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넷플릭스에서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를 20년만에 다시 보았다. 20대 대학생 때 보았던 <불량공주 모모코>. 영화 속 후카다 쿄쿄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시골 마을에 살면서 로코코 스타일을 동경하는 모모코. 마트에서 가성비 좋은 옷을 사입는 걸 최고로 생각하는 동네에서 사람들이 뭐라 하던 자기가 좋아하는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게 인생의 낙이다.
새하얀 보닛과 양산을 쓰고, 샤방샤방한 드레스에 하얀 통굽 부츠를 신고 시골길을 걸으며 다른 세계로 떠나는 환상에 빠지는 모모코. 타고난 취향과 환경이 전혀 맞지 않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꿋꿋히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겉모습은 아기 같지만 단단한 중심을 지녔다.
모모코는 가끔 도쿄의 다이칸야마에 옷을 사러간다. 기차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멋이 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도 걸어서 간다. 다이칸야마에는 모모코가 사랑하는 로리타 스타일의 옷을 파는 가게가 있다. 이름하여 <Baby, the stars shine bright>. 과하고 우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있는 가게라고.
모모코는 로코코 시대의 삶을 동경한다. 우스꽝스러운 정도로 과한 치장에 집착하고,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하며, 하릴없이 파티나 자수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
현실은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실패한 건달인 아버지와 늙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인생이지만, 원하는 걸 정확히 추구하며 산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패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치장하고, 밥 대신 달콤한 디저트로 도시락을 싸고, 여가시간에는 자수를 하거나 로코코 스타일에 대한 잡지나 책을 읽는다.
모모코에게는 친구가 없다. 사실 마음을 나누는 상대가 한 명도 없다. 어렸을 때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떠났고, 건달이던 아빠와 함께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옮겨왔다. 모모코는 일찍이 애어른이 되었고,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지키며 또래와도 분리되어 지냈다.
모모코의 삶은 고독하지만 외로워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라고 믿지만 거기서 괴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모모코는 자율적이지만 연대감이 전혀 없는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 오토바이 폭주족인 이치고를 만난다. 이치고는 모모코와 정반대로 겉은 쎈 언니지만 속은 감성적이다. 무서운 화장에 치렁치렁한 특공복을 입고 침을 찍 뱉거나 욕을 하지만, 은근히 허당이고 체면과 도리를 중요시한다.
둘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데, 물론 그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지만 오늘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모모코의 변화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헌신하던 모모코가 이치고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 일어난다. 낙심한 이치고를 위해 자수를 하고, 꿈에 그리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는 대신 이치고를 구하러 간다.
모모코의 삶은 이전에도 괜찮았지만, 이제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나로 인해 행복해할 때 느끼는 행복도 알게 됐다. 바로 연대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울림을 받았던 대사 - 좋아하는 패션 샵에서 일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모모코가 한 말이다.
”베이비”(옷가게 이름)의 드레스를 만드는 것보다, 너무 좋아하는 “베이비”의 팬으로 남고 싶다. 그게 훨씬 더 호화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좋아하는 걸 즐기기만 할 수 있는 삶은 확실히 호화스러운 삶이다. 일반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면 그걸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확실히 로코코스럽지 않잖아. 마지막까지 모모코답다.
그리고 기억났다. 좋아하는 것은 일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20대의 나.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직업을 정해 지금까지 왔다. 이런 영화가 그 뿌리가 되었거나 적어도 물을 주었겠구나.
지난 1년 반 동안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봤다. 그 결과 20년 전에 한 생각이 틀렸었다고 결론 내렸고,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새로운 길을 찾았으면서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항상 뒤로 물러나고 포기했을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서 새로운 길을 찾았으면서도 왜 계속 여기로 돌아왔을까?
오늘 이 영화를 보고 20대 때의 나를 상기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된 듯하다.
잘못 생각한 건 없었다. 그게 나였고, 줄곧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