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맞다 강선생 Dec 01. 2023

오늘 청소당번 누구지?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90년대의 국민학교 청소시간은 신나게 모든 책상과 걸상(그땐 의자라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왜 꼭 걸상이라고 하셨을까)을 뒤로 밀고, 먼지가 풀풀 나도록 빗자루질을 하였다. 나무 사이사이에 낀 먼지들도 가열게 빗자루로 후벼 파고는 손걸레에 왁스를 적당히 묻혀 나무바닥의 색깔이 변하도록 반질반질 문질렀다. 왁스칠을 마친 매끈매끈한 바닥에서 친구들과 슬라이딩을 하다 깔깔거리며 뒹굴기도 하였다. 손걸레를 낀 손가락으로 기분 좋게 긁어지는 왁스의 촉감. 쪼그려 앉아 할당된 구역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는 아이들. 말표 왁스 냄새가 뭉근하게 나는 교실. 이것이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교실 청소의 모습이다.

 지각을 하거나 선생님에게 대들었던 반항기 충만한 학생들은 벌청소로 화장실을 할당받기도 하였다. 교화의 목적과는 다르게 물을 뿌리며 물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학교의 모든 공용공간은 서로 돌아가며 청소하는 우리들의 공간이었다.

      

 요즘의 교실 청소 모습은 아주 많이 다르다.

 먼저 청소 구역이 변화하였다. 이제 더 이상 화장실과 복도, 계단은 학생들의 담당 공간이 아니다. 지각이나 교사와의 갈등 정도의 미미한 일로 과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민원에 시달리다 결국 그 구역들은 청소 여사님이나 외부 용역 기사님의 손에 맡겨졌다.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분들이 각종 전용 장비가 담긴 카트를 타고 다니시며 학교의 곳곳을 정돈해 주신다.

      

이미지출처 : 투니버스 @짱구는 못 말려

 변한 것은 공간뿐이 아니다. 아이들은 맡은 구역을 세세하게 나눈다. 월요일에 1 분단 쓰는 아이, 화요일에 1 분단을 쓰는 아이, 수요일에 1 분단을 쓰는 아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2,3 분단을 쓰는 무리들, 요일별 밀대걸레 미는 아이들.. 분리수거는 4명으로 특별히 힘든 일이니까 봉사활동 시간을 1년에 10시간 주고 부탁한다. 매 시간 칠판을 닦고 청소하는 친구들과 냉난방기를 조절하는 친구도 번거로운 일이기에 1년에 5시간 봉사활동 시간을 주고 지원을 받는다. 앞, 뒤 게시판을 담당하는 아이, 책상 줄을 정리하는 아이들, 멀티미디어 선을 정리하는 아이.. 하나의 일에 여러 아이들이 담당될 경우에 자기들끼리 요일을 다시 나누거나 오전/오후를 나눈다.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진다.      

이미지출처 : 영화'모던타임스'

 시간도 바뀌었다. 쓸기를 담당한 친구들이 깨끗이 교실을 쓸고, 그다음에 밀대 물걸레 친구들이 교실을 깨끗하게 밀고, 모든 쓰레기가 모아진 뒤 분리수거 친구들이 쓰레기를 버리며 청소를 마무리한다는 암묵적인 순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불공평’ 하기 때문이다. 쓸기 친구들은 일찍 쓸고 집에 갈 수 있는데, 물걸레 친구들은 그 과정을 기다려야 하고,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쓰레기 처리 친구들은 제일 늦게 학교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쪽에서는 쓸고, 바로 옆에서는 물걸레를 밀고, 이미 쓰레기 친구들은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가는 풍경..     

 정말 이렇게 두는 것이 교육적으로 맞는 것일까 매일 고민한다.

'얘들아, 쓸기 친구들이 마무리하면 물걸레 시작하면 안 될까', '얘들아, 청소가 끝난 뒤에 쓰레기 버리러 가면 안 될까.' '부탁하면 내가 차별하는 교사가 되는 걸까. 공정하지 못한 걸까. 무리한 요구일까..'

'배려와 희생은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걸까.' 오늘도 아이들을 보며 입술만 달싹인다.

사진출처 : @스누피 애니메이션

 학교가 끝나자마자 타이트한 학원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하는 현대의 고등학생들이니 여러 구역을 청소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면서, '과연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게 교과목뿐일까..'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멘트를 하면 꼰대가 되는 것일까 망설이다 결국엔 매번 꿀꺽 삼킨다.)


 가시가 위험하게 박히는 나무바닥이 아니라 돌바닥 혹은 특수장판 바닥으로 바꾸어 주셔서 참 감사하다. 아이들의 허리가 아프지 않게 빗자루 손잡이의 길이는 아주 길어졌으며, 사이사이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끼는 묶음 빗자루가 아닌, 플라스틱과 실리콘으로 되어있는 알뜰주걱 같은 통빗자루와 청소기가 비치된 것도 다행이다. 물이 뚝뚝 흐르는 대걸레 대신에 일회용 부직포 물걸레를 넓게 펼치고, 플라스틱 뚜껑 똑딱이로 고정시켜 쓱-밀고 버리는 가정용 비슷한 밀대걸레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기쁜 일이다.  

 

 환경이 감사하게 변하는 만큼, 받은 배려와 지원을 서로에게 돌릴 수 있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아프고 힘든 친구들이 있으면 조금 더 해주기도 하고, 그러한 도움을 고맙게 여기며 보답할 줄 아는 아이들. 효율적인 이고 합리적인 것들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커갔으면 좋겠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얘들아, 오늘 청소당번은 누구지?"

 




(첫 이미지출처 :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체험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을 준비하는 감독관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