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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Dec 14. 2023

마음이 쫄린다

수술 동지가 생겼다

국가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올해부터는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검사가 하나 더 늘어났다. 아파서 받는 검사도 아닌데 왜 이리 긴장이 되는지. 평소 정상범위에 있는 혈압도 올라갔다. 시력, 청력, 혈액 검사 등은 휘리릭 간단히 마쳤다. 여성과 검진을 한 후 마지막으로 수면 위 내시경까지 하면 끝이다. 


“혹시 제가 헛소리 하지 않았나요?”


몇 년 전 수면 위내시경을 하고선 세상을 다 잃은 거 마냥 한참을 운 적이 있다. 전적이 있기에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에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조용히 잘 잤다고 하니 다행이다. 위내시경까지 마치고 전체 결과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까지 들으면 끝이 난다. 


“운동량을 늘리셔야겠네요. 과일이나 음식 섭취를 골고루 하시고요. 그리고 위에 혹이 있는데 혹시 몰라서 조직을 떼어냈어요. 검사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평소에 불편한 건 없으셨어요?”


“네 큰 불편함은 없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울렁거림이 생길 때가 종종 있긴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가장 먼저 탈이 나는 편이라 지나갈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직 검사를 한다는 말은 신경이 쓰였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 다는데 마음이 쫄린다. 


일주일 뒤, 단순 물혹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아버지 식사는 챙기고 있었지만 나는 대충 챙겨 먹는 날이 많았다. 스스로 챙기지 못함을 반성하며 안도감까지 챙겼다. 


정작 문제는 여성과 검진이었다. 몇 년 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근종의 크기가 2년 사이 1cm가 커졌다. 이렇다 할 증상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위치에 자리한 녀석이 아니기에 근종이 맞는지, 다른 종류의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CT 촬영 일정을 예약하고는 검진을 마쳤다. 또 마음이 쫄린다.  


며칠 뒤, CT 검사까지 마친 후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얘기를 하시는데, 결론적으로 크게 신경 쓸 만한 문제는 없다는 소견이었다. 

그렇게 끝이 나나 했는데, 웬걸.


“복부 CT를 찍고 보니깐 담낭에 돌이 좀 보인데요. 크기가 작긴 한데 외과 진료를 보시면 좋겠어요. 진료 잡아 드릴게요.” 


장애물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하나를 잘 넘겼다 싶으면 다른 게 또 튀어 오른다. 갑자기 담석이라니.... 외과에 들러 CT상의 소견을 간단히 듣고는 복부 초음파 검사를 예약을 하고 돌아왔다. 


‘담석 발견하려고 CT를 찍은 건가? 도대체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소화가 더디고 울렁거림이 생긴 게 스트레스가 아니고 담석 때문인가? 가끔 옆구리가 결린 것도 담석 때문인가?’


괜히 담석을 핑계 삼아 보는 건지, 아니면 정말 담석 때문에 그런 건지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면 알게 될 것 같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복강경 수술이라 상처가 남지는 않고, 입원 기간은 길게는 3박 4일이라고 했다. 수술은 연말, 연초 바쁜 일들일 지난 후 하기로 했다. 


친한 언니들과 있는 카톡방(나까지 4명이 있다.)에 알렸다. 내 몸에 돌이 있고 나는 곧 쓸개 빠진 인간이 될 거라는 따끈한 소식을 말이다. 나의 소식을 알리고 20일 뒤,  


“나도 담낭 수술 잡아야 해.”


J언니였다. 언니는 얼마 전 검진을 받으면서 신장에 안 좋은 낭종이 생긴 걸 발견했다. 명확한 확인을 위해 CT를 찍었고 결과를 듣고 왔다. 언니의 마음을 쫄리게 했던 신장의 낭종은 정작 괜찮고 문제는 담낭이었다. 담낭벽이 두꺼워져서 수술을 빨리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종종 생겼던 언니의 소화불량도 담낭 때문인 걸로 일단 결론을 짓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담낭 절제 수술 동지가 된다. 이로서 우린 친자매와 진배없음이 증명이 되었다며 한참을 웃었다. 같이 수술하고 한 병실에 같이 있으면 간호사인 E언니가 스페셜간호를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제 4명 중에 2명이 쓸개 빠진 인간이니 나머지 둘이 정신 잘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엄포(?!)도 놓았다.  


우리를 쫄리게 했던 근종과 낭종은 정작 문제가 없고 그 덕분에 우리는 담낭의 문제를 발견했다. 모르고 있었더라면 어느 날이고 배를 움켜잡고 응급실로 실려 가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배가 왜 아픈지도 모른 채 말이다. 새해를 수술로 시작해야 할 거 같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키로 했다. 


언니들과 나는 물혹 하나 정도는 놀랍지도 않을 나이가 되었다. 흰머리와 노안은 벌써 시작되었고 카톡방은 병원에 다녀온 얘기로 활기를 띨 때가 종종 있다. 생애전환기쯤 되니 검진을 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지만 그 마저도 반겨준다. 서로의 물혹을 반겨준 덕분에 우린 건강의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이 든다. 쪼그라 들었던 마음이 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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