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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Sep 30. 2024

6. 기다림

우리는 모두 같은 시곗바늘에 올라타 있지만


누구나 인생에 굵직한 곡절 몇 개쯤은 있을 것이다.

서른 하고도 몇 해를 살아내며 가장 굽이치는 곡절이자 애탔던 때를 떠올려본다.

내 나이 열넷, 우리 엄마는 첫 번째 암으로 수술을 한차례 치렀다. 그리고 올해로 내 나이 서른여섯, 엄마는 다른 암으로 수술대에 또다시 올랐다.

병원에서의 첫날, 같은 병실 어르신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짙은 밤을 여명이 몰아내는 새벽까지 그렇게 내내 비명과 관세음보살을 외치던 어르신은 엄마의 마음을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어르신의 증상은 엄마가 갖고 있던 병의 말기증상 중 하나였다. 엄마는 새벽 내도록 떨었다. 옆에서 귀를 막아줄 수도, 잠을 재워줄 수도 없던 나는 무력감에 떨었다. 병실을 바꿔서 또 비명소리에 떠는 일은 없었지만, 이미 마음은 웃풍 드는 오래된 집 같았다.

이윽고 엄마의 수술날 아침이 밝았다. 세수도 못하고 중환자실로의 이동과 수술 후 절차 등 설명을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수술방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시간 감각이 고장 난 듯이 시간이 지겹도록 안 가다가도 눈을 깜빡 하니 엄마는 이동 침대로 옮겨졌다.

엄마는 옮겨지는 내내 눈을 질끈 감고 무섭다고 몇 번 이야기했다. 곧 수술실 앞 모니터에 엄마 이름이 떴다. [외과, 박*자, 수술중] 수술실 앞에 앉은 사람들의 기다림의 색깔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환희를, 어떤 이는 포기를. 나는 수술시간 내내 눈물을 쏟으며 서둘러 가지 않는 시간을 원망했다. 불쌍한 우리 엄마는 왜 두 번이나 살을 찢어야 하는가, 하며. 시계를 볼 때마다 숫자가 그대로인 것 같았다. 먼저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날의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밖에 없었다. 나의 무능과 무력함이 너무 처절해서 팔다리가 꽁꽁 묶여 제단에 올려진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키지 못할 숱한 약속을 신께 하며, 드디어 영원같던 기다림의 시간을 다 보내고 엄마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투병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다. 가장 썼던 몇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수월하게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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