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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근 Aug 02. 2021

문화대간 기행

1500년 전 지리산에 바다 조개가 나타났다

문화대간 기행

1500년 전 지리산 첩첩산중에 바다 조개가 나타났다 그 이야기 풀어보기


지리산에 사람이 들었다

청동기 때 고인돌과 1500년 전 가야유물 같은 오래된 시대의 흔적이 보이고 있으니 그것들은 첩첩산중 지리산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실체다


최근에 지리산 아영 고을의 가야시대 고분에서 석회와 조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조개는 바다에 있고 석회는 조개를 태워 만든 가루다

그곳에서 바다와의 거리는 좌우로 100km가 넘은 곳이고 신라와 백제의 적국이 있으니 바다로 가는 길은 지리산 벽소령 너머의 남해 하동 뿐이었으리라


조개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었을까?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량이 되었던 인간과의 인연은 패총에 있다

그런데 바다와 먼 첩첩산중 지리산 가야 시대의 유물에 조개의 등장은 먹는 것 아닌 생활 문화의 출현을 의미한 것이리라


나는 지리산 빨치산들의 생활을 들려주시는 할아버지들의 구술을 많이 조사했다

대부분 짐꾼 같은 빨치산들의 생필품을 날라다 주어야 했던 분들이셨다

그분들은 총칼의 무력 앞에 선 목숨 붙임의 강제 조력자들이었으니 부역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로 듣고 본 것들이 많아 빨치산의 주체들보다 실제 상황을 더 잘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여름철 지리산 빨치산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장 복장으로 인한 땀띠와 군화 속 발이 물러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둘 다 피부가 물러져 피가 터져 나오고 가렵고 아픈 고통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그래서 하동 근처의 빨치산 부역자들이 조개를 보내주면 조개껍질을 곱게 빻아 피부와 발에 발라 치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야 고분의 유물 조개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조사했던 이 고을 사람들의 구전 자료를 찾아보았다


할아버지는 함양에서 6살 때 이사를 오셨다 한다

부친이 일제 때 이 고을 면장을 하게 되어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이다

면장은 말을 타고 다녔는데 처음 말을 오래 타거나 여름철 산길 들길 요철이 심한 먼길을 말을 타고 갔다 오면 엉덩이에 생긴 물집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얇게 썬 무우에 조개가루를 묻혔다가 물집 위에 놓고 치료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가야시대의 흔적이 존재한 지리산 소금 길로 넘어왔을 소금은 아영 가야의 공동체 생존 접착제 었을 것이다

그 길로 가져왔을 조개는 가야 무사들의 엉덩이에 생긴 물집 치료제와 바다에서 온 귀물 음식이 아녔을까? 그 답은 역사와 이음 되는 생활문화에 있지 않을까 싶다


두 가지의 쓰임을 가진 조개는 매장자마저 저 세상으로 가져가야 했던 동행체가 될 정도로 크고 귀한 생전의 몸 붙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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