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맛, 프놈펜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잘 들었던 덕분일까, 나는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했다. 결국 병원에서 해준 건 잘 먹고 푹 쉬라는 말뿐이었지만 그래도 매시간 몸이 낫고 있는 게 느껴지니 마음은 훨씬 가벼웠다. 목소리가 정말 돌아오기는 할까 걱정했던 것도 무색할 만큼 그다음 날 오후부터 내 목소리도 점차 원래 소리를 되찾았다. 가래 때문에 목이 간지럽고 계속 잔기침이 나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양성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우리는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든 걱정은 내려놓고 약해졌던 몸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엔 걱정이라도 해야 해결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출국 날짜를 비자 만료일로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심하게 코로나를 앓았기 때문에 PCR 검사에서 음성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는 거였다. A야 나보다 먼저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고 이삼일 정도만 가볍게 앓고 지나갔으니 당연히 음성이 나올 듯했지만 나는 거의 일주일을 꽉 채워 아팠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딜레마 같았다.
1) 처음 출국 날짜를 미뤘던 대로 21일 00시 30분 비행기를 타려면 19일 토요일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그때 양성이 뜰 수 있다.
2) 출국 날짜를 더 뒤로 미룰 수는 있지만 비자를 연장하거나 비자 만료 후 하루당 10불의 벌금을 내야 한다. 게다가 출국일을 얼마나 미뤄야 내가 PCR 검사에서 음성이 뜰 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다 솔깃한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 입국하려면 PCR 음성 확인서가 필요한데, 마침 이걸 면제받을 수 있는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출발일 기준 10일 전 및 40일 이내에 받은 PCR 양성 결과지가 있다면 그걸 음성 확인서 대신 제출하고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는 거다. 이때는 3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한국을 한차례 휩쓸고 있었으며 해외 입국자에 대한 방역관리 지침이 상황에 맞춰 점점 개편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확진일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는 'PCR 검사 등 유전자 증폭 검출에 기반한 검사'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기에 아쉽게도 내가 캄폿 병원에서 받은 양성 결과지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의료기관에서 발급된 정식 서류더라도 신속항원검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세 번째 선택지가 생겼다.
3) 아직까지는 PCR 검사로 양성이 뜰 것이 확실하니 오늘 프놈펜으로 가서 내일 PCR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항공권을 10일 뒤로 변경하고 음성 확인서 대신 열흘 전 양성 판정을 받은 서류를 제출해 한국에 입국한다.
캄보디아에서는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몇 개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프놈펜행을 택했다. 물론 당장 돌아가 검사를 받겠다는 게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저렇게 되면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을 먹을 때까지도 그냥 원래 계획대로 출국 전에 검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거듭했다.
이날도 아침부터 날씨가 뜨거웠다.
캄폿을 떠난다니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가장 정이 든 도시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숙소를 하도 옮겨 다니다 보니 이젠 짐을 싸는 것조차 너무 익숙해졌다. 아 맞다, '더치 밀 포인원 (Dutch Mill 4 in 1)'이라는 음료도 캄보디아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오렌지 맛 요거트를 음료로 만들면 이런 맛일 거다. 여러 가지 다른 과일 맛도 있던데, 우리는 오렌지 맛이 제일 맛있었다. 유제품인지라 혹시라도 상할까 봐 프놈펜까지 들고 갈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냉장고 안에 남아있던 새 팩을 체크아웃 전에 다 마셔야 했다.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우리는 한식당에 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캄폿에 처음 왔을 때부터 가보고 싶다고 눈독을 들였던 곳인데, 이렇게 캄폿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드디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 신났다.
한국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흔히 찾는 시엠립 같은 도시도 아닌 캄폿에 한식당이 있다니. 그래서 막연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캄보디아 사장님이 우릴 반겨주셨다. 그래도 내 나라 음식 냄새가 풍기는 곳에 앉아 있자니 괜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지도 앱에서 리뷰를 찾아보니 여기는 김치도 맛있다던데.
메뉴를 둘러보는데 낙지볶음이나 감자탕 등 해외 한식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음식들도 있었다.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먹고 싶은 걸 골랐다. 김치찌개다.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뜨끈한 한식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특히 칼칼하고 매콤한 국물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역시 한식에 대한 그리움은 컵라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A는 원래 아침을 많이 먹지 못하는 편이라 뭘 시켜도 다 못 먹을 것 같다며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캄보디아식 볶음국수를 주문했다. 한식당까지 와서 굳이 굳이 그 구석탱이에 있는 메뉴를 시키는 게, 진짜 웃기고 안쓰러웠다.
벌써 시간은 오후 한 시. 밥을 먹은 후 커피까지 마시고 프놈펜으로 출발한다면 저녁이 될 때까지 식사는 못 할 텐데. 많이 먹어둬야 한다며 다른 걸 시키라는 내 말에도 A는 괜찮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반응을 보니 아침 첫끼로 한식을 먹고 싶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먹고 싶은 눈치라 군말 없이 와 준 것 같다.
한국을 떠난지도 어느덧 삼주가 넘었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여행이었는데. 그래서였을까, 한식이 그리울 줄 모르고 떠났던 만큼 오랜만에 마주한 김치찌개는 엄청난 감동이었다. 흰쌀밥과 잘 익은 김치까지- 아직 첫 술도 뜨지 않았는데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해외에서 먹는 5달러짜리 김치찌개가 얼마나 푸짐하겠냐 생각했던 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버섯과 각종 야채는 물론 두부에 두툼한 돼지고기까지 들어있는 거다. 아니, 사장님! 메뉴판에 있는 사진보다 훨씬, 훨씬 더 맛있어 보이는데요!
설레는 마음으로 찌개를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보이는 것보다 더 엄청났다. 한국에서 먹는 어중간한 김치찌개보다 훨씬 맛있다. 정말 박수가 나오는 맛이었다. 게다가 1인분 치고는 넉넉한 양이라 먹어도 먹어도 고기와 두부가 계속 나와서 마지막에는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10점 만점에 20점을 주고 싶은 식사였다. 양식과 동남아 음식만 먹다가 이렇게 내 나라 음식을 먹으니 더 만족할 수밖에.
A도 참 좋아할 맛이었는데 그는 아침부터 매운 걸 먹으면 하루 종일 속이 쓰린 사람인지라 괜히 장거리 운전에 방해되는 요인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고기와 두부만 건져 그의 볶음면 위로 올려주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약국에 들렀다. 한국에서 가지고 왔던 선크림도 다 써버렸고 지난주에 캄폿에서 산 선크림은 입구가 망가졌는지 내용물이 나오지 않아 쓸모가 없었다. 프놈펜으로 가려면 적어도 세 시간 반은 도로 위에 있어야 하는데, 날씨가 하도 뜨거우니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였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니베아 선크림을 사서 약국을 나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가 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우유부단하게 구는 게 답답했나 보다. 위에 적어둔 세 개의 선택지 모두 하나 쉬운 게 없기는 했다. 나는 그래서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일지 고민이 됐던 것뿐인데.
우리 둘 다 걱정이 많아 예민해져 있던 탓에 괜히 서로 언짢은 말을 주고받다가 기분만 상했다. 전화하는데 서 있을 기운도 없어서 약국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가 처량했다. 십분 좀 넘게 이어진 통화가 끝났다. 뭐가 됐든 프놈펜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중에 A가 말해줬는데, 그는 그때 엄마랑 전화하면서 울먹이는 나를 보고 오늘 꼭 여자친구를 프놈펜에 데려다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프놈펜으로 출발하기 전, 화장실도 들리고 커피도 마실 겸 근처 카페에 들렀다. 여기도 우리가 처음 캄폿에 왔을 때 가보고 싶어서 저장해 두었던 곳인데. 모던하고 깔끔한 요즘 분위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맛있었다. 대신 한국식 아메리카노를 원한다면 어딜 가나 '시럽 없이'로 주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프놈펜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시아누크빌에서 캄폿으로 돌아온 후 처음 있는 장거리 여행이라 긴장이 됐다. A도 나도 도로 위에서 몇 시간을 버티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아는 데다가 내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아직 어디서 묵을지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로 우리는 프놈펜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게 참 잘 맞는 것 같다.
-그럼 일단 전에 묵었던 곳으로 목적지 찍는다?
예상시간은 세 시간 하고도 십 분. 캄폿 시내를 가로지르는 3번 국도를 타고 프놈펜 외곽까지 한 길로 쭉 달리면 되는 간단한 루트다. 다만 오후 세시가 다 되어 출발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프놈펜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몇 주전 처음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랐던 날이 떠올랐다. 프놈펜에서 캡까지 직접 운전해 오는데 장장 여섯 시간이 걸렸다. 프놈펜을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들던지. 게다가 갈림길에서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는 물론이고 자갈밭을 달려야 했었다. 그때 캄폿을 가로질러 캡으로 향했더라면 자갈 위에서 넘어지는 사고도 없었을 텐데. 다음 일정으로 갈 도시를 미리 보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똥고집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우린 캄보디아의 고속도로와 이 로드트립에 훨씬 더 능숙하고 익숙했다. 오토바이 위에서 등 뒤로 무겁게 흔들거리는 배낭을 고정하는 법도, 언제쯤 멈춰 스트레칭을 해줘야 하는지도 다 겪으면서 배웠다. 아참, 우리가 캡에서 자가격리를 하던 시기에 알게 된 '꿀팁'이 있는데, 원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 때 A가 메야했던 가방을 오토바이 핸들 아래, 그러니까 A의 두 발 사이에 두는 것이다.
캡에서 포장이 완료된 음식을 가지러 가던 A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캄보디아 현지인들을 관찰하다가 알아낸 거였다. 플라스틱 통에 담겨 비닐로 꼼꼼히 포장된 음식을 보며 이걸 다들 어떻게 들고 운전해 갈까 싶었는데, 다리 사이에 두고 운전을 하면 음식이 흐를 일이 없었다. A는 곧장 나에게로 달려와 자기가 발견한 사실을 신나게 설명했었다. 확실히 A의 등과 내 몸 사이에 배낭 하나가 빠지자 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A의 운전실력도 정말 많이 늘었다. 처음 프놈펜에서 운전했을 때만 해도 도로가 조금이라도 혼잡해지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게 느껴졌는데 운전에 익숙해지고 나니 거침이 없었다.
이날 프놈펜으로 향하는 3번 국도에서도 높은 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운전을 한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뒤에서 계속 콜록대는 걸 들었는지 A가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다. 오토바이 위에서도 기침을 멈출 수 없었던 탓에 운전에 방해가 될까 걱정이었다. 이제는 인후통도 없고 열도 내린 지 오래였지만 기관지가 많이 약해졌는지 계속 간질간질한 게 참 거슬렸다. 기름을 넣을 건 아니었지만 오른편으로 보이는 주유소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물을 마셨다. 서두르기 위해서는 중간에 멈춰 쉬는 걸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나는 오는 동안 운전하는 A의 뒤에서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얼른 목적지를 확정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자꾸 끊기자 마음이 급해졌다. A는 지난번에 묵었던 곳에 또 묵어도 상관없다 했지만 이 날따라 마땅히 묵을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최대한 서둘러 숙소를 잡고 그곳으로 목적지를 재설정했다.
프놈펜 국제공항에 다다라 3번 국도뿐 아니라 4번 국도를 비롯해 여러 길들이 합쳐지기 시작하자 도로가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꽉 막히기 시작했다. 도로 자체도 엄청나게 큰데, 엄청난 크기의 덤프트럭이며 버스, 승용차와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도로에 테트리스처럼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여 오토바이가 무게중심이라도 잃으면 바로 다른 차들과 닿을 정도라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때는 저절로 숨을 참았다. 몇 주 전 같았으면 A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거침없이 운전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현지인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앞으로 계속 이동하는데 이 교통체증의 원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도로가 공사 중이라 아무도 운전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길을 통과해야만 프놈펜 도심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그럼 어쩌라는 거지? 일단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 옆으로 난 샛길로 큰길을 빠져나왔다. 나는 열심히 지도를 보며 시내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가다 보니 다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중인 게, 그 큰길에서 막혔던 오토바이들이 모두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라 그 무리에 합류해 작은 동네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우리만 빼고 다른 오토바이들이 다 다른 길로 돌아나가는 거다. 알고 보니 지도에는 멀쩡히 있는 길이 사실은 길이라고 부르기 힘들 만큼 엉망이라 다들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 거였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폐허가 된 길 위에서 낑낑대야 했다. 길이 울퉁불퉁한 데다 돌들이 널려있어 두 사람을 실은 오토바이는 마음처럼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배낭을 멘 채 오토바이에서 내려야 했다. A에게 가벼워진 오토바이로 먼저 이 길을 벗어나라고 한 후 나는 70미터 정도 되는 길을 걸어 다시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다른 길로 돌아 나온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아직 프놈펜 중심가로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확실히 도시는 도시인 게 느껴졌다. 사람도, 건물도, 오토바이와 자동차들까지 뭐가 이렇게 많은지, 도시에는 정말 빈틈이 없다. 그러나 프놈펜 시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카페, 술집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프놈펜 중심가와 달리 외곽은 좀 더 사람 냄새가 풍긴다.
외곽을 빠져나와 시내로 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다행히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로 이런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지도 앱의 예상시간보다 1.5배에서 가량 더 걸리는 게 당연하다고 들었고 우리도 그런 긴 여정에 익숙해졌었지만 이번엔 정말 놀라울 만큼 빠르게 도착해버렸다. 예상시간보다 고작 20분 정도 더 걸려 세 시간 반 만에 도착했는데, 처음 프놈펜에서 캡까지 여섯 시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박수가 나올 정도의 쾌거였다. 하하하. A가 너무 장했다. 고맙기도 하고.
헬멧을 벗으니 둘 다 땀범벅이었다. 사실 이제는 온몸이 흙먼지와 땀으로 뒤덮이는 게 너무 익숙해져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마친 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있으니 기분이 최고였다.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아무래도 기침약을 사러 가야겠다 싶었다.
이 숙소는 야경이 정말 예쁘다길래 나가기 전에 꼭대기층에 있는 루프탑에 올라가 봤다.
-어? 저건 뭐지?
내가 묻자 A가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탑 주위로 반짝거리는 조명들과 예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난번에는 본 기억이 없다. 공원 주위로 보이는 동남아식 건물들도 멋지다. 프놈펜에 저런 빌딩들도 있었구나. 지난번 프놈펜에서 지냈던 삼일 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한번 프놈펜을 떠난 후 몇 주간 대부분을 작은 도시들에 머물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니 느낌이 정말 달랐다. 서울이 익숙했던지라 처음 프놈펜에 왔을 때는 그렇게 큰 도시라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시골에 있다가 여길 오니까 정말 별천지였다. A와 나 둘 다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녁으로는 오랜만에 피자를 먹었다. 약국에 들러 시럽으로 된 기침약도 샀다. 저녁을 먹고서는 아까 피자집으로 들어갈 때 본 맞은편 펍에서 칵테일도 마셨다. 드디어 다시 여행 온 느낌이 난다. 펍에서 나오니 바로 옆 큰길로 아까 본 공원이 보였다. 소화를 시킬 겸 여기를 걷기로 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로터리 안에 세워진 이 탑은 프놈펜 독립 기념탑이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5년 후인 1958년 세워진 탑이라고 한다.
공원이 정말 깨끗하게 잘 조성돼 있고 야경도 너무 예뻐서 여기는 꼭 밤에 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공원 중앙에는 노로돔 시아누크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렇게 그냥 들어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프놈펜 야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지난번 프놈펜에 있었을 때 둘 다 마음에 쏙 드는 옷들을 샀기도 했고 규모는 작아도 구경할 재미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버사이드 공원 (Riverside Park)'이 앞에 있어 관광지 분위기가 확 느껴지는 게 지금 기분이 한껏 들뜬 우리와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처음 프놈펜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리버사이드 공원 쪽은 프랑스 풍 건물들이 많다. 밤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공원 주위로 예쁜 조명이 반짝거린다. 공원 건너편에는 관광객을 겨냥한 카페와 펍들이 많고 유람선도 운영한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사람이 많아 휴대폰이나 지갑 등 소지품을 소매치기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유람선을 여기서 탈 수 있는지도 몰랐는데, 공원에 서 있으니 꼬마들이 유람선 티켓을 사겠냐고 물어보러 오더라. A가 화장실이 급하다길래 야시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찾아갔다. 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화장실인데 1000릴을 내고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 우리가 야시장에 왔을 때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신호등 없이 건너는 게 익숙하지 않아 건너지 못하고 몇 분이고 계속 서 있다가 현지인들이 건널 때를 틈타 같이 건너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뚜벅뚜벅 건넜다. 이곳에 완벽하게 적응한 우리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와, 우리를 봐! 완전 익숙해!
A도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나는 같이하는 여행이 좋다. 그때 그랬잖아-하고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 시간이 더 즐겁고 더 소중했다.
야시장은 우리가 떠났던 때랑 다를 게 없었다. 전에 A가 와인색 하와이안 셔츠를 샀던 가게에 다시 들러 새로 하와이안 셔츠를 장만하기로 했다. 우리 둘 다 그때 산 옷을 이 여행 동안 주구장창 잘 입었다. 특히 A의 셔츠는 이미 3.50달러의 값어치는 톡톡히 했을 거다.
높게 걸려있던 하와이안 셔츠들을 진지하게 뒤적이던 우리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셔츠를 찾아냈다. 밝고 선명한 노란색 배경에 분홍색 바나나와 빨간색 애플망고, 파인애플과 나뭇잎들이 그려진 셔츠였다. 무늬만 봐도 통통 튀고 귀여운 게 A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분홍색 바나나가 마음에 든다며 A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원하던 대로 새 셔츠를 얻은 A는 신이 잔뜩 났다. A가 잠시 부모님과 전화를 하는 동안 나는 선글라스를 구경했다. 살까 말까 망설여지는 선글라스가 있기는 했는데 6달러라길래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부르는 가격이 5달러, 4달러를 지나 3달러까지 내려갔다. 그럼 살게요!
돈을 지불하고 뒤를 돌았는데 A가 없었다. 전화를 하다 말고 어딜 갔지? 주위를 요리조리 둘러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통화 중이니 전화를 걸 수도 없고 야시장이 규모는 작긴 해도 이렇게 엇갈리면 찾기가 힘든데. 내가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갑자기 확 짜증이 났다. 짜증이 화로 바뀌기 직전, 저 멀리 서서 통화 중인 A와 눈이 마주쳤다. 내 표정을 본 A가 지금 내가 짜증이 났다는 걸 눈치챘는지 급히 부모님과의 전화를 끊고는 쭈뼛쭈뼛 걸어왔다. 자기는 내가 선글라스를 더 오래 보고 있을 줄 알았다고, 통화를 하다 보니 나를 놓쳤다면서 야시장이 작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말은 하고 갔어야지!
나는 나한테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고는 미안하다며 풀이 죽은 그의 볼을 꽈악 꼬집었다. 얄미워, 진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야경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루프탑에 또 올라갔다. 바도 있고 물이 졸졸 흐르는 수영장도 있어 분위기가 진짜 좋았다. 다만 밤에는 루프탑 바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영장 이용은 안되고 낮에만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미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가는지 손님도 아무도 없는데 A가 꼭 여기서 맥주를 먹고 싶다는 거다. 직원이 친절하게 삼십 분 후에는 문을 닫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A가 괜찮다며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처음에는 물도 함께 주문하려던 A가 가격에 흠칫 놀랐다.
-물이 한 병에 얼마인데요?
A의 물음에 직원이 답했다.
-2달러입니다.
우리 둘 다 입이 떡 벌어졌다. 병맥주도 밖의 다른 식당에서 마시면 1-2달러 정도 가격인데 여기서는 4달러다. 엄청 비싼 가격으로 운영되는 고급 바인가 본데 우리만 몰랐나 보다.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다 보니 삼십 분이 훌쩍 흘렀다. 급하게 남은 맥주를 비운 우리는 물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다녀오기로 했다.
근처에 '슈퍼두퍼 (Super Duper)'라는 24시 마트가 있길래 거기를 한번 방문해 봤다. 별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인데, 규모가 정말 큰 서구식 슈퍼마켓이었다. 우와. 심지어 마트 앞에는 경비 아저씨도 계신다. 와, 신기해. 확실히 시골에 머물다가 프놈펜에 오니까, 너무 좋다. 서울에 있을 때는 늘 도시가 그렇게 질려서 자연으로 떠나고만 싶었는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점이 여러 개 있는 편의점인 것 같은데 과일도 정가가 붙은 채로 팔리고 있고 수입 과자나 음료를 비롯해 값이 좀 나가는 수입 식품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원래 해외여행에서 제일 재밌는 것 중 하나가 마트 구경이다 보니 이리저리 마트 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웠다.
들뜬 나를 보고 있던 A가 갑자기 아까 나를 짜증나게 해서 미안하다며, 자기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데 내가 자기 때문에 속상했다고 울먹거리는 거다.
뭐지... 너... 취했니? 그래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정말 많은 걱정을 안고 급하게 프놈펜행을 택했는데, 돌아온 프놈펜이 너무 새로워서 놀랍다.
아직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잘 해결할 수 있겠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