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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Mar 17. 2017

결혼기념일 여행

리젠트 베이징 , 왕푸징 거리

   신혼 초 우리 부부도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결혼 10주년에는 근사한 세계여행을 해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웬만큼 컸을 테니 캠핑카를 빌려서 유럽을 도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부푼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역시 대부분의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여건이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 10주년은 기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신랑은 아이들을 버리고 둘 만 떠나는 홍콩 여행을 제시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진 않았지만 결혼 1주년 때부터 항상 아이가 있었던 까닭(큰 아이 생일이 결혼 1주년 이틀 뒤다. 그때 얼마나 뱃속의 아이에게 주문을 걸었는지... 제발 결혼기념일에는 나오지 말아 달라고. 그래도 기특하게 며칠을 가진통 만으로 버텨주다가 2일이 지나서 세상에 나온 기특한 우리 큰 딸이다.^^)에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항상 아이들을 챙기느라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더 분주했었는데 달랑 나만 준비해서 가뿐히 돌아다니면 그만인 상황이 얼마나 여유롭던지... 사실 해외든 홍콩이든 장소는 상관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 자유로움, 그런 것에 흠뻑 취해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본 뒤 신랑은 결혼기념일이면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나마 호텔을 잡아 쉬게 해주었다.  하지만 올 해는 북경에 있어 가족끼리 외식이나 하고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신랑의 결혼기념일 호텔 선물은 계속되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찬밥이 되어 집에 남겨졌고. 그런데 이제 아이들도 커서 엄마, 아빠 없는 집을 좋아하기도 한다.^^


   신랑이 선물한 호텔 여행은 북경 리젠트 호텔. 북경의 유명한 왕푸징 거리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다. 지난번 중국 국경절 연휴 때 가족 모임으로 갔던 더블트리 힐튼 베이징도 깨끗하고 깔끔하였으나 객실이 좀 좁아 나와 아이 둘이 지내기에도 좀 버거웠다. 물론 객실 급이 높아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곳이 모든 면에서 훨씬 넓고 쾌적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북경의 가장 핫한 거리 중 하나인 왕푸징과 가까워서 지난번에 왔다가 못 찾았던 꼬치 거리를 꼭 찾아보겠다는 즐거운 계획도 있었다. 


넓고 안락했던 객실. 큰 창이 있어 기대했으나 방향이 좋지 않아 전망은 별로였음.


   대충 객실 구경을 하고 찾아간 곳은 리젠트 클럽 라운지. 해피아우어는 아니었지만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구경하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역시나 직원들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높고 넓은 창으로는 북경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의자와 테이블은 안락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간단하게 내어 준 차와 간식도 아주 훌륭했다. 이 걸 보니 홍콩 페닌슐라 호텔에서 먹었던 애프터눈 티가 생각났다. 유명하다해서 어렵게 찾아가서 먹었는데 신랑과 나, 둘 다 느끼해서 몇 개 못 먹고 나왔다는... 우리 입맛에는 역시 김치가 최고라서 그다음 날은 쇼핑몰 안 푸드 코드에서 김찌치개를 아주 열심히 흡입을 했었더랬다. 


   결혼기념일 당시가 12월이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중국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본성이 순진한 건지, 예의를 차리지 않는 건지 대놓고 관심을 표한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우리가 한국말을 하자 바로 옆자리 아저씨가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그러더니 핸드폰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서 또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우리를 힐끔힐끔거리며. 그때 인터넷에서 아저씨가 보고 있던 우리나라 대통령의 모습은 화사한 한복을 입고 정말 난 아무것도 몰라요의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 얼마나 창피스럽던지... 그런데 요즘은 지하철도 제대로 못 타는 지경에 이르렀다. 길거리에서 최대한 한국말도 안 하고 다닌다. 아, 슬픈 현실이여!


   그런데 여기서도 그 얼굴을 보다니! 탄핵안 가결 때문에 신문이란 신문의 1면을 대문짝만 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아놔 참, 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창피할 수가...  또 다른 신문에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의 환호가 담겨 있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뻤지만 이 분, 다른 나라 신문에 이렇게 본인의 사진이 실려있는지 아실지나 몰라.


    호텔 이곳저곳을 누리기 위해 다음 찾아간 곳은 헬스장과 수영장. 카운터에서 방 번호를 이야기하고 들어가면 헬스장을 지나 수영장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수영장 맞은편 샤워시설인 줄 알고 들어간 곳에는 샤워시설 말고도 조그마한 사우나도 있었다. 그것도 건식, 습식 따로. 사우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사우나 시설을 발견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몇 번을 들락날락하였더랬다. 이 곳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홈페이지 사진으로 대신한다. 그나마 사우나 사진은 찾지 못했다. 수영장도 깨끗하고 물도 따뜻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없어서 수영 못하는 우리 둘이 풍덩거리기 좋았다.^^ 

  

해피아워 시간에 맞춰 다시 찾은 클럽라운지. 어둠이 내려 훨씬 아늑하고 예쁘다.


   밥이 될 만한 주식 종류는 없었지만 다양한 안주거리들과 술이 준비되어 있어 이것저것 가져다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곳에 오면 너무 과음하게 된다는 게 흠. 아직까지 많이 먹어야 본전 뽑는다는 촌스런 생각에 잡혀 있는 아줌마라 무제한이라는 곳에서는 정신을 못 차린다. 덕분에 다음 날 더부룩한 속과 깨질 듯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호텔을 나서 어둠이 내리는 북경 시내길을 걸어 왕푸징 거리에 갔다. 가는 길이 거의 호텔이 즐비하게 서 있는 길이라 야경이 예뻤다. 또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도 화려한 조명과 광고가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어 이 곳이 북경 중심부라는 게 실감 났다.


   지난번 이 곳에 왔다 꼬치거리를 못 찾은 적이 있어 지도를 보고 확인을 했는데 이곳에 두 군데의 꼬치거리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른 곳을 알려줘서 헤매다 우연히 빨간 홍등이 커져 있는 길이 있길래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꼬치거리가 등장했다. 듣던 대로 다양한 꼬치들이 있었다. 신기하고 이색적이기는 했지만 원래 이런 꼬치도 중국인들이 모두 먹는 것은 아니라는 것. 물론 먹는 지역들이 있기 하지만 관광을 위해 이색적인 것을 모아놓은 곳이란다. 거기에 우리는 배가 몹시 불러서 그냥 구경하는 걸로 만족했다. 옆으로 난 골목엔 기념품 가게들도 있었다.


나처럼 길을 잘 못 찾는 사람들을 위한 팁. 왕푸징 거리에서 잘 보이는 APM몰을 끼고 골목으로 쭉 들어오면 KFC가 나오는데 그 반대편에 꼬치거리를 알리는 패방이 있다. 우린 반대쪽으로 찾아 들어가서 찾기 힘들었는데 나와서 보니 이렇게 찾아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다가 APM몰도 한 번 들려주고.  지난번 왔을 때도 느꼈지만 이 곳은 한국 영등포 타임스퀘어랑 비슷한 분위기다. 사실 그곳 말고는 내가 한국서 가본 쇼핑몰이 별로 없다.^^ 여기에 중국의 유명한 음식점 체인인 와이포지아(外婆家, 외갓집)가 있다. 1시간 대기는 기본이라는 맛집이다. 무엇보다 맛도 있고 가격도 싸고 매장도 깔끔해서 중국인들이 부담 없이 찾는 음식점이다. 개장 시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거나 아님 한 사람이 희생해서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쇼핑몰을 둘러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우리 가족도 너무 만족해서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사람일이라는 게 참 맘처럼 안 된다.

쇼핑몰 중앙홀 특정 위치에 서면 전면 전광판에 모습이 나온다.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섰다가 웃고 간다. 이번엔 아이들이 한 컷!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대형 건물 들 사이에서 예쁜 성당을 발견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어 자세히 보니 여기는 사교댄스 모임 장소였다. 자가용에서 예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에스코트를 받고 내려 댄스 무리에 합류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모습, 참 예쁜 모습들이다.


   다음 날 아침, 그래도 아침을 먹겠다고 또 찾아간 클럽 라운지. 공짜니까 열심히 먹었다.^^


   맨날 얄밉고 짜증 난다고 화내면서도 이렇게 데리고 가면 졸래졸래 좋다고 쫓아다니는 나를 보면, 참 속물적인 사람 맞는 것 같다. 그래, 그냥 나는 속물적인 사람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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