 것에 대한 대처로 단순히 게시물 삭제가 아닌 사이트 이용을 두 달이나 금지하는 처분은 과중하다고 느껴진다. 마치 우리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듯한 보복성 조치로 느껴질 정도다. 과거에 무신사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하는 듯한 내용의 홍보물을 작성했다가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의 정부가 청년들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다는 점도 쓴 웃음을 짓게 한다. (물론 당시 무신사의 대응 자체는 훌륭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문 및 직원들에 대한 역사교육 실시 등 실질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져 비슷한 맥락의 사건들 중 아주 훌륭한 대처를 한 것으로 손꼽히는 사례이다.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하는 식으로 과거 일을 끌어와서 추가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여러 차례 고인 모독이나 역사의식 왜곡을 자행한 방송사들의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는 처음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쭉 학생이었고 구매력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다. 그래도 나름 해수로는 8년째 해당 사이트를 이용해오고 있었고, 학생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을 소비했으며 주변인들에게도 많이 추천을 해온 입장에서 이러한 사태와 사후 대처가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처음 무신사를 알게 된 것은 2012년 무렵이었고, 처음으로 옷을 구매한 것은 수능이 끝난 2014년이었다. 2012년 당시의 무신사는 지금처럼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패션 에디터들이 작성하는 웹진류의 기사가 메인 컨텐츠이고 거기에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던 도메스틱 브랜드들을 부차적으로 소개하는 커뮤니티에 가까웠다. 그러다 사이트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취급하는 브랜드도 많아지면서 현재의 무신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무신사는 규모를 키워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옷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순간 떠나게 되는, 소위 ‘졸업’하게 되는 쇼핑몰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 이번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이미지에 꽤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본인들이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취급되는 이유에 대해서 무신사는 잘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패션 업계의 유일한 유니콘 기업이다. 시장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충성해 온 소비자들 모두를 기만하는 듯한 이러한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공정’이라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을 건드린 무신사가 과연 돌아서버린 남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한 명 잃어버린 느낌이라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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