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알려진 큰 이야기는 광한루 오작교에 든 견우직녀이고 아직까지 숨어 있는 것은 소동 폭포 너른 평상 바위에 든 암반 술 칠석주 이야기이다
선조들의 풍습에는 칠월칠석날 밤에 집 뒤꼍 장독대나 부뚜막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칠성님께 축원을 올렸다.
북두칠성은 하늘 한가운데의 북극성에서 기운을 받아 동서남북 사방으로 모든 인간의 생사와 집안 화복의 기운을 내려준다는 생각이 상속되어 오면서 다양한 문화를 내었다
그중에 지리산을 넘나들며 소금과 콩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다니던 소금 길목에 암반주巖盤酒 이야기가 있다
칠월칠석은 지리산 소금길을 오고 가야 했던 일 년 중에 가운데 날이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의 기운을 받아 사람에게 내려주는 새해 첫날 칠성신에게 올렸던 사람들의 기도는 칠월 칠석날 소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 년 중 칠성의 기운이 가운데에 서는날 장독대와 부엌 조왕신을 찾아 기도를 올렸다
지리산 소금 지게꾼들 역시 칠월칠석날은 긴 여정의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중간 날이었고 그 방법은 소동 폭포 평상 바위에 암반주를 제물로 차리며 칠성신에게 마음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 평상 바위 큰 구멍에 칠석날 밤 12시가 되면 칠성의 기운이 모아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옛날 소금 지게꾼들이 칠월칠석날 하동에서 벽소령을 넘어 소금을 지고 오다가 그 평상 바위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지나갔고 평상 바위 여러 개의 구멍에 빗물이 고였다 그런데 한 구멍에만 빗물이 고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지나가던 도사에게 물으니 칠성 신중에서 소금 장독을 관장하는 칠성신의 기운이 그곳에 든 것이라며 매년 칠석날 그곳에 술을 붓고 제를 올리면 무탈하게 소금길을 다닐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지리산 소금 지게꾼들은 그때부터 칠월 칠석 날이면 그 바위 구멍에 술을 붓고 칠석제를 올렸다 한다 암반주는 그렇게 생겨났고
막걸리 암반주에 기름장 소금 안주가 전부였다는 그 이야기의 무대는 이제 피서철 유원지다
조선시대 지리산 유람이 유행이던 시절 사람들은 이 바위 구멍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술을 한잔씩 돌려가며 시조와 창, 노래를 부르며 즐겼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암반주가 되었다가 술이 취하면 돌 술이 된다는 소금 길의 암반주 이야기는 이곳의 소동 폭포와 함께 명소와 명주로 소문이 났다
소동 폭포는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중국의 대문장가인 소동파의 이름을 차용한 폭포의 이름이다
소동파는 그의 적벽부에서
渺蒼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묘창해지일속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
“아득한 창해의 좁쌀 한 알이라 내 일생의 수유함(잠시)을 슬퍼하고 장강(양자강) 의 다함없이 흐름을 부러워 하노라” 라고 읊으며 배를 타고 적벽에서 밤새 놀다가 아침에는 뱃바닥에 쓰러져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지리산 뱀사골 소동 폭포 위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만년도 더 되는 물 석공이 파놓은 구멍들이 있으니 그 구멍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막걸리를 가득 부어 놓고 마셔가며 소리하고 시를 내고 흥얼거리며 폭포수에 장단을 실어 천년송이 보낸 계곡 풍과 놀다 보면 자신도 신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