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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Oct 20. 2021

시간, 공간, 기억

새로운 시작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되었다. 

이 글은 해프닝에 대한 글이 아니다.

이는 시간, 공간, 그리고 기억에 관한 것이다. 



사진을 찍는 건 시간을 멈추는 행위다. 카메라는 일정 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놓고 뷰파인더 안으로 빛을 들인다. 그러고는 셔터를 닫아 빛을 차단하고 상을 고정시킨다. 카메라는 결국 빛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빛은 가시적인 세계와, 시간은 멈추지 않는 영속성과 연관된다. 사진의 기원은 이미 지나간, 혹은 앞으로 지나갈 특정 시기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간’과 ‘공간’. 전자는 특정 때와 때 사이, 후자는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의 비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모두 ‘사이 간(間)’자가 쓰인다. 꽤나 아름다운 단어다. ‘사이 간(間)’자는 관계를 내포한다. 그래서 무언가의 사이를 의미하는 시간과 공간은 다 관계에 대한 말이다. 이에 더해 사람에게 있어 관계는 늘 기억을 만든다. 인간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다. 태어나서 숨을 쉬는 순간부터 지구의 공기와 우주의 태양을 맞이한다. 무인도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면 자연히 타인과도 관계를 맺는다. 좋든 싫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기억이 자리잡는다.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어떠한 기억도 시간과 공간과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추운 겨울, 삿포로 골목길에 있는 작은 양고기집, 창밖의 푸른 빛 밤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친구와 함께 했던 저녁을 나는 기억한다. 



사진이 없던 시절 인간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흘러가는 시간 속 남기고 싶은 지금의 순간을 캔버스 위에 정착시키는 일을 담당했다. 사진이 발명되고 그림이 하던 일을 사진이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며 사진과 그림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기도 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현재는 사진을 찍어 순간을 기록한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카메라를 갖지 않아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잡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기억한다.


나 또한 사진을 그러한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나는 장면으로 기억한다. 머리 속에서는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영화처럼 흘러간다. 정말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온 것처럼 기억을 저장하는 캐비닛이 있고, 내가 복기를 원하는 순간 그 기억이 저장된 곳을 찾아 서랍을 열면 순간적으로 영화가 재생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그런 기억을 위한 플랫폼이었다. 무형이지만 어느 정도 피지컬(physical)한 특성을 갖춘 창고였다. 그 창고에서 반년이 넘는 기록이 사라졌다. 실제로 피드에 올린 사진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기억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은 내가 가끔 기억을 꺼내고 싶을 때 쓰던 즐겨찾기 아이콘 같은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건축물이나 공간만 있고, 사람이 없는 사진들이었겠지만, 기억의 주체자인 내게는 시간, 공간, 사람에 대한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사진들이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겠다. 희미해질 기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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