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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Sep 20. 2022

다림질의 시작과 끝.

결국 남은 건 꼼수와 아웃소싱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남편이 남자 친구였을 때, 어느 날 흰 셔츠에 슬림한 정장을 입고 나온 모습에 새삼 반했던 날이 기억난다. 살림의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 흰 셔츠는 그저 나에게 '멋짐'의 상징이었지 매일 아침 혹은 저녁에 나를 괴롭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었다.


셔츠의 목때나 손목에 있는 때를 없애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주름을 펴는 것. 부끄럽지만 결혼 전에 다림질을 해본 적이 없다. 할머니나 엄마가 해주시거나 세탁소를 다녀온 비닐 씌운 옷을 꺼내 입었었다. 아니지. 교복 말고는 딱히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없었던 것 같다. 셔츠의 주름을 펼 생각보다는 주름도 멋이라며 그대로 입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정장에 입을 셔츠는 다리지 않으면 안 됐다. 세탁소에 맡기고 받아도 되었지만 전업주부가 그런 식으로 생활비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서 직접 배워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배우면 뭐든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물론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남편도 힘들면 세탁소에 맡기는 게 편하다며-본인도 세탁소에 맡겼었다고 괜한데 힘 빼지 말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을 들었어야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다리미로 다림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옷깃을 다리고, 양팔을 다리고, 몸판을 다리고 펼쳤는데 소매에 주름이 보인다. 다시 소매 주름을 다림질로 펴고 이제  됐겠지 하는데 근처에 주름이 보인다. 여기 주름을 펴면 저기 주름이 지고... 이걸 반복하다 보니 셔츠   다리는데 30분이 훌쩍 지났다. 물론 30분이 지나도 깔끔하게 주름이 펴지기는커녕 여기저기 우글거리는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상 끝이 나지 않는 다림질에  내기 싫어서 남편에게 말했다. '입다 보면 자연스럽게 펴질 거야.  한번 움직이면 생길 주름인데 .....^^;;'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너무나도 쉽게 셔츠의 주름을 쫙쫙 펴는 것을 보고 스팀다리미를 구입했다. 부족한 실력은 장비로 채운다는 신념으로 이제 다림질의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물건을 받았다. '이게 맞나'. 스팀다리미가 아니라 스팀다리미를 사용하는 쇼호스트 님을 모셔와야 하나 싶을 정도로 내 손에 있는 스팀다리미는 생각보다 셔츠의 주름을 기대만큼 잘 펴주지 못했다. 그리고 괜히 다리기 힘든 라인 잡힌 복잡한 패턴의 슬림셔츠 탓을 했다. '그니까 오빠도 그냥 일반 셔츠를 입으라고' (슬림셔츠 좋아했던 사람 나야 나 ㅋㅋ)


셔츠 다리는 방법을 검색해봤다. 찾아보니 다림질에도 우선순위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주름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어쩌면 입자마자 주름이 갈 수밖에 없는 소매 부분보다는 옷을 입었을 때 눈에 먼저 들어오는 옷깃, 등판을 신경 써서 다려야 한다고 한다. 셔츠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주름이 갈 수밖에 없으니 주름을 최대한 없애야 하는 옷깃, 등판은 제일 나중에 다려줘야 한다는 것! 안다고 만족스럽게 다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았다.


그래도 역시나 내게 셔츠 다림질은 '완벽한 끝'이 없는 영역이었다. 주름이 지지 않는다는 소위 말해 링클프리 셔츠를 오빠에게 보여줬지만 디자인이 별로라며 퇴짜를 맞았다. 어쩔 수 없지. 마지막, 최후의 방법인 세탁소가 남았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림질에 투자하는 시간에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고,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세탁소에 보내기로 (나 혼자) 결정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마음먹은 뒤, 남편은 캐주얼한 의상을 입고 출근을 해도 되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더 이상 매일 혹은 주 1~2회 다림질에 목매지 않아도 된다는 뜻.


그럼에도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있다. 하지만 흰 셔츠만큼 주름이 눈에 띄지 않는 옷이라 스팀다리미로도 충분히 보기 싫은 주름이 '어느 정도 '펴지긴 한다. 빨래하는 것이 조금 손에 익고 나서 다림질보다 더 신경 쓰는 것은 빨래가 끝난 뒤 '곧바로'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 옷걸이에 건 다음 젖은 상태에서 손으로 옷을 쫙쫙 펴주는 것이다. 이것만 잘해도 옷에 보기 싫은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빨래를 갤 때도 손 다림질로 쫙쫙 펴주면 주름이 어느 정도 펴진다.


'결국엔 다림질을 잘하게 되었다'라고 끝나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다림질로부터 해방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흰 셔츠 다림질로부터.


사복출근 만세!

스팀다리미 만세!

쉬폰소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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