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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루 Sep 13. 2020

14살 할머니 고양이를 입양했다.

잘 키우기보다 잘 보내주기 위한 선택

 우리 집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하루이고 지금 나이는 14살이 조금 넘었다. 나이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하루의 원래 주인이자 친한 지인이 지금 34살인데, 본인이 20살 때부터 하루가 있었다고 했다.


하루와의 첫 만남  

  하루와의 첫 만남은 재작년 어느 초가을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본인의 집에 고양이가 있다고 해 구경하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 발을 들여선 순간, 고양이에 대해 전혀 무지하던 나조차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친구의 집은 40평대 크기의 아파트였다. 그러나 고양이의 활동 반경은 우리가 흔히 중문이라고 불리는 현관 쪽에 아주 작은 베란다가 전부였다.

당시 하루는 몸무게가 5kg 후반에 달하는 뚱뚱한 고양이었다. 그런데 하루에게 갖춰진 것은 A4용지 상자보다 조금 큰 상자 하나, 아기 고양이 때부터 쭉 썼을 것 같은 몸이 겨우 들어갈 화장실 그리고 바로 앞에 밥그릇과 물그릇이었다. 나머지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었다. 베란다는 하루의 배설물 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은 얼마나 자주 치워줘?" "한 3일에 한번?".

 나중에 하루를 임시 보호하기 전 고양이에 대해 공부를 하며 하루가 그동안 좋지 않은 환경 속에 지내왔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조금 설명하자면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기 위한 기본 환경은 다음과 같다. 못해도 하루에 한 번은 고양이 화장실을 치워주기. 권장되는 화장실 크기는 고양이 몸집의 1.5배로 화장실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정도. 화장실과 밥그릇은 멀리 떨어뜨려놓기.

 

  친구는 하루에 대해서 수동적이었다. 본인의 책임하에 있는 생명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있는지 나서서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친구도 변명 거리는 있었다. 본인의 형제가 원래 두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두 마리 모두 키우기 힘들어 그중 한 마리였던 하루를 본가에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키우기 원하지는 않았던 고양이라는 것이다. '잘 돌보지 못하겠다면 처음부터 거절했어야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기 때의 하루


하루를 임시 보호하게 되었다.

 나는 쭉 하루가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다이소 천 원짜리 장난감도 없었고, 저렴하게 구색만 낸 캣타워도 없었다. 그렇다고 많이 쓰다듬어준 것도 아니었다. 몇 번 줘봤는데 좋아하지 않더라는 이유로 간식도 먹어 본 적이 잘 없었다. 뭘 좋아하는지 이것저것 시도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안쓰러웠다. 물론 하루는 본인이 안쓰러운 상황인지 몰랐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장난감이나 캣타워나 뭐가 좋은지나 알았겠는가. 그러나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벌써 13살. 몇 개월만 있으면 벌써 14살이고 남은 수명은 길어봤자...


 마침 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내게 하루를 맡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를 원래 기간보다 긴 한 달 정도 돌봐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친구는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를 임시 보호하게 되었다. 


 나는 월급이 뻔한 중견기업 사원 수준에서 임시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원목으로 된 어느 가구업체의 40만 원이 넘는 캣타워는 사 주지 못해도 종이로 만들어진 후기가 좋은 3층짜리 캣타워를 구매했다. 뚱뚱한 이 아이의 몸에 맞게 화장실도 특대형으로 바꿔주고 하루에 3번씩 비워주었다. 화장실 청소를 해 줄 때면 본인의 깨끗한 화장실을 보고 하루가 좋아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간식도 이것저것 사 보았다. 나이가 많으니까 이가 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습식 위주로 주었는데 정말 잘 먹었다. 역시 간식 싫어하는 동물은 없었다. 장난감도 이것저것 사 보았는데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습관이 되지 않았는지, 나이가 들어서 세상만사 흥미가 없는 것인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임시보호를 하던 중 병원에 간 적도 있는데, 그 날은 하루가 뭘 잘못 먹었는지 설사를 하고 구토를 한 날이었다. 그때 태어나서 동물병원을 처음 가 보았다. 하루 아기처럼 대해 주시는 선생님 앞에서 하루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을 하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TV 방송에서 가끔 소아과에 아픈 애를 데리고 간 부모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잘해줄 건데 왜 울지? 기껏해야 감기인데'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쪼그한 팔에 주사기를 꼽고 피를 뽑는데 아파서 낑낑 대는 하루를 보니 세상만사 다 내 잘못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더운데 에어컨을 안 틀어서 그런가, 간식이 상했던 것은 아닐까.'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눈 휘둥그레 이리저리 둘러보는 하루를 보는데 팔에 한 분홍 붕대와 어울려서 그게 또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물론 이제는 보호자도 고양이도 의젓하게 병원에 간다!)

난생처음 캣타워를 가지게 된 하루!
오른쪽 팔에 붕대 감고 두리번대는 하루



그러다가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 달이었던 임시보호기간이 더 길어져 거의 6개월이 지나고, 그 사이 해가 바뀌어 하루는 14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들은 충격적인 일화로 이 아이를 완전히 내가 입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하루가 거실 바닥에 실례를 했다고 했다. 화장실을 아주 잘 가리는 대표적인 동물인 고양이가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실례를 한다는 것은 '화장실이 더러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런데 내 친구는 하루가 바닥에 실례를 한 것이 하루가 물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하루에게 며칠을 물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자주 걸리는 질병들은 대부분 신장과 관련되어 있고 이는 고양이가 물을 많이 먹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그래서 반려묘를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고양이 급수량에 매우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고 고양이의 생명과 연관이 있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지금도 다른 데서 이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나서 눈물이 찔금 날 정도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임시보호라는 명목 하에 품에 데리고 있던 하루를 본격 입양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친구는 예상대로 별말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고 그렇게 쉽게 하루는 나에게 입양되었다.


  이젠 나의 고양이가 된 하루를 데리고 먼저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다른 곳은 크게 이상은 없지만 구내염이 심각하다고 했다. 아마 오랫동안 앓았을 것이라고 했다. 필요한 치료를 모두 진행했다. 스케일링 등의 치료 이후 항생제를 먹이는 것이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양제나 약을 먹은 버릇이 없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전쟁이었다. 갑자기 주인이 몸을 잡고 입을 마구 벌리더니 알 수 없는 것을 목구멍까지 밀어 넣는 짓을 하루에 2번씩 당하는 애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그래도 그 이후로 괜히 밥도 훨씬 잘 먹는 것 같고 응아도 훨씬 더 커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병원 가는 하루


변한 우리의 삶

 하루와 함께하며 하루도 나도 많이 변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큰 안정감을 얻었다. 혼자 살 때는 슬픈 날, 화나는 날도 언제나 침대에서 혼자 잠들어야 했지만 이제는 내가 누우면 머리맡으로 따라 들어오는 고양이가 있다. 내 팔에 하루가 기대 누우면 그 내음과 숨과 온도를 느끼며 내 마음도 잔잔해진다. 또, 집에 오면 날 필요로 하는 존재가 생겼다는 점이 나에게 기분 좋은 책임감을 준다. 혼자 살 때는 오랜 외출에 피곤해도, 집에 들어가면 느낄 쓸쓸함을 잠시 외면하고자 근처 카페에서 괜히 시간을 때우다가 들어간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가 있으니 얼른 집에 들어간다.


 정말 많이 변한 것은 하루다. 전보다 자신감과 사교성이 많이 늘었다. 사랑받는 티가 난다고 해야 할 까? 가령 내 친구들이 놀러 올 때 확연히 보인다. 예전에는 누가 놀러 오면 구석에서 숨어서 훔쳐보기 바빴다. 그리고 집에 갈 때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스스럼없이 나와서 다른 사람의 냄새도 실컷 맡고, 가져온 짐도 맘껏 궁금해하고, 몸도 비빈다. 심지어 어제는 내 친구 손을 아주 살짝 핥아 주기까지 했었다. 자신감이 붙어서 냐옹 냐옹 말도 많이 한다. 정확히 뭘 원하는지는 못 알아듣지만 아마도 밥 달라고, 만져달라고 요구도 잘한다.


   물론 이 아이가 주는 커다란 선물 같은 일상 뒤에 나 혼자 느끼는 그림자가 있다. 아무래도 하루의 남은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 나이 많은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사람들은 모두 느끼는 일상 속 두려움일 것이다. 외출하고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내가 없는 사이 하늘나라로 떠났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시에 머릿속을 지나간다. 집에 들어가며 일부러 "하루야~" 하고 크게 부르는데도 하루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거나, 이불속에 들어가 일말의 움직임도 없는 것을 보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슬쩍 손으로 흔들었을 때 쳐다보며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고 나서야 '아, 그냥 무시한 것이구나' 하고 안심하는 것이다.  

  동물병원을 갈 때마다 14살처럼 보이지 않고 4살처럼 보인다는 칭찬을 받을 때면 조용히 감사합니다 하고 말지만 속으로는 훨씬 더 많이 기쁘다. 그만큼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지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루가 생의 마지막 순간 숨이 잠길 때 내가 옆에 있고, 그때도 여전히 뚱뚱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별의별 못 해 준 것에 어차피 미안하겠지만 그 옆에서 조금 덜 미안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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