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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문과생 Mar 23. 2023

왜 쓰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항상 글쓰기에 대한 갈망은 마르지 않았다. 괴롭고, 외롭고, 귀찮고, 하찮은 일이었지만 언제나 글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군대에서도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며 골머리를 앓다가도 즐거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무슨 분야든지 간에 글쟁이의 숙명을 타고났구나 깨달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권태는 무조건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 권태를 이겨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뿐이겠거니 생각했다. 


전역하고 개강하기까지 약 한 달 정도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나태하게 있을 수만은 없어서 뭔가 거창하고 의미 있는 걸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영화제를 출품을 목표로 하는 동아리를 들어가야 하나, 어느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나 대외활동을 해야만 하나, 어디 상업영화 현장에서 알바라도 해야 하나. 캠퍼스픽을 통해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동아리나 대외활동들을 찾아 지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떨어지거나 무산되었다. 


원래 김이 새 버리면 완전히 외면해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 더 이상 대외활동을 찾아보는 것도 귀찮았고 사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든 것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뭐였을까'였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도 아닌) '해야 할 것만 같은' 일을 찾다 보니 의욕이 금세 식은 게 아닐까 싶어서. 난 무엇을 원하고 있었나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 그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삶에 대한 나만의 통찰이든, 예술에 대한 내 사랑이든, 영화에 대한 해석이든,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말로 떠드는 것은 소심한 내게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영화, 팟캐스트, 블로그 등 어떤 매체를 사용해서 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는 걸 나는 원했던 것이었다.


그런 마음이 사실 내 무의식 속에도 있었던 걸까. 내가 지원했던 대외활동들의 유형이 대체로 그러했다. 웹매거진 제작 동아리, 독립영화관 관객기자단, 영화 토론 동아리 등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 생각을 펼치거나 관심 분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주목적인 활동들이었다. 그러나 그 활동들에 참여한 나를 상상해 봤을 때, 내가 원했던 '온전히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팀 활동이고, 회의 과정에서 분명 내용이 수정될 것이며,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 혼자, 또는 나와 취향이 같은 소수의 사람들과만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결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간섭이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내 동지 (친구, 선배보다도 동지라는 워딩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띵형과 현재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고 있는 중인데, 역시 둘이 바라보면 방향의 교집합의 영역에서 활동을 진행하다 보니 서로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여럿 있었다.


결국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혼자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솔직하고, 그와 동시에 효율적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바로 글을 쓰는 것밖엔 없었다. 비용적이고 기술적인 측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는 매체, 내가 가장 즐기면서 활용할 수 있는 매체, 그것은 글이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어떻게든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내 상태에서 블로그에만 끄적이는 것은 전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개인 프로젝트로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꽤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대학 졸업하기 전, 독립출판을 통해 책 한 권을 내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은 전혀 정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가장 솔직한 표현으로 짤막하게 에세이를 쓰고, 언젠가 이 글들이 쌓였을 때,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되겠다 싶은 어떤 묶음이 나왔을 때, 그때 책 출판을 기획해보려 한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으나, 이제는 괴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소홀히 하지 않고 진짜 나의 직업이 된 것처럼 대하련다. 


다시금 나의 숙명은 글쟁이임을 자각했다. 앞으로 일상에서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고, 그것들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 보겠다. 장르는 가리지 않을 것이다. 에세이, 시, 수필, 소설, 시나리오, 칼럼, 비평 뭐든 상관없다. 그저 쓸 거다. 먼 훗날 그 언어들이 나만의 철학일 수도, 미학일 수도, 문학일 수도 있길 바란다. 글이 내가 되길. 내가 글이 되길. 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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