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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Aug 20. 2023

발리에 두 번 살다 (4)

변기, 연기, 바퀴벌레에 절망한 첫 주

발리에서 보낸 첫 주를 마친 주말에는 사실 다소 절망했었다.

과연 내가 일 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전반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오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5년 전에도 나는 발리 생활을 아주 좋아하지 못했다.

발리 로컬에 산다는 것은 리조트에 일 년 사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이라서 현지에 진심으로 적응해야 가능하다.


나는 15년 전에는 대저택에 사는 발리인 부부의 집에서 남편과 함께 홈스테이 동거인으로 함께 지냈다.

그래서 집을 관리할 필요도 없어서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덜한 장점이 있었다.

그저 낮에는 발리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미국에 두고 온 박사 공부를 하면서 일벌레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건강을 많이 해쳤고, 남편도 나도 몸이 많이 상한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발리에 있는 아름다운 장소, 볼 거리, 먹을 거리 등을 많이 둘러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열두 살 난 아들도 함께 왔다. 아들에게 우리 부부가 15년 전에 쏟았던 것 같은 지나친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주거비와 생활비가 지원이 되는 파견이라, 여러 모로 집을 얻는 것이 나았다. 우리의 발리인 친구 부부가 도와줘서 우리는 발리에 도착할 때 즈음 이미 살 집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 집을 포함해서 여러 채를 영상으로 보고 해외송금 하느라 애쓴 이야기나, 그보다 전에 몇몇 부동산 에이전트들과 끝날 거 같지 않던 채팅들을 나눠야 했던 이야기들은 해봤자 답답하기만 하니 생략한다.


아, 그러나 우리의 아담한 2층 집은 어여쁜 겉모습에 비해 속으로 고쳐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한국의 모든 집도 사실 사소한 문제 몇 개쯤은 다 있다 하겠지만, 인니의 집은 대부분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다 큰 편이고 안 그런 집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일 주일 살아보고 내가 생각한 우리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 가지로 압축됐다.

(다른 문제점들은 살면서 차차 고치거나, 대충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국집 같으면 야단 났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인니에선 과감하게 접기로 결정했다. 이러다 일 년 내내 집 고치고 청소만 하다가 돌아가는 수가 있으므로. 유엔 국제청소서비스도 아니고.)


첫째, 화장실의 변기물이 잘 안 내려간다. 그래서 첫 주에 휴지를 따로 버려야만 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1층도, 2층도 다 비슷한 수준이다. 1층은 물이 다시 채워지지 않고, 2층은 물이 잘 내려가질 않았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게 고장나거나 막힌 게 아니란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게 나름 제대로 동작하는 상황인데, 더 개선될 게 없어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사람 불러도 대단한 기술자가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혁신적인 부품으로 갈아끼울 수도 없을 것이다. 변기 자체를 다 뜯어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략 절망.


휴지를 변기에 버리지 못하고 일 년을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지만, 인도네시아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냥 내 얘기가 아니라 이 이야기를 현지 교민들과 나눠보면 모두 동의하는 포인트였다. 여기 인니에서는 누구나 화장실에 속 썩어 본 경험이 다 있었다.)


집 화장실에 일 처리한 휴지를 모으는 경험을 대체 해 본 적이 있었나 없었나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 변기가 고장 났을 때 그랬던가? 똥 휴지가 화장실 옆에 쌓이는 건 한국에서 관리가 잘 안 되는 공중화장실에나 가면 보는 광경 아닌가? 그나마 요즘 한국은 공공 관리도 잘 되는 편이고, 휴지통 없는 화장실 캠페인도 있고 해서 도심 공중화장실에선 이 끔찍한 똥 휴지들을 보지 않아도 좋게 됐는데 말이다. 굳이 발리까지 와서 이 꼬라지를 우리 집에서 보아야만 하다니! 그냥 여기서 미치는 건가?!


게다가 화장실은 변기만 문제인 게 아니었다. 한 술 더 떠서 타일 공사가 잘못되어서 물을 쓰고 나면 배수구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화장실 입구에 몰려들어 고였다. 이런 식이라면 매번 물을 쓸 때마다 목욕탕이 한강이 되고, 우린 늘 발을 적시고 살아야 한다는 건데 미칠 노릇이었다. 발이야 매일 닦는 수고를 한다고 쳐도, 입구에 물이 고여 있으면 이 열대의 날씨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번식하겠는가. 갑자기 집에 열대 세균 연구소를 차릴 판이었다.


일단은 첫 주에 바닥이 제법 높은 슬리퍼를 사서 신는 걸로 임시방편을 삼았다. 그다음은 어쩌나.

제일 확실한 해결책은 타일 바닥을 깨고 새로 공사를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겨우 먼지들을 닦아내고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공사에 날릴 분진들과 동반될 소음들을 다시 겪을 수는 없었다.


둘째, 자주 바깥공기가 매캐하게 오염되어 있다.


이건 사람도 못 부를 근원적 문제이다. 사시사철 해양성 기후에 부는 바람이 보살펴 주는 이 신의 섬에서, 목탄 태우는 냄새를 하루종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가끔 쓰레기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래도 그만큼 골치는 아닌 거 같고(유독가스가 발생할 텐데 그 정도로 냄새가 심하지 않다.) 어디선가 목탄 타는 냄새가 자주 나는데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르논이 거주지로 각광받고 있어서인지, 주변에 건축물이 두 군데나 올라가고 있는데 그 곳들이 의심스럽다.


가장 끔찍했던 날은 첫 주 수요일로, 오전에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1층에 내려왔을 때 연기가 자욱해서 어이가 없었다. 아들은 눈이 따가워서 눈을 못 뜨고 계속 눈물을 흘렸고, 나는 하루 종일 가슴에 연기가 꽉 찬 느낌으로 살면서 연달아 기침을 했다. 발리 건축물들이 이음새가 단단하지 않고 창문이 많은 구조라서 아무리 문을 닫아놔도 연기들이 쉽게 뚫고 들어올 수 있다.


그 날이 발리로 온 후 가장 괴로운 날이었다. 운명적으로 왔다는 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이 시간 이 곳에 내가 있는 것이 원망스럽게 여겨졌다. 우리는 폐가 강하지 않은데 이렇게 과연 일 년을 버틸 수 있겠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하필 전 달에 미국의 맑은 하늘 아래 머물다 온 지라 온몸의 오염 대항력이 정말 부족한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개선되지 못한 문제라고 생각하니 제법 우울해졌다.


셋째, 바퀴벌레, 모기, 개미 등 벌레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처음 부엌에 쌓아둔 한국 라면들 5개입 봉지들 사이에서 바퀴를 보았을 때 엄청나게 놀랐다! 그렇게 큰 바퀴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내가 바퀴라면 꽤 국제적으로 겪어본 자로서 - 미국, 중국, 한국의 집바퀴들을 익히 섭렵한 바 있는데, 인니의 땅바퀴는 실로 첨 만나는 것이었다. 인니는 밥그릇도 작고, 차도 작은 차가 많고, 사람들도 체격이 크지 않는 등, 속해 있는 대부분이 다 아기자기한 편인데, 왜? 왜? 바퀴는 세계 제일 큰 것인지?!


미국의 바퀴는 엄청 크다. 약 뿌리면 죽는다. 바퀴벌레 방제약을 곳곳에 놓아두면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징그러웠지만 많이 크다는 인상 빼놓고선 각인될 만한 특징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한국의 바퀴는 미국 바퀴의 중간 정도 되는 집바퀴들이다. 가끔 만나는데 징그럽긴 해도 역시나 방제하면 안 만나도 된다. 이것들아, 내 집에 함께 사는 건 좋은데, 제발 만나지는 말자고. 좀 몰래몰래 다니는 예의를 갖춰 보자고.


중국의 바퀴도 엄청 크다. 중국에 살러갔던 첫 날, 밤에 잠이 안 와서 거실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뭔가 꺼먼 물체가 시야에 걸려들어서 쳐다보니 바퀴였다. 아놔, 바퀴벌레는 제발 좀 환잉꽝린(欢迎光临 환영합니다)하지마. 이 바퀴는 몹시도 영악하여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동작을 멈췄다. 나는 근처에 있던 잡지책을 주섬주섬 집어들고 둘둘 말아쥐고 바퀴에게 점점 다가갔다. 그랬더니 나쁜 결말을 직감한 이 놈의 바퀴가 갑자기 공중으로 점프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는 그런 장면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보질 못했다.


바퀴벌레의 살기 위한 고공 점프라니! 밑에 트램펄린도 없는데 그렇게 높이 뛰어 오르다니!


그런데 그 놈이 운이 나빴던 게, 내가 인간치고 명중력이 높은 지라 그 놈이 땅에 닿을 때를 기다려서 제대로 후려쳤다. 물론 단번에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벌레라 여러 번 쳐야 했던 게 문제였으나, 어쨌든 일격에 점프질을 멈추게 하고 바닥에서 연타로 가격하여 바퀴벌레를 해치우는데 성공했다. 그 때 우리 아들이 고작 한국나이 다섯 살에 불과해서 엄마로서 모든 해충을 싹 해치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니의 바퀴는 이렇게 바퀴 경험이 많은 나를 놀라게 했다. 밤에 2층에 있다가 1층에 물 가지러 가면 어두운 부엌 싱크대 뒤편으로 스르륵 숨는 게 보이는데 기절할 노릇이었다. 1층 화장실에 갈 때 맞닥뜨리기도 했다. 인니 바퀴들은 열대 생물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느렸다. 좀 빨리빨리들 숨으라고! 화장실 불을 딱 켰는데, 그 놈도 오도가도 못하고 나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아 정말 인간과 바퀴벌레는 뭐 이딴 동행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가!


결국 1층 화장실에 있던 놈은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쳐서 이겨보기로 했다. 스프레이를 치면 나도 그 약을 먹게 되기 때문에 달갑지 않지만 (미국, 한국, 중국에서도 안 치고 잘 버텨 봤는데)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스프레이 분사를 시작했는데, 아 놔 이 놈의 바퀴가 살려고 욕실 구석으로, 변기 뒤로, 계속 튀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도 계속 스프레이로 그 놈의 뒤를 쫓아갔다. 이 뭐 스프레이로 범죄자 퇴치하는 것도 아니고, 한낮 우리집 화장실에서 갑자기 뭔 대활극이냐고. 그런데 마지막에 약을 먹다먹다 지친 바퀴벌레가 갑자기 내 쪽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큰 문을 통해 최후의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끼약! 나도 비명을 지르며 결코 내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스프레이를 꽉 눌러서 양껏 누르고 정조준! 바퀴벌레가 죽고나자 정말 모든 덧정이 떨어져서 화장실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어차피 몇 시간 후에는 문 열고 죽은 바퀴를 버려야 하는 운명이었다는 슬픈 얘기.


이 때 뿌린 바퀴약이 다른 바퀴벌레들에게도 전이가 되어서 서로 나눠먹은 건지, 그 다음 날에 같은 목욕탕에 중간 바퀴와 작은 바퀴가 하나씩 나와서 나동그라져 죽어 있었다. 더 이상 시체 치우기가 싫어서 아들에게 내가 똥 휴지를 치울 테니, 네가 바퀴를 치우는 건 어떠냐고 슬쩍 제안해 보았으나, 아들은 차라리 똥 휴지를 치우겠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2층으로 올라갔다. 바퀴 시체는 다시 나의 몫. 아들은 똥 휴지를 쓰레기장에 치우고 돌아오면서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그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정답이다, 아들. 이 쪽도 저 쪽도 아주 죽을 맛이야.


그 다음 날은 금요일이라 첫 주의 서바이벌을 축하하며 새로 생긴 쇼핑몰에 가서 즐겁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녁 어스름이 아름답게 져 가는 거실 창 그림자 위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와서 약 퍼 먹고 뒤집어 죽어 있었다. 아, 씨. 집에 오자마자 바퀴 시체 처리라니. 아름다운 나의 불금을 이렇게 망치다니, 이 더러운 곤충들아! 키친 타월을 뜯고 바퀴 시체를 집으러 갔는데, 아뿔싸 이 놈이 아직 정신머리가 붙어 있어서 갑자기 날아서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중국 바퀴는 점프하던데, 인니 바퀴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난다 날아!


그러나 내가 누군가. 잡지책으로 트램펄린 타는 중국 바퀴를 일격에 죽였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니 바퀴를 빈 플라스틱 물병을 휘둘러 일격하였다. 바퀴는 날개가 부러져서 기어다니며 도망을 쳤는데, 추가 타격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그 소동을 겪고는 한 동안 바퀴를 만나지 않아도 됐다. 틈틈이 바퀴약을 그 1층 화장실(아마도 넥서스?)에 쳐버릴까 생각 중이다. 자주 시체를 만나고 싶지 않지만, 산 놈들을 만나는 것보단 손 쉬울 테니.


모기에 계속 아들이 뜯기고 있는 얘기는 그냥 생략한다. 모기가 싫어하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두 개의 블루 라이트를 켜면서, 물린 곳에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유칼립투스 등을 바르면서 분투하고 있지만, 당최 박멸은 힘들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모기장이 어서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개미나 파리에는 신경 쓸 틈도 없다. 패스, 그냥 거기 살아 얘들아.

특히 개미들은 현관문을 열면 늘 분주히 어디론가 줄 지어 가고 있다. 우리집에 먹을 게 많은 걸까?

그냥 아침에 아들 학교 바래다 줄 때, 개미들이 '학교 잘 다녀오십쇼‘ 하고 인사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아들은 거실에 나와 있는 바퀴벌레들이,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 "환영합니다, 주인님!"이라고 맞으러 나온 거라고 했다. 하하하. 엄청 약 올라 있는 와중에 아들의 천진한 농담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래서 가족이 함께 고생하고 함께 사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일단은 매일 저녁 알러지가 있는 서로를 위해 등을 긁어줄 수 있고 말이다.


별도로 이 와중에 도마뱀은 영물이라 모시고 지내야 한다. 초록 무늬가 있는 커다란 도마뱀은 행운의 상징이다. 이 녀석이 집에 나오면 그 집이 잘 된다. 우리집에 나오는 녀석은 아직 그만큼 크지 않다. 나무에 물을 주듯 이 녀석도 잘 먹여서 우리 몫의 행운을 크게 길러야 할 텐데 말이다. 간밤에 2층 계단에서 똑또로로록 우는 소릴 들어보니, 두 주 사이에 소리가 우렁차진 게 제법 컸다 싶었다. 도마뱀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우리 좀 밀어다오.


밤마다 게이꼬 거리던 도마뱀 녀석을 우리집 부엌에서 드디어 만났다.


도마뱀을 부엌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땐 제법 반갑기도 했는데, 하필 만난 장소가 바퀴벌레를 만났던 바로 그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부엌 싱크대와 진열대를 싹 다 정리했다. 발리에 와서 힘든 것 중 하나가 환경이 한국만 못한 부분을 전부 내 노동력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보다 더 청소를 하고, 더 정리를 한다. 밥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해서 벌레들의 미래 양식을 없앤다. 매일 이러다보니 손목과 팔의 통증이 상당하다.


그래도 두 번째 주부턴 밤이면 똑또로로록 게이꼬 하고 우는 도마뱀에게, "조용히 해, 나 아직 안 잔다!" 하고 호통도 치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어떤 새벽엔 미친 닭이 3시 4시에 울어서 잠을 깨기도 하고, 도마뱀이가 2시 3시에 울어대서 잠을 깨기도 하고, 동네 동물들과의 기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다 두 번째 주 수요일부터 모든 상황은 긍정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 날 화장실을 수리해서 절반이라도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고, 연기의 진원지를 찾아 연기를 일시적이나마 멈출 수 있었다. 바퀴벌레약도 인도네시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새 친구에게 부탁해서 좋은 걸로 주문해 놨으니 상황들이 점점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생겼다. 이 밝고 고마운 수요일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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