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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Sep 25. 2023

집이 넓어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

'나'는 그대로인데 뭘 바라!

13평, 실평수는 10평 가까이 되는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과장 좀 보태서 지금 집 거실과 베란다를 합친 크기 정도?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일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남들이 한다는 것, 사야 한다는 것을 구색 맞춰서 채워 넣었었다. 상부장과 하부장에 얼마큼 수납할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그릇도 냄비도 세트로(다들 그렇게 한다니까) 거실장이랑 화장대가 진짜로 필요한지 생각도 안 하고 '이건 기본이죠 꼭 있어야죠'하는 말에 구입했었다. 좁은 집에 들어가긴 들어갔지만 너무 딱 맞게 들어가서 생활할 공간이 부족했는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없어도 됐었고,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었는데!)


육아용품도 이름에 '국민'이 들어가면 다 필요한가 보다 하고 구입했다. 육아선배들이 이유 없이 추천하진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써보니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이걸 진짜 다른 육아맘들도 쓴다고?' 생각하며 실망한 것들도 있었다. 미리 사놓고 포장을 뜯지 않은 것도 서랍에 한자리 차지했었고.


이러니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물건을 줄일 생각보다는 집이 좁다는 핑계로 넓은 집에 이사 가서 수납공간이 많아지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 생각했었다. 막상 30평대 집으로 이사 오고 나니까? 수납공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물건들을 사들인 '내'가 그대로라는 것을 간과했다!


처음 몇 달은 어느 정도 여유로웠다.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에 찾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으니까. 그래. 이 생각이 문제였다. 공간이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


남들도 다 한다니까

구색을 맞춰야 하니까

원래 그렇게 한다니까

사고 싶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공간을 다시 채워 넣었다. 아니, 어디에 둘지 생각도 안 하고 일단 샀다. 바닥에, 수납장 위에 질서 없이 쌓아두고 살았다. 10평대 집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30평대 집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집이 넓어졌는데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좌절감이 더 커졌다고 해야 할까.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어려우니까) 뭐 하나 쓰려면 어디에 있는지 술래잡기하듯 뒤져서 찾아야 하고 쌓여있는 것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고, 뭘 하려면 치우기부터 해야 하는 것이 답답했을 즈음 거실에 아무것도 없는 단정하게 정리된 사진을 봤다.


'저렇게 살고 싶다'


답답한 이 상황에서 해방시켜 줄 거라 믿고 시작한 비움. 날을 잡아 집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없어도 되는 것, 불필요한 것,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버리며 '아깝다, 안 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포장도 뜯지 않았는데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육아용품들을 보면서 '안 사도 됐을 텐데 괜히 샀다. 왜 샀었지?'

먼지 쌓인 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물건을 버리며 '진작에 버릴걸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네.'

세트로 구입했지만 정작 잘 사용하지 않았던 그릇을 비우며 '굳이 세트로 안 사도 되는 거구나'

추억이 담겨있지만 불편해서 못 신는 신발을 버리며 '물건이 없어도 추억할 순 있으니까'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평소에 잘 꺼내보지 않았던 곳에 있던 물건들 하나하나 살펴보며 과소비했던 나, 생각 없이 물건을 구입했던 나, 과거에 매여있던 나를 만났고 앞으로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둘씩 비우며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생각,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물건에 대한 관점을 쌓아나갔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아도 된다.

구색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원래 그런 건 없다.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내 기준'이 중요하다.


비움을 시작한 지 3년. 넓은 공간이 아니라 물건을 비우고 채우는 패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우고 나서 남은 물건을 정리하며 남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비우고 채울 때 신중해지자는 다짐이다. 


-덧붙이는 말-

10년 전의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지금 내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으려나?

분명 그때의 나에게 '너 그거 사지 마!'라 이야기했으면

'그런가.. 근데 있으면 좋다는데? 사보고 아니면 말지' 이랬을게 뻔하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3년 동안 직접 물건을 비우고 사고파는 과정에서 부딪히며 온몸으로 경험한 것이니까. 조언을 듣거나 책에서 본 걸 진작에 실천했다면 돈 지키고 정리된 삶을 일찍 살 수 있었겠지만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았으니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비싼 수업료 낸 거지 뭐.


친정엄마가 늘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셨다.

'넌 *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지!!'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시행착오 없이 된장을 한 번에 찾으시기를.


같은 곳 맞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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