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후타오샤(虎跳峡, 호도협) 트레킹
전 날 숙소 소동을 주인이 다른 숙소를 잡아 준 것으로 마무리하고 다음날 리장 버스 터미널에서 샹그릴라(香格里拉, 향격리랍)행 버스에 올랐다. 샹그릴라 행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호도협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차우터우(桥头)에서 내려 준다. 내리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달랑 우리 5명만 내려주고는 버스는 떠났다. 각자 캐리어와 배낭을 하나씩 메고는 다리를 건너 매표소에서 호도협 입장료를 내고 표를 샀다. 그리고는 짐을 맡아준다는 제인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트레킹 시작 지점인 이곳에 짐을 맡기면(1개당 5원) 나중에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짐을 맡긴다. 우리는 커다란 캐리어 2개와 큰 배낭 2개를 게스트하우스 2층까지 낑낑거리며 올려다 놓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사실 산을 오르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또 거기에 이 곳 윈난에 와서 이미 너무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체력이 방전됐다고 주장하고픈 사람이라서 이곳 호도협 트레킹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다. 나완 다르게 산을 무척 좋아하는 신랑은 날아갈 듯 즐거워 보였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힘들면 말을 타고야 말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맘을 어떻게 읽었는지 마부 한 사람이 매표소부터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여행 전 호도협에 관해 미리 알아보고 계획할 때 봤던 내용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얻은 지도 등 내가 알고 있던 호도협 트레킹과 우리의 트레킹은 많이 달랐다. 우선 지도에 나와있는 예상시간과 블로거들이 적었던 힘든 구간이 막상 실제 부딪치니 많이 달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더 겁나기도 했다.
우리의 트레킹 코스
매표소 - 나시객잔 - 28밴드 정상 - 차마객잔(1박) - 중도객잔 - 티나게스트하우스(1박) - 호도협관람대(차로 이동) - 샹그릴라행
우리의 트레킹 시간(힘든 정도)
매표소 -> 나시객잔 : 3시간 반(힘듦 가장 최고! 경치고 사진이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음.)
나시객잔 -> 28밴드 정상 : 2시간(2등. 말을 타서 다리는 아프지 않으나 온 몸이 경직됨. 떨어져 장애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듦)
28밴드 정상 -> 차마객잔 : 2시간(이제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트레킹 코스임. 경치를 즐길 수 있게 됨.)
차마객잔 -> 중도객잔 : 1시간 30분(경치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함)
중도객잔 -> 티나게스트하우스 : 2시간(걷는 게 자동화됨. 내리막이라 발가락이 좀 아프지만 여전히 경치는 아름다움)
트레킹은 시작부터 예상과 달리 많이 힘들었다. 제인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면 학교 운동장을 통해서 나시객잔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 길을 놓쳐버린 것인지 숲길은 나오지 않고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넓은 도로만 계속되었다. 한낮의 땡볕에 시멘트 길을 걸어 올라가가자니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지도와 다른 여행객들의 블로그에는 이 곳이 이렇게 힘들다는 말이 없었는데...... 내 체력이 저질인 것인지 아니면 그 블로거들이 다들 산다람쥐셨는지....... 여기가 이럴진대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다는 28밴드는 앞으로 어떻게 넘을 것인지 밀려오는 걱정에 몸은 더 처졌다. 아까부터 마부 아저씨는 너희 그렇게 걸어서는 절대로 갈 수 없다며 말을 타라고 자꾸 유혹했다.
결국 마부 아저씨와 흥정을 했다. 가방을 다 말에 실어주고 28밴드 끝까지 올라가는 조건으로 1인당 300원이란다. 생각 같아서는 말을 다 빌려서 타고 가고 싶었는데 이 곳에 오기 전 현금을 찾는다는 것 깜빡해서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얼마 안 되는 탓에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분명 객잔에서는 카드 사용이 안 될 테니 식사대금도 현금으로 사용해야 하고, 혹시 모를 비상금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말 2필만 빌려서 돌아가며 타기로 했다.
말을 타자마자 나시 객잔으로 올라가는 숲길이 나왔고 말은 익숙하게 좁을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말을 타니 다리는 아프지 않았지만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 손이며 어깨며 온몸이 뻐근했다. 그러다 말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번엔 또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고. 아,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무슨 고생이냐 싶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다른 블로거들과는 달리 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시객잔까지 올라가는 이 길이 가장 힘든 길이었다. 28밴드를 걸어서 올랐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말을 타고 오른 28밴드는 거리가 짧아서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나시객잔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모녀가 들어왔다. 어떻게 이 곳까지 올라왔냐고 물었더니 차를 타고 왔단다. 역시나 신랑은 우리를 과대평가한 거다. 여기까지 차를 타고 오는 방법도 있었는데 우리를 3시간 넘게 걷게 하는 정말 제대로 된 트레킹 코스로 오게 하다니.... 물론 말을 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앞으로 남은 28밴드가 힘들다는 말에 결국 150원에 말을 한 필 더 빌렸다. 호도협 트레킹 내내 우리는 가쁜 숨을 내쉬며 우리를 태워 준 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나시객잔을 나와서 조금 올라가니 28밴드의 입구인 가게가 나왔다. 다른 블로그를 보니 주인아줌마가 간식 살 거 아니면 앉아서 쉬지도 말라고 한다 하던데 우리는 물을 사마신 탓인지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곳 말고도 골짜기마다 정상의 경치 좋은 곳에는 주인들이 다 자리를 잡고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곳에서는 사진을 안 찍었다.^^
28밴드는 정말 보고 들은 대로 꼬불꼬불 꺾어지는 경사로가 쉬지 않고 28번 나온다. 돌로 이루어져 있는 가파른 절벽 경사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도 죽을 맛, 말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죽을 맛이었다. 걸어 올라갈 때는 다리가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지 않아서 힘들고 말을 타고 올라가면 말에서 떨어질까 하도 온몸에 힘을 주는 탓에 힘들다. 말들도 힘든 것인지 올라가다 멈추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다시 오르곤 했다. 그때마다 말 위에서 같이 떨었다. 실제로 낙상 사고도 번번이 일어난다니 더 무섭다. 그래도 간사하게 내 몸이 힘든 것보다 차라리 무서운 게 낫다. 한 번 말을 타고 오르면 다시는 말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돌아가면서 말을 타기로 했는데 28밴드가 너무 가팔라서 중간에 말을 세울 수 있는 곳이 없어 타이밍이 안 맞은 작은 아이는 중간 이후 계속 걸어 올라와야 했다. 작은 아이 왈, 열심히 말을 타야겠다는 일념 하에 올라왔더니 정상이란다. 현금만 찾아왔다면 무조건 말 4 필을 빌리는 건데.... 엄마란 사람이 자기부터 살겠다고 열심히 말 타고 올라오고 딸은 걸어 올라오게 하고. 역시 난 모성애가 약간은 부족한 엄마인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완만한 경사의 산길이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트레킹 코스다.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물론 중간에 비도 오고 해서 우비를 꺼내 입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첫날 숙소인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TV에서 봐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 차마객잔.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나시객잔과 마찬가지로 식사비는 싼 편이었다. 이 깊은 산속에, 거기다가 유명한 집이라 한국 같았으면 엄청난 바가지를 씌웠을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도 맛있었다. 닭백숙을 시켜서 아주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온몸이 풀려 정말 정신없이 골아떨어졌다.
보통 1박 2일로 잡는 코스를 우리는 2박 3일로 잡은 까닭에 다음 날부터는 여유로웠다. 무엇보다도 첫날처럼 급격한 경사로를 등반하는 일이 없기에 가능했겠지만. 차마객잔에서 이것저것 아침을 시켰는데 시킨 메뉴 외에 닭죽이 나와 놀랐다.(알고 보니 닭백숙을 먹으면 다음날 죽을 주는 시스템이었음) 생각지도 않았던 닭죽도 맛있게 먹고 중도객잔으로 향했다.
오늘도 여전히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낙담했지만 이 정도 길이야, 난 등산만 아니면 된다.^^ 이렇게 가파른 절벽길을 걸어 돌아가다 보면
이렇게 예쁘고 평화로운 들판도 나오고
구름에 가려 영험해 보이는 산도 볼 수 있고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산길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렇게 예쁜 꽃들도 만날 수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중도객잔. 호도협의 아름다운 경치를 확 트인 시야로 한눈에 담으면서 일을 볼 수 있었던 화장실은 정말 대박이었다. 이 곳에 가면 꼭 한 번 들러보기를 강추하는 곳이다.^^ 이 곳 객잔들은 음식들이 다 맛있었다. 몸을 많이 쓰고 난 다음에 먹은 밥들이라서 그런가? 하여튼 싸고 괜찮은 식사를 계속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TV 프로그램의 힘인지.... 여기 호도협을 지나면서 만나는 사람의 80%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경로가 비슷하니 여기서 만난 사람은 저기서도 만나고, 나중에는 그 사람들 안 왔나 확인까지 하게 되는... 이 곳 쿤밍에 와서 가장 많은 한국인을 만난 것 같다. 우리도 신기한데 외국인의 눈에는 더 신기하게 느껴졌을 터. 울 신랑과 안면을 튼 유럽 아가씨는 제일 먼저 물어본 게 여기 호도협에는 왜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냐는 질문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면 비탈길에 여기저기 풀어져 있는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전혀 길을 비켜 줄 생각 없는 동물들 때문에 불편한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산에서 흘러내리는 조그마한 폭포를 만나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길을 지나기도 한다.
지루하다 싶으면 아이들과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함께 들으며 걸었다. 길이 어딘지 헷갈릴 때마다 저렇게 나타나는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 걸으니 어느덧 호도협의 마지막 숙소인 티나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나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지난 객잔 이야기(https://brunch.co.kr/@seawave15/37)서 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이렇게 2번째 호도협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상호도협 관람대로 예약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왜 이곳이 호도협인지 알 수 있는 이곳. 사냥꾼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뛰어넘은 골짜기라고 해서 호도협이라고 하는데 그 엄청난 물살을 보면 이 곳을 뛰어넘을 용기를 가진 호랑이가 대단하기도 하고, 호랑이를 그렇게 몰아붙인 사냥꾼이 더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 대단한 물살과 물살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굉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곳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물에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밤에 들었다던 '내달아 들이받고
뒤말려 곤두박질치며 울며 으르렁거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며 항상 장성을 쳐 부술 기세'의 물소리가 바로 이런 소리일까? 전차 만대와 기마 만필, 대포 만개 그리고 북 만 개로도 충분히 형용할 수 없다던 그 물소리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다시 올라갈 계단이 까마득해(여기서도 가마꾼들이 가마를 타라고 대기하고 있다.) 조금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이렇게 상호도협 관람을 마지막으로 호도협 트레킹 코스는 마무리되었다. 호도협! 다시 볼 수 없는 경치와 숲이 주는 안정과 평화는 인정하지만 그만큼 고생이 따른다는 것.^^
계단을 올라 주차장에서 미리 예약해 둔 샹그릴라행 버스를 기다렸다. 티나게스트하우스에서 운행하는 버스인 듯한데 하루에 1대(3시 30분) 밖에 없다. 그러니 미리 시간을 확인하고 호도협 일정을 짜는 게 좋을 듯싶다. 티나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한 버스가 이 곳 관람대에서 우리를 태우기로 했다. 가장 먼저 표를 끊어서 번호도 1번에서 5번까지.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걸. 번호는 소용이 없었다. 이미 사람들이 다 찬 버스에서 우리는 이 구석 저 구석 빈자리에 끼어 탈 수밖에 없었다. 나와 가은이는 버스 맨 끝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의 하얀 외국인 남자는 얼마나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지... 그래도 다행히 가은이 옆의 하얀 외국인 언니는 자신의 손이 빨개지면서까지 좌석 틈에 빠져 있는 가은이 안전벨트를 찾아 주는 친절하고도 예쁜 언니였다.^^ 자 이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샹그릴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