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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Dec 30. 2020

엄마가 여자는 평생 자기관리를 해야 한대요

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초등학교 교사인 소현 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하는 엄마와의 통화가 너무 불편합니다. 통화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소현아, 너 그 중학교 때 친구 민지 알지? 걔 엄마가 그러는데 민지 살 엄청 뺐다더라. 병원에서 약 타왔다는데 그게 효과가 있나 봐. 민지는 곧 결혼도 한다는데 넌 살은 좀 뺐냐? 요새도 야식 먹고 그러는 건 아니지? 너도 다이어트 약 좀 먹어볼래?”


엄마는 항상 남들 이야기를 꺼내며 다이어트로 결론 짓곤 합니다. 소현 씨는 엄마 이야기에 대꾸할 힘도, 맞받아칠 여력도 없어 대충 다른 주제로 넘어갑니다.


“야식 별로 안 먹어. 먹을 시간도 없고. 요새 학기 말이라 일이 많아서 퇴근이 꽤 늦….”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맞받아칩니다.


“그래서 너는 요새 만나는 사람 없어? 야, 막말로 민지보다 네가 훨씬 나은 조건인데. 초등학교 교사 되기가 얼마나 어렵니! 그래도 결혼하려면 다이어트 좀 해야 해. 뭐 네가 뚱뚱한 건 아닌데, 남들 보기에 썩 날씬한 몸은 아니니까. 소현아, 여자는 평생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소현 씨는 엄마의 폭격에 넋이 나가고 맙니다. ‘기-승-전-다이어트’인 엄마와의 통화는 학교에서 온종일 시달린 소현 씨를 또 한 번 지치게 합니다. 엄마의 평생소원대로 초등학교 교사를 한 것부터가 잘못이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와 무력감도 듭니다. 소현 씨는 엄마가 정말로 내 인생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나를 그저 ‘날씬하고 남 보기 좋은 딸’로 만들고 싶은 건지 궁금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소현 씨는 오늘 저녁 샐러드만 먹기로 다짐합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저는 제 또래의 지인과 상담실을 찾는 딸들에게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꽤 듣습니다. 딸의 다이어트, 연애, 결혼, 직업, 통금시간 등을 죄다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엄마가 참 많아요. 단순히 “엄마랑 말 안 할래”라고 하기에는, 일생을 육아와 집안일에 헌신한 엄마를 저버리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올라옵니다.


엄마들은 왜 딸을 통제하고, 간섭하고, 자기 틀에 가두려고 하는 걸까요? 엄마가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인 1970~1980년대에는 20대 초중반 여성에게 결혼, 출산, 육아라는 의무가 사회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또는 취직하고 바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이었죠. 그리고 평생 아이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엄마가 자신과 신체적으로 닮았지만 훨씬 젊은 딸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평생 몸 바쳐 키워온 딸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예쁘고 날씬한 딸이 된다면, 자신이 희생한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딸을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으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죠.


또 엄마는 사랑하는 내 딸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항상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끝없이 권해요. 딸이 참다 못해 “그만 좀 해!”라고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니?”


엄마는 나이와 상관없이 딸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 딸은 내가 제일 잘 알지’라는 마음으로 딸의 인생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하려 합니다. 내 딸의 성취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딸에게도 맞는 것처럼 강요합니다. 하지만 딸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이미 자신의 자아를 형성합니다. 딸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데 엄마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죠. 여기서 엄마와 딸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 해요

그렇다면 딸들은 엄마가 경계를 침범하려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엄마가 내 몸, 내 연애, 내 삶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데 ‘그래도 엄마니까’ 하며 계속 받아주는 것은 둘 중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엄마, 나는 나,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엄마를 위한 방향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평생 딸의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엄마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연료 삼아 열심히 투덜거리는 일이 단지 습관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딸은 어리고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환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엄마는 분명, 아무 잘못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무 잘못이 없다.”


소현 씨는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엄마, 나는 다이어트하고 싶지 않아. 난 충분히 건강하고 내 몸에 만족해.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어. 엄마가 보는 세상에서는 다이어트와 결혼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싶어. 나는 내가 날씬하든 말든 상관없이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날 거야.”


그러나 엄마의 마음만은 알아줄 필요가 있죠. 잊지 말고 꼭 이렇게 말해주세요.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려고 한 거 알아. 나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느껴져. 많이 고맙고, 사랑해.”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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