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위룽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 인상리장(印象麗江,인상여강)
그렇게 기다리고 고대하던 위룽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과 인상리장(印象麗江,인상여강)를 보기 위해 1일 투어에 오르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워 숙소를 나섰다. 가면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데다 비싸다는 이야기에 숙소 앞 식당에서 만두와 중국식 빵 등을 사서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아 좀 걱정을 하긴 했지만 확인 전화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나타났다. 뭐 이 정도 늦는 것쯤은 이제 익숙해졌다.^^
버스 안은 중국인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매우 활동적인 분위기의 가이드는 무어라 설명을 시작했다. 못 알아듣는 우리들이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자 설명이 끝난 후 우리 쪽으로 와서는 영어로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가이드는 하루 종일 그렇게 우리에게 모든 내용을 다시 영어로 설명해주는 친절을 보여 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버스 창 밖으로 옥룡설산이 보이자 너나없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중국에 와서 나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사람이 만든 궁이나 절, 마을 등은 시간이 지나자 이제 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것들이 처음이야 그 엄청난 규모와 만듦새에 놀라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중국의 자연이다. 하다못해 고속도로를 지나다 주변 들판에 그냥 펼쳐져 있는 산들도 엄청나고 신비롭게 생겨서 눈을 못 떼게 할 지경이니... 일 년 내내 만년설이 쌓여 있다는, 구름을 밑에 깔고 신비롭게 앉아 있는 옥룡설산의 모습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중간 장소인 듯한 곳에 내려서 이 곳의 유니폼 같은 빨간색 방한복과 산소통을 하나씩 지급받고 다시 버스를 타고 매표소인 듯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부터 참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옥룡설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표만 사면 올라갈 수 있는 우리나라의 설악산이나 한라산과는 달리 표 검사뿐이 아니라 신분증 검사도 한다. 또한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권과 여행계약서에 있는 기재 내용까지 다 일일이 확인을 한다. 우리 때문에 시간이 지체돼서 미안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웬 걸, 중국사람들도 신분증 검사가 깐깐하다. 신분증이 있는 사람들은 상관이 없는데 아직 신분증이 나오지 않은 학생들이 문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번호를 입력해서 확인을 하는 것 같은데 워낙 그 번호가 길어서 외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각자 가지고 온 서류(주민등록등본 같은 거라든지, 학생증이라든지...)를 보고 번호를 입력하는 데 한 여학생이 자꾸 오류가 났다. 같이 온 가족들은 이미 다 들어가 있는데 계속 오류가 나서 못 들어가자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려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학생도 들어왔고 이제 케이블카를 타나 싶었는데 또 줄을 서서 표를 다시 검사한다. 표 검사가 끝나고 다시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케이블카에 탈 수 있었다. 와, 여기는 웬만큼 중국어를 한다 해도 개인적으로 와서 여행하기는 힘들 것 같다. 1일 투어를 정말 추천한다.^^
케이블카를 타고서도 계속 사진 찍기 바빴다. 눈에 보이는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0m까지 올라간다. 한라산이 1,947m, 백두산이 2,744m라니까 이미 내 생에 가장 최고의 높이에 다다른 셈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계단으로 만들어진 등산로가 있어 468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옥룡설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5,596m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는 호기롭게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으나 정말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몸의 느낌이 달라졌다. 아, 이런 게 고산증세구나. 처음에는 뭔가 약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하고 몸의 움직임이 붕 떠 있는 듯 해 뭐, 이 정도쯤이야 하고 올라갔다. 하지만 정말 계단 하나하나 올라갈수록 답답함이 느껴지고 머리가 띵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배급받은 산소통의 산소를 열심히 먹어봤지만 그때뿐 몸은 계속 이상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쉬면서 올라갔다.
물이랑 초코바를 먹으며 조금씩 올라갔으나 우리는 결국 4571m에서 포기하고 신랑만 끝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찍어 온 인증샷. 우리는 저 밑에 보이는 나무로 지은 매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이라 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일진대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대단한 풍경이겠구나 싶다. 리장에 간다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
내려왔더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가 2층으로 올라가서 점심을 먹으라 한다. 우리가 설명을 들을 때는 점심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이해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손목에 채워 준 팔찌 같은 게 점심 먹는 식권인 모양이었다. 작지만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이드를 찾아갔더니 사람들을 모아 데려간 곳이 인상리장(印象麗江,인상여강) 공연장이었다. 여기서도 여권과 여행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여기 뭐 다 들어가려면 이렇게 검시 검문이 많은지...
관객들 바로 앞으로 배우들이 떼 지어 나오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인상리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장예모가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공연이다. 여기 나오는 배우들은 실제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연기나 열정이 전문 배우들보다 못하리라 예상해서는 안 된다. 보는 내내 보는 사람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로 열심히 공연한다. 매 번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넘나들었던 차마고도의 그 험난한 장삿길의 여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일지도 모르겠다.
'신서유기 2'에서 강호동과 그 일행들이 눈문을 흘리며 봤던 공연이라 우리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한국서 온 조카에게 아마 너 감동해서 울지도 모를 거라 장담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신서유기 2', 그 프로그램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나쁜 나영석 PD. TV로 본 내용을 다시 한번 재방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안 보고 실제 공연을 먼저 봤다면 정말 눈물을 흘렸을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리장의 그 호기롭고 광대한 장관은 지금까지 본 공연 중 가장 으뜸이었다.
구름이 많이 껴서 보이지 않지만 원래 저 뒤편 하늘에 옥룡설산이 보인단다. 공연장 전체가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둥그렇게 만들어진 무대 전체를 활용하여 여기저기서 배우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말을 타고 달리며 무대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
또 관객석으로 배우들이 진입해서 관객 바로 옆에서 공연을 한다. 관객석 안에 배우들이 들어와 북을 치니 저절로 서라운드 입체 사운드가 완성되는 놀라운 광경. 이 모든 걸 계산해서 연출해 냈을 걸 생각하니 역시 장예모 감독이구나 싶었다.
흔한 마이크 하나 없이 사람의 목소리와 자연으로 이루어지는 공연. TV 프로그램 때문에 다소 감동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 꼭 봐야 하는 공연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간 곳은 1일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란위에구(白水河蓝月谷, 람월곡)의 바이수이허(白水河, 백수하)이다. 람월곡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차가운 물로 만들어진 계곡으로 청수호-람월호- 경담호-옥액호-백수하(백수대)로 이루어져 있다. 미니 전기 버스를 타고 돌 수 있다고 해서 표를 끊었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건물 안에 숨어 있었다.(또 속은 거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버스를 탔던 일행인 중국 아이들이 우리 앞에 와서는 웃으면서 자꾸 쳐다본다. 그러더니 부끄러운 표정으로 "너 한국인이야?"하고 묻는다. 그래서 웃으며 맞다고 해줬더니 얼른 자기네 부모한테 달려가서 한국인 맞다고 자랑한다. 그러더니 그 이후부터 버스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한국말 할 줄 안다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는 사람, '한국에서 왔냐'라고 중국말로 묻는 사람. 처음 버스에 탔을 때부터 왜들 이렇게 우리에게 관심이 많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여기는 한국인들이 흔한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가 한국인이 득실득실거리는 왕징에서 살다 보니 그곳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한국인이 신기한 거다. 덕분에 우리도 중국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다들 우리를 쳐다보는 유명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을 느껴봤다.^^
물 빛이 정말 예쁘다. 둘째는 물에 들어갈 기세. 호수 빛깔이 너무 예뻐서 이 곳으로 웨딩 촬영하러 많이 오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구경하다 10 커플까지 세고는 그만두었다.
인공으로 만든 계단식 폭포인 백수하. 둘러싸인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는다. 람월곡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 버스를 또 타야 하는데 우리는 기다리기 싫어서 그냥 걸어서 둘러봤다. 표값이 살짝 아깝기는 했으나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나을 듯. 사람이 많은 성수기에는 미니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게 더 좋을 듯싶다.
행여나 우리가 길을 잃어 버스를 못 타는 게 아닌가 주변에서 살펴보고 기다려주던 친절한 가이드 덕에 무사히 1일 투어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신랑이 그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야생버섯 훠궈 집.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었던 비싼 버섯들을 실제로 보고 골라서 탕으로 먹는 음식이다.
워낙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거기다가 육고기도 물에 빠진 것은 싫어하는 극단적인 육식파라 '버섯탕이 맛있어봤자 심심할 따름이겠지'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격도 무척 비싸다는 말이 굳이 거기를 가서 꼭 먹어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먹어 본 버섯탕은 정말 최고였다. 국물 베이스인 닭고기 육수에 우리가 고른 다양한 버섯들이 섞여 들어가자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했다. 옆에 세워 둔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먹어도 된다고 종업원이 알려주는데 정말 기다리기 힘들었다. 정말 깔끔하면서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진한 버섯향의 국물과 각기 다른 버섯의 식감이 정말 다채로운 맛을 품어냈다. 무엇보다 베이징에서는 물론, 한국에 돌아가서는 더더욱 먹어보지 못할 버섯 들이기에 더욱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다른 식사들에 비하여 가격이 비록 후덜덜하지만 리장에 왔다면 꼭 한 번 먹어보기를 강추하는 메뉴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일정은 다 내 생애 최고의 것들로만 짜여 있는 것 같다. 최고의 풍경, 최고의 공연, 최고의 음식. 앞으로 살면서 다른 것이 최고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최고의 것들이다.^^
그렇게 내 생애 최고의 날을 만끽하고 숙소를 나온 지 거의 15시간 만에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 대문을 들어가니 우리를 본 주인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왜 저러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주인이 우리 보고 '너희 오늘 아침에 나간 것 아니었냐?'라고 반문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 주인이 당황해하며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간 줄 알고 우리 방 하나를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틀 묵기로 되어 있는 거 아니야? 주인은 우리가 어제 묵고 오늘은 아니고 내일 묵는 걸로 알고 있었단다. 아니, 그럼 우리 짐은? 생각해보니 화장품이며 신발, 휴대폰 충전기 등 우리 짐이 다 방에 풀어져 있었고 심지어 빨아 널어놓은 속옷까지 널려져 있었는데.... 그제야 사무실과 마당 한 구석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우리 캐리어랑 짐들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이런 황당한...... 아니 짐이 이렇게 있는데 연락이라도 한 번 해 보지도 않고 이게 무슨 일이냐? 화가 나서 따졌더니 우리 전화번호가 없단다. 생각해보니 이 숙소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것이 아니라 신랑이 직접 찾아와 예약한 탓에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은 것이었다. 아! 정말 화나고 황망하고... 어쩌면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일관성 있게 파란만장 좌충우돌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