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를 읽고
5년 차.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삶터를 옮겼다. 옥상 텃밭에 모종을 심기 위해 흙을 사야만 했던 도시촌놈이 진짜로, ‘진짜’ 땅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고, 가끔은 거두는 일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돈을 매개로 얻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시절을 뒤로하고, 땅과 입의 거리를 좁혀 스스로를 먹이는 풍족하고 호사스러운 시절을 누리고 있다.
3년 차. ‘농업인’이 되었다. 농촌에 오니 눈 돌리면 보이는 건 죄 논뿐. 이런 것도 견물생심이라 할 수 있을까? 농촌에 왔으니 언젠가는 내 땅, 무엇보다 주식인 쌀을 얻을 수 있는 논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굶어 죽을 일을 방지하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노후보장책으로서의 논. ‘언젠가’로 막연하게 미뤄둔 욕망이었는데, 어느새 들키고야 말았는지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다. 400평 논과 통장 속 숫자를 교환했다.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하자 내게 ‘농업경영체’의 경영주이자 ‘농업인’이라는 이름이 툭하고 떨어졌다.
농업인이 된 후, ‘여성농업인 농작업 편의 장비 지원사업’으로 전기예초기도 사고, ‘농업인의 소득 안정과 농업 구조 조정, 그리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인 직불금도 받았다. 참, 지역 농협에도 가입했다.
이쯤이면 나를 농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농부가 되지는 못했다. 땅을 쫓아서, 농사를 짓고 싶어 농촌에 왔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농업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귀농’했다거나 ‘농부’라고 소개할 수는 없었다. 농촌에 산 시간도, 농업경영체의 유무도 나를 농부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농부’라는 이름을 내 이름 옆 자리에 붙이려 할 때면 늘 ‘감히’, 혹은 ‘내가 무슨’이라는 생각이 더 빠르게 따라붙었다. 농부라는 이름은 언제나 너무 크고, 또 무거웠다. 늘 아직은 아니라고, 혹은 이 정도는 아니라고 물러 서거나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런 상태로 이 책, 반다나 시바의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별 수 없이 다시 농부가 되고 싶어졌다. 긴 시간 스스로를 농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이유들이 하나씩 선명해짐과 동시에 흐려지는, 신기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반다나 시바가 생각하는 농부는 이런 사람들이다. ‘식물을 번식시키는 자, 종자를 보존하는 자, 토양을 보전하고 만들어내는 자, 물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자, 식량을 생산하는 자.’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들이야말로 ‘우리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라고.
오늘날 세계의 소농은 세계 자원의 30%만 사용하면서도 세계에 필요한 식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소농, 농사짓는 가정, 그리고 텃밭 일꾼들이다. 27쪽.
생태적인 세계, 살아 숨 쉬는 세계에서 농민은 단순한 식량 생산자가 아니라, 생물 다양성과 안정적인 기후의 보존자이자 증진자이며, 건강 제공자이고, 다양한 공동체 문화들의 관리자이다. 247쪽.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라니,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라니? 이 엄청나고 막중한 책임과 임무 앞에서 고작 자그마한 텃밭 하나 꾸리기도 벅찬 나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오래 간직해 온 농부라는 이름에 대한 존경심까지 더해지면…. 그에 걸맞지 않은 내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농부라니, ‘감히’ 붙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한편,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또 다른 방향의 힘도 작용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경작 규모, 노동 시간, 그도 아니면 농업 소득과 같은 숫자를 기준으로 나의 농사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작고 소박한 농사, 돈은커녕 결실조차 얻기 어려운 농사를 농사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런 농사를 짓는 스스로를 농부라고 불러도 될지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했다. 농사로 생계를 책임지는 전업농이 아니다 보니 수확량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은 안일하게 농사를 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도 있었다.
거대화에 대한 집착의 시대에, 우리는 ‘큰 것이 최고‘라는, 큰 것이 더 많이 생산하고 큰 것이 더 강력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식량과 관련해 이러한 착각은 곧, 이 세계를 먹여 살리려면 넓은 농지와 대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변환된다. … 하지만 사실은 ‘작은 것이 크다.’. 생태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러하다. 127쪽.
나 역시 착각에 빠져있었던 걸까. 반다나 시바는 이러한 착각을 이끌어내는 신화, 즉 산업농이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신화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산업농은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 채 이 정도의 규모의 농사를 지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온갖 화학 물질을 땅에 퍼붓고, 엄청난 화석 연료를 들이부어 기계를 돌리고, 생명의 시작이자 ‘반환의 법칙’의 중심에 있는 씨앗마저 이윤의 수단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지구 자원의 75%를 사용하면서도 식량의 25%밖에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비효율이다. 이들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고작해야 기업의 이윤을 위한 상품만을 생산할 뿐이다. 그런 주제에 작고 소박한 농사를 짓는 소농들로부터 땅과 씨앗은 물론, 자부심마저도 빼앗아가려 한다.
‘더 많이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실 앞에 서야 한다. 사람들을 실제로 먹여 살리는 식량의 70%는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의 손에서 나온다는 사실, 소농들이 가꾸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작은 농지가 거대한 산업형 단일경작보다 생태적 효율성이 크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진실 앞에 설 때, 다시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소농이라는 자부심이 회복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땅으로 나아가기를, 소농의 삶을 선택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다독여준다.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푸드 시스템들의 기초는
나눔과 돌봄, 보존과 안녕이다. … 여성은 세계 생물 다양성의 전문가들이자 영양 전문가들이며, 덜 사용해 더 생산하는 법을 아는 경제학자들이다. 여성은 세계 식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식량이 불안정한 지역과 가정에 필요한 식량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217쪽.
그 다독임에 힘입어 나는 농부가 되기로 했다. 농촌에서 보낸 시간도, 농업인이라는 법적인 지위조차도, ‘무농약’이나 ‘유기농’이라는 인증마저도 그가 땅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농부임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농부와 땅이 맺고 있는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땅을 돌보고, 땅으로부터 돌봄 받고 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때문에 농부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은 농부 자신뿐이다. 작은 텃밭과 400평의 논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전부는 아니나 먹거리를 생산하고, 땅과 땅에 깃든 뭇 생명에 해로운 것을 투입하지 않으며, 불완전하나 씨앗을 자급하기 위해, 쓰레기 없이 농사짓기 위해 애쓴다. 이것은 왜 농부가 아니란 말인가. 결국 나만 설득, 결심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를 농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부르지 못한 이유도 나였다.
더는 물러설 곳 없이 농부라는 이름 앞에 섰으나 기댈 구석은 하나 남아 있다. ‘초보’라는 작고 귀여운(?) 방패. 그리고 결심한다. ‘농부’라는 이름에 너무 높고 큰 기준을 걸어두고,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며 끝끝내 물러서는 것보다, ‘초보’라는 딱지를 영영 떼지 못지 못할지라도 ‘농부’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끝끝내 붙들기로. 규모, 혹은 소득이라는 헛된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농사짓는 삶을 놓지 않기로. 그리고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농부답게, 작물의 시간에 맞춰 더 부지런해지기로!
이제 나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있다. “나는 농부인가?”를 질문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어떤 농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이 부담스럽거나, 대답이 흐릿해질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될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수없이 그었던 밑줄을 삶으로 옮겨놓기 위해 다시 논과 밭으로 나갈 테다. 논밭에서, 흙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이 우리를 농부로 만들어 줄 테니까.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하자. 독에 물든 푸드 시스템에서 생명력 넘치는 푸드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우리 각자가 기여하자. 그 어떤 농민도 자살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어린이도 굶주림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사람도 음식 때문에 아파서는 안 된다. 지구 자연 그리고 지구 자연의 공동 생산자인 인류는 훌륭하고 건강한 식량을, 전체를 먹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집합적 창조 에너지를 지구를 돌보는 식량이라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쏟기로 하자. 세계화된 농업과 그것의 전쟁 도구들을 통해서 지구 자연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지구와 함께 일하며 우리의 토양과 씨앗과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로 하자. 2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