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이렇게 다 지나갑니다. 언제 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2021년이 몇일 남지 않았습니다. 연말은 늘 묘했던 것 같습니다. 유난히 기억이 선명해지면서도 흐려지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이 슬퍼지고, 힘들었던 일들도 괜찮아지는 시기입니다. 품에 안고 있던 것들이 떠나가 공허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올해 저는 한동안 멈추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말이 그림이지 실체를 갖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기억과 몽상도 그림에 포함시키니 말입니다. 올해 그린 그림을 다시 곱씹어보고자 합니다.
본래 선은 두 점을 이어 만드는 것입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두 점은 선으로 인해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 관계는 이어진 두 점 외의 것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백지에 두 점을 찍고, 이를 선으로 이었을 때 백지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뉩니다. 이곳과 저곳, 혹은 안과 밖이 규정됩니다. 제가 그린 선은 주로 사람에 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잇기의 대상인 점들은 가상의 인물, 현실의 인물, 제 자신을 모두 포함합니다. 선이 놓이는 방식에 따라 점들 사이의 관계는 느슨해지기도, 긴장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선은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관계의 이완을 조절합니다.
삶은 형상을 가집니다. 자주 쓰는 물건을 책상 위에 어떻게 놓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보면 그 사람이 그려집니다.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라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의 말과도 같은 맥락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었던 선에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선에서 누군가는 배려심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해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무게’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삶은 가볍고도 무거우며, 무겁고도 가벼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겐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시소를 보면 양쪽에는 보통 무게가 다른 두 물체 혹은 사람이 올라갑니다. 양쪽에 올라가는 물체의 무게, 물체와 받침대 사이의 거리를 잘 조절하면 시소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을 이루기도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것도 적은 힘으로 들 수 있는 지레의 원리입니다.
스스로를 표현할 때 균형감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한 분야로도 특출나지 않고 평범함을 좋게 표현한 것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평범함이 균형감으로 읽힐 때 주는 안정감, 혹은 평온함 또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그 균형에 대한 재밌는 반론을 들었습니다. 균형에 대한 태도는 무엇을 하든 바뀌지 않는 제 고유의 성질이기에 조금은 미숙하고, 어리석고, 과감해도 된다고 말입니다. 언제든 균형을 다시 찾을 수 있기에 그러한 경험이 나중에는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다며 말입니다. 어쩌면 무게추를 다시 움직여봐도 될 것 같습니다.
예민함을 자랑거리로만 생각하며 달려왔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들어맞도록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박 같은 것이었습니다. 현실에는 늘 오차가 발생하는데도 이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비가역적인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하여 저 또한 앞만 봤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우주선을 발사하는 과학자들도 오차범위를 염두에 두고 계산합니다. 여유입니다. 앞으로는 일부러 틈을 내고, 옆사람의 눈을 볼 수도 있는 여유를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