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혜 Sep 01. 2023

부회장의 나비효과

지난주 회장 선거가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첫째가 부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반면 여름방학부터 공약을 준비하고 연설 준비를 했던 둘째는 회장, 부회장 모두 나섰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첫째는 선거에 나간다 만다 일절 말이 없어서 선거에는 안 나가는 줄 알았다. 사춘기 초입이라 부끄러움이나 여러가지 또래 관계, 그리고 생각까지 많아지다 보니 쉽사리 나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들은 부회장 당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학기 회장의 추천으로 인해 후보로 올라갔고 결국 남자 부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첫째는 생각지도 못한 당선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사실 전날까지도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해서 고민을 토로했던 터라 나 역시 기뻤다. 자신을 향한 지지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에 아이는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옷차림부터 신경쓰기 시작했다. 입는 옷이야 비슷했지만, 옷 매무새를 만지기 시작했다. 또, 학교에 더 즐겁게 갔으며 당선하는 날 한정해서 나에게 존대어를 쓰기도 했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걱정이 한결 줄어든 얼굴이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자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는 반장, 부반장, 회장, 서기(남, 여)가 있었다. 부끄럼도 많았고, 그다지 공부에도 특출나지 않았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학급 임원이 될 수 있었다. 나를 좋아했던 친구의 공개 고백 덕분에 아이들이 우리 둘을 서기로 만들어줬다. 덕분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회장, 부회장, 반장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급 임원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임원으로서의 품위(?)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학급 생활도 더 모범적으로 해 나가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보며 그 시절이 떠올랐고, 학급 임원이 가져다 주는 '삶의 나비효과'를 다시금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계기'들이 있다. 그 계기들은 삶의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올해 초등학교를 마무리하는 아이에게 이런 좋은 계기가 찾아와 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둘째는 비록 임원은 되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내어 준비해 보는 경험과 뼈아픈 실패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별로 준비하지 못한 오빠가 당선되는 걸 속상해 해서 한 마디 해줬다.


"오빠는 6년이라는 학교 생활을 통해 친구들에게 오빠가 그만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어. 다른 남자 친구들 보다 여자 친구들을 덜 불편하게 했다든지, 아니면 성적을 통해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해 냈다는 증명을 보였다든지 말이야."


은근슬쩍 '공부' 이야기를 꺼냈지만 둘째도 반에서 임원이 된 아이들이 공부를 어느정도 잘해서 그런지 나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아! 그래서 요즘 수학 문제집을 예전보다 군말없이 푸는구나.....) 둘째에게는 당선이 안된 이번 선거를 통해 또 한 번 좋은 인생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임원 선거가 가져온 나비효과. 

앞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수많은 계기들이 불러올 나비효과들이 있을거다. 좋은 일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실패'라고 불리우는 계기들은 '실패'로 규정짓지 않고 삶을 단단하게 다지는 거름이라 생각하는 걸 잊지 말아야지. 꼭! 꼭! 


 

작가의 이전글 몇 번의 피를 더 봐야 육아는 편해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