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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Apr 14. 2023

결국엔 나를 살린 집정리

부끄러워서 숨겨왔던 집정리를 시작하게 된 (진짜) 이유, 그리고 그 이후

대략 3년 전 이야기.


 '이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으로 당장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집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자면 살기 싫어서 집정리를 시작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호르몬의 장난 때문인지 의지가 약해서인지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었다. 분명 행복한 순간도, 웃는 날도 있었지만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면 불행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고 해야 할까. 분명 천사같이 예쁜 아이들인데 나에게 왜 시험을 주는지. 아이의 울음소리엔 이유가 있다지만 그 이유를 생각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남편 회사에서는 왜 없던 회식이 자꾸 생겨나는 것인지! 밤늦게 전화를 하면 '나도 빨리 가고 싶은데, 중간에 나갈 수가 없네.'라 말하는 남편이 왜 이렇게 얄미웠는지 모른다. 어려운 자리라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 큰 어른이 새벽 두 시에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고 와이프가 기다리니까 집에 빨리-빠른 시간도 아니지만- 가봐야 한다고 말도 못 하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상사가 정말. 너무. 싫었다.


 둘째가 유난히 자야 할 시간에 계속 울면서 잠드는 것을 거부했던 날. 겨우 재운 뒤 새벽 1시에 '가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남편과 전화통화를 마치고 불 꺼진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던 그날. '뛰어내리면 좀 편해질까. 다리가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와이프가 크게 다쳤다고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겠지. 설마. 오겠지.' 순간 이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그런데 동시에 눈앞에 장난감더미, 식탁에 정리하지 못한 그릇들,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들, 현관 앞에 쌓여있던 물건들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아니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시댁 식구든 친정 식구든 누가 와서 이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때를 상상하니 순간 부끄러워졌다. '애를 둘이나 키우는 집이 이 꼴이라니, 전업주부라는데 살림을 이 정도밖에 못했나. 쯧쯧'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 내가 이런 순간에도 수치심을 느끼다니, 아직은 덜 미쳤구나.'


 이상한 다짐을 했다. 죽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집을 치운 뒤 그다음에 죽든 뭐든 하자고. 이 와중에도 체면을 생각하는 내가 좀 웃기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장난감들을 제자리에 두고, 쓰레기들을 쓰레기봉투에 넣고, 설거지를 했다. 아직 주방서랍 깊숙한 곳에 뭐가 들어있는지 나도 모르니 그걸 정리할 때까지 좀 미루자. 베란다 구석에 큰 짐들이 쌓여있는데 먼지가 수북이 앉아있으니 그 먼지를 다 닦을 때까지 미루자. 화장대 서랍 속,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일기장이랑 편지들이 있으니 그걸 처리할 때까지 미루자.


 주방 서랍을 열었다. 이제는 없어진 정육점의 쿠폰 29장. 한 장만 모았다면 돼지고기 앞다리 1kg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써먹을 때가 없으니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동안 잘 먹었던 아프리카페(africafe, 탄자니아 인스턴트커피). 새까만 가루커피가 딱딱하게 굳어있고 통 가장자리가 녹슬었다. 언제 열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이 커피를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아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맛있었는데...) 이밖에도 잡동사니들 대부분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들, 다시는 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모두 쓰레기통에 넣고(분리수거할 수 있는 것은 분리배출) 남은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서랍 문을 닫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이걸 왜 이제야 열어서 하나씩 꺼내봤을까.


 분명 살기 싫어서 시작한 정리였는데 주방 서랍 한 칸을 정리하고 굳은 먼지를 닦아내고 안 쓰는 그릇들을 꺼내다 보니 상쾌함이 느껴졌다. 깔끔해진 주방에서 밥을 해 먹는데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 졌다. 정리된 곳에서, 깔끔한 공간에서 살고 싶어졌다. 뒤죽박죽 옷장도, 아이들 방도, 신발 말고도 뭐가 많이 들어있는 신발장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살기 싫어서 시작했던 집정리가, 살기 위해서 하는 집정리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주방정리도 했고, 베란다 구석에 있는 묵은 짐도 비웠고, 화장대는 아예 없애버렸다. 화장대를 비우고 생긴 자리에 책상을 두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매일 집정리를 하고 구석에 있는 먼지를 닦고, 청소를 한다. 잘 살고 싶다.


 당시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상담도 받았다. 의사와의 상담 때문인지, 주변이 정리되어서인지 이제는 남편이 밤늦게 들어온다는 전화를 받아도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가 울면 기다려주는 여유도 생겼다.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아서 남기기 시작한 기록은 이제 제법 쌓였다. 정리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정리하는, 가끔 주객이 전도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결과만 같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이젠 더 이상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봐도 아무렇지 않다. 어떡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궁리한다. 모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고, 가끔은 '힘들다'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잘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랄까. 마음이 변화하기까지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줬겠지만, 분명 그 시작은 눈에 보이는 공간을 정리하는 것부터였다. 내 손으로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만들면서 변화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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