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결국 빛이 난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는데 큰아들 온이 다가와 내 머리를 빗겨줬다. 살면서 미용사 말고는 나와 다른 성별 (아들에게 이성이란 표현은 다소 부적절하니)의 사람이, 것도 어른이 아닌 꼬맹이가 내 머리칼을 빗겨주긴 처음이다. 자발적인 마음씀씀이가 그저 대견했다. 이 순수함과 다정함 그대로 간직한 채 잘 자랐으면 좋겠다. 이름처럼 따뜻하기를.
모쪼록 그 결에 오랜만에 미소하는 내 얼굴을 거울로 만났다. 주름이 자글자글 번지는 미소 속에 32년 간 실패로 상처받은 무수한 경험치가 녹록하게 묻어있었다.
작위적이지 않은 표정에서 나는 새삼 실패에서 자유로워진다기 보다는, 실패가 주는 상실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모여 나라는 한 사람을 이뤘고 앞으로도 이루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한도 끝도 없는 흔들림 속에서 굳건하게 버틸 수 있도록.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글쎄… 그래, 요소. 그저 작은 요소들의 모둠이라 여김직하다. 저마다 다른 모양과 빛깔이 빚는 개성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별자리를 이루고 은하수를 형성하듯이.
실패는 결국 빛이 난다. 실로 오랜만에 조우한 진심으로 우러나온 내 미소처럼,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나라는 사람은 타고나기를 민감하고 쉽게 상처받고 여리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천성이다. 이를 상쇄하고 보완하듯 그만큼의 열정과 끈기 또한 내재돼 있다.
실패한 만큼 성공할 수 있고 그 반대일 수 있다. 미련하게 우직한 만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내가 뜻하는 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애란 표현이 여전히 느끼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 죽기 위해 잘 살고 싶다는 의지를 품는 스스로에게 이 정도 독려는 하고 싶었다. 벌써부터 기죽지 말라고.
어디선가 흘려듣기를 ‘아름답게’의 어원은 ‘나답게’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자리에서 나만의 빛을 내며 아름답게 죽을 것이다. 그러려면 역시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아름답게,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