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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문미영 Feb 15. 2024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


“물이 안 나온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봐.”


7시 즈음에 남편이 난리를 친다.

8시 전에 출근하는 남편은 항상 이 시간대에 일어나서 샤워를 한다.

“통화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관리사무소 전화 안 받는대요.”

“다른 집에서도 전화 하나 보다.”

원래 물이 안 나오면 전날에 미리 방송을 해서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는데 갑자기 물이 안 나온다.

잠시 후 관리사무소에 방송이 나온다.

“수도파이프 고장으로 물이 안 나옵니다. 원인 파악 중으로 수리하고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남편은 빨리 씻고 출근해야 하는데 안절부절이다.

결국엔 회사 헬스장 샤워실에서 씻겠다며 출근을 해버린다.

커피포트에 담겨있던 물로 양치만 하고 출근한다.

변기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

물이 안 나오니 불편하다.

1시간 정도가 지나니 방송이 다시 나온다.

“1층부터 10층까지는 물이 나옵니다. 아직 원인파악 중에 있으니 고층 세대는 잠시 기다려 주세요.”

우리 집은 딱 10층이다.

다행히 물이 나와서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온다.

“이제 전 층 물이 나옵니다. 수도 사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멘트는 없다.

관리 사무소는 항상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저번에 엘리베이터 멈춤 사건 때도 그렇고. 입주민의 권리만 주장하고 본인들의 책임은 은근슬쩍 넘어간다.

물이 잠깐 안 나와보니 물의 소중함과 불편함을 깨달았다.

아침에 그 난리를 겪고 나니 비데가 작동이 안 된다.

남편은 출근해서 전화가 온다.

이제 물은 나오냐고.


급 선미작가님과 번개 점심 약속을 잡고

밥 먹으러 간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매번 얻어먹어서 미안하다고 내가 좀 사주고 싶다고 하니 남편이 사주라고 한다.

우리 동네에서 곤드레밥을 맛있게 드셨다고 거기로 가자고 한다. 동네까지 태우러 와주셨다. 나도 요즘 건강식에 관심이 생겨서 흔쾌히 곤드레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

글쓰기, 독서, 난임이라는 공통분모로 가까워진 선미작가님과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설레는 마음으로 외출에 나선다.

이해인 수녀님 만나러 갔을 때 받아온 사인본과  새 책 한 권이 여분으로 있어서 김민 작가님의 <오 나이쓰>와 굿즈를 선물로 드리려고 챙긴다.

작가님과 곤드레밥 먹으며 그동안의 밀린 수다를 떨고 유산을 해서 위로를 해주신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니 한결 낫다.

라테 맛집인 ‘은구비로 카페’에 간다.

나는 아이스 바닐라라테 작가님은 뜨거운 바닐라라테를 주문한다.

무엇보다 임신한다고 못 마셨던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난임책 출간과 시험관 시술 이야기하다가

서울 강남 차병원 스토리를 듣는다.

나도 마리아에서 차병원으로 옮겨야 하나 요새 고민이 많다. 시술하는 것도 지치고 힘든데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자신 없다.

근데 마리아 병원은 시술할 때 주사약을 약하게 사용하고 차병원은 좀 세게 사용해서 확률은 더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신 몸이 많이 망가지겠지.

나의 임신과 시술과정에 공감해 주시고 이해를 해주시니 이야기할 맛이 난다.

내 공저책과 전자책도 직접 구매해 주셔서 더 감사하다.

그래서 더 위로를 받고 온다.

만나서 책 출간 이야기, 책 이야기 등을 신나게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동네까지 데려다주신 덕분에 편하게 집에 들어왔다.


아침 일찍부터 물이 안 나와서 정신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지인을 만나고 오니 한결 편해졌다.

역시 사람은 없어서 불편을 겪어봐야 소중함을 느낀다. 나중에 정전이 되어 전기를 못 사용하면 더 전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겠지.


외향적인 편이라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에너지를 얻고 동기부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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