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수허구청(束河古城, 속하고성), 쿤밍(昆明, 곤명) 시내
샹그릴라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이제 남은 것은 북경으로 돌아가는 일. 이동 시간이 길어서 중간에 리장에서 1박을 하고 쿤밍에 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아침 일찍 빵차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해서 리장행 버스표를 끊었다. 여기서 리장까지 버스비는 1인당 63원. 버스표를 끊을 때마다 달라지는 버스비는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같은 곳을 가는 버스라도 버스비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하긴 터미널에 있는 버스도 다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무슨 고속' 이런 게 있는 게 아니라 도착지가 같아도 시간에 따라 버스 종류며 상태가 천차만별인 버스가 등장했다. 이건 무슨 버스 복불복 같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상태가 훌륭했던 리장 행 버스. 버스표를 살 때 판매원에게 버스 차량 번호랑 시간을 확인했고 다시 표 검사하는 사람에게 저 버스가 맞냐고 손짓 발짓으로 확인까지 하고 탔다. 그런데 이미 버스 안은 만원. 우리 좌석에도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뭐 한 두 번 당한 일이 아니라(버스마다 좌석 번호를 매기는 순서와 방법이 달라서 자리를 잘못 찾고 흠짓 놀란 적이 많았다.^^) 그다지 놀라지 않고 다시 한번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우리 표랑 비교해봤는데 역시나 우리 좌석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하고 있는데 안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올라오더니 큰 소리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사람의 반 정도가 우르르 내려서는 옆에 있는 다른 버스로 옮겨 탔다. 비슷한 시간 대에 출발하는 리장행 버스 2대가 나란히 있어 착각하고 올라탄 사람들(그렇게 믿고 싶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고 이 버스에 모르는 척 올라타 있던 게 아니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자리를 다시 되찾고 살펴보니 아싸! 저 쪽 버스보다 우리 버스가 훨씬 좋아 보였다.^^ 그렇게 기분 좋게 출발했다. 이제 4시간 정도 이동해서 리장에 도착하면 새로운 곳인 수허고성에서 1박을 하면 된다.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속력을 줄이더니 몇 십분 째 제자리걸음이다. 1차선 시골길, 차가 어디 빠져나갈 곳도 새롭게 합류하는 곳도 없는 곳인데 그냥 차가 갑자기 막혔다. 그런데 이 차들 빵빵거리지도 않는다. 버스 안에 탄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냥 매번 있는 일인 듯 행동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누구 하나 기사한테 뭐라고 묻거나 따지는 사람도 없다. 얼마 안 있어 기사는 아예 버스의 시동을 꺼 버렸다. 창문은 물론 앞 뒤 문도 다 열어버리자 사람들 대부분이 버스에서 내려 옆 들판으로 갔다. 가서 운동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다양하고 평화롭게 각자 자기 일들을 봤다. 아, 이 여유로움은 도대체 무엇이다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주변에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든가, 아님 길가 가게에 딸려 있는 외부 화장실을 이용하든가,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참 자주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게 몇 시간 여를 거의 서있기만 하던 버스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더니 그대로 속도가 붙으면서 출발을 했다. 어, 이렇게 출발을 해도 되나 싶었다. 1층이 기사가 있는 곳이고 승객들은 다 2층에 있는데 사람들이 다 탔는지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출발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괜히 내가 빈 좌석이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게 됐다. 우리가 모르는 확인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버스는 출발을 했고 거기에 반발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보면 타긴 다 탔나 보다.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나라다.^^
4시간 걸릴 거리를 7시간 반이 걸려 리장 북부 버스터미널(계획했던 것은 아님)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수허고성과 거리가 가까워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리장고성보다 크기가 작아 더 분위기 있고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리장고성을 보고 오면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어 실망이라는 사람도 있는 곳이 이곳 수허고성이다. 되돌아오는 여정에 1박을 해야 할 듯싶어 이왕이면 가보지 않은 이 곳 수허고성을 넣었는데 잘한 일인 것 같았다. 수허고성은 크기는 작았지만 오히려 아늑해서 내가 생각하던 고성과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준 객잔 주인 부부가 또 다른 손님인 중국 여대생 2명에게 우리의 안내를 부탁했다. 이미 고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온 여대생들이었지만 흔쾌히 우리를 고성 중심부까지 안내해줬다. 규모가 작아 그런지 훨씬 더 가족적인 분위기? 함께 전통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카페거리도 리장고성처럼 정신없지는 않았다.
고성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들도 고르고 내일 아침 먹을 곳도 찾고. 또 우리가 좋아하는 꼬치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양한 꼬치들을 주문해서 먹었다. 처음엔 잘 못 먹던 조카아이도 우리가 계속 먹여서인지 이제는 나름 꼬치를 즐기는 듯...^^
수허고성에서 짧은 1박을 마치고 다시 여행의 시작이었던 쿤밍으로... 조카가 하루 일찍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우리는 쿤밍서 본의 아니게 2박의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을 필요도 이젠 없으니 숙소는 시내 가까운 곳으로 정했고 쿤밍 시내를 마구 누리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백화점 아이쇼핑, 오락실 탐험, 패스트푸드점 이용하기, 초밥 먹기 등.... 한동안 너무 아름다운 산과 들에만 갇혀 있었던 탓에 오랜만에 보는 시내도 참 정겹고 즐거운 곳이었다.^^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운남의 17박 18일.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곳이 한국이 아닌 북경이라는 점에서 여행이 끝났다는 느낌보다 아직은 계속 여행 중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편안한 한국 우리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의사소통의 어려움 없이)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달까? 하긴 이제 한국에는 우리 집이 없지만 말이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같이 있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 간의 따뜻함과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된 행복한 여행이었다'는 교과서적인 마무리를 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의 여행이 그렇지는 않아서...^^ 긴 여행 동안 많이 싸우기도 하고 많이 화도 내고 삐치고... 물론 중간중간 서로를 보고 웃으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한 뼘 훌쩍 자라 있었고 세상을 보는 눈도 그와 함께 커졌으리라 믿는다. 또 우리 부부는 잊었던 사랑이 샘솟았다기보다는 앞으로 이렇게 긴 여정의 여행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 정도를 깨달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운남의 아름다운 산과 들, 물은 항상 감동적이었고, 언제나 감동으로 같이 했던 우리 가족들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