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라는 선택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 동료들과 가벼운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A팀장님네 고양이가 제일 팔자 좋은 것 같아요. 넓은 집에 하루 종일 드러누워 간식도 마음껏 먹고 사랑도 듬뿍 받잖아요. 난 다시 태어나면 그 집 고양이로 태어나야지."
우리 회사 A팀장님은 스스로 티 낸 적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그래서인지 성격도 여유로워 여러모로 성품이 좋으신 분이었다. 그런 팀장님이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시는데 얼마나 정성스레 돌보는지 그 집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친구의 농담을 시작으로, 누구는 팔자 좋은 고양이, 누구는 그냥 동물 말고 식물 정도, 그리고 나는 부잣집 귀한 외동딸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마다 이유를 대며 깔깔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사이 다른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안 태어나고 싶은데?"
하하하하. 또 한 번 가볍게 웃고는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그냥 가벼운 농담인데 내겐 조금 다르게 다가온 말이었다. 언젠가 남편과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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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년 차,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 '내 평생 절대로 아이는 없어!'라고 단정 짓기엔 앞으로 내일의 선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 '현재로선' 딩크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우린 결혼 생활, 그리고 자녀계획 등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눴었다.
나 "나는 결혼하면 자녀는 1.2명(소수점) 낳고 싶어."
남편 "1.2명?"
나 "한 명은 적은 것 같고, 둘은 힘들 것 같고... 그래서 둘을 낳아도 되지만 일단은 한 명쪽에 살짝 더 가까워서 1.2명!"
남편 "그럼 난 0.8명! 한 명을 낳는 것도 좋고 낳지 않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면 연애하고, 연애하다 결혼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평범한 삶이고 당연했던 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 한 명은 무조건, 그 이상은 선택의 문제라고 여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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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1년 반, 결혼을 하고도 1년쯤 우리는 둘이 아주 신이 나게 놀았다. 매일 함께 퇴근하고 돌아와 맛있는 저녁 요리에 맥주 한잔, 주말에는 재밌는 영화 한 편 보며 새벽까지 피곤한 줄을 몰랐다. 혼자일 때보다 둘이 되어 더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결혼 2년 차쯤 되었을 때 주변에서 종종 아이 소식을 궁금해하곤 했다. 대놓고 "애 안 낳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좋은 소식 없냐고 은근슬쩍 묻곤 했다. 신혼생활을 즐기느라 조금은 미뤄왔던 일이지만 이제는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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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딩크인 친구가 몇몇 있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싫어해서, 경제적으로 부담되어서, 희생하는 삶이 싫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우린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난 조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낳아 돌잡이가 될 때까지 커가는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아이란 존재가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적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경제적으로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둘 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맞벌이를 하는 중이라 분명 부담은 들겠지만 감당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육아란 당연히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자체가 남보다 나에게만 더 특별히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딩크를 선택한 많은 이들이 하나의 이유가 아닌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 몇 가지 이유는 우리에겐 해당되진 않았다. 그러던 중 tv에서 나온 딩크족 연예인의 멘트에 한동안 내 머리가 띵-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아이에게 만끽하게 해 줘야지'라며 아이 입장에서 낳으라는 사람은 못 봤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왜 아이를 좋아하면서도 망설였는지 답을 알 것 같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해서, 저출산은 국가에 심각한 문제라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질 것이라서, 미래에 나를 부양할 가족이 없어서... 어느 하나 진정 아이를 위한 설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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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만약에 세상에 나오기 전 혹시 나에게 "넌 세상에 태어날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남편의 대답 또한 그렇다고 한다. 이유를 다 댈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씁쓸한 대답이었다.
존재해 본 적도, 세상에 나와 본 적도 없는, 상상 속의 '나의 아이'지만 그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넌 세상에 태어날래?"
이것은 사실 나 자신에게 주는 선택권이었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는 것으로, 낳지 않는 것으로 답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