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계단식이라고
큰 성장의 순간은 그만한 고난과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겪어온 크고 작은 성장의 순간들은 제 값을 치른 후에 내 것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미술을 하며 성장으로 빚어진 순간이 있다.
혹독한 값을 치르면서 가능성이 한없이 낮은 일을 꿈꾸던 때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나는, 그 해 1년 내내 꼴찌조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입시반은 공부와 실기를 겸비한 1조부터 공부와 실기 둘 다 꽝인 5조까지 나누어 앉는 형식으로 1년 내내 5조는 같은 멤버였다.
직선을 잘 못 그어서 혼자 서서 직선만 그은 날도 있었고, 물감을 잘 못 다루니 파스텔로만 그려야 해서 툭하면 손이 부르터 그림에 피가 번지기 일수였다.
매일 시험 치듯 그림이 완성되면 모두 바닥에 쫙 깔아 두고 크리틱을 한다.
선생님의 기다란 회초리 끝에 내 그림이 밀려져 나가고, 이름이 불린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못했다. 이런 주제는 이렇게 그렸어야 더 효과적이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칭찬받는 일은 아이디어뿐이었다. 입시가 가까워오자, 선생님은 싹이 보이는 친구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몰두하셨다. 선생님은 전체의 성과를 위해 그래야만 했고,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한 일을 했다.
그간 모아둔 자료들과 내가 최선의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들을 연구했다. 답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추운 겨울 어느 날부터인가 봉선화가 톡 터지듯이 물꼬가 톡 터졌다.
그림의 스킬은 여전히 그닥이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이 이전과는 서서히 달라졌다. 선생님 눈밖에 나자 오히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 시험까지 꼴찌조 신분을 유지한 채, 꼴찌조라고는 생각 못할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다.
난 이 시기의 경험으로 물꼬가 트이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며, 그때를 기다리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
성장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성실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기다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