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서 방을 정리하던 학생이 아이방을 정리하는 엄마가 되고 알게 된 것
학생이었을 때, 방정리는 큰 마음먹고 하는 연중행사였다. 어지러운 서랍을 볼 때마다, 뭘 찾으려면 온 방을 다 뒤져야 할 때마다 '정리해야지'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엄두가 안 났다. 엄마가 도깨비 나오겠다며 혀를 끌끌 찰 때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학교 다녀온 사이에 엄마나 할머니가 방 정리를 해주시면 방 문을 열 때부터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 생각은 안 하고 맨날 이렇게 방에 들어가면 깨끗하게 정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고맙다는 말만 잘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엄마한테 '책상 위에 올려놨던 프린터물 어디에 뒀어? 나 그거 내일까지 제출해야 한단 말이야! 나 없을 때 내 물건 만지지 말아 주세요!'하고 짜증이나 냈으니 나 같아도 아무리 지저분해서 정신사나울지라도 딸 방정리를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쌓이고 쌓인 물건들 때문에 도저히 새로운 물건을 넣지 못하게 될 때,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두지 못할 때, 학교에서 받은 프린터물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궁여지책으로 한 곳에 쌓아둔 것들이 어느 순간 눈에 거슬릴 때 방정리를 시작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은 잘 몰랐었지만 일단 책상 위, 서랍, 책장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꺼내놨다. 그리곤 그때부터 바닥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보며 버릴지 말지 이상형 월드컵이 시작된다. 친구와 봤던 영화표부터 새 옷에 붙어있는 택을 떼서 모아둔 것, 영수증, 나중에 보려고 오려놨던 잡지, 귀여워서 샀던 열쇠고리, 편지지들, 친구한테 받았던 쪽지, 포장도 뜯지 않은 (있는지도 몰랐던) 스티커, 지난번에 찾다가 못 찾았던 유인물까지.
이 많은 게 어떻게 저 작은 서랍과 책장에 들어있었는지 의문일 정도로 많은 물건더미에서 남길 것들을 하나씩 고르다 보면 이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시킬 함정을 마주하게 된다. 일기장과 편지. 아니, 솔직히 어떤 물건이든 내 손에 오게까지의 사연이 있으니 잠재적 정리 방해꾼인 것이다. 갑자기 물건과 관련된 추억이 싹트기 시작하면 주로 부끄러움에 치를 떨면서 그때 그 순간에 내가 가 있다.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에라 모르겠다 침대로 들어가면 그날 정리는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끝인 거다. 일기장이나 편지를 읽으며 애틋한 기분이 들면 밤을 새우는 거고.
정리를 겨우 끝마치고 나면 개운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힘들다. 시계를 보면 새벽 5시거나 하루 만에 끝내지 못해 며칠 동안 종이더미, 물건더미 속에서 지내야 했다. 이런 경험은 '정리는 힘들다', '정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때 그때 하기보다는 몰아서 한 번에 하는 습관이 점점 굳혀졌다. 몰아서 한 번에 하면 힘들고, 힘드니까 선뜻 시작을 못하고, 그러다 보면 또 어질러지고, 몰아서 힘들게 정리하고. 악순환의 반복!
이 악순환의 반복은 대학생 때까지, 아니 결혼 전까지 이어졌고 이런 내가 아이 엄마가 되어서 어질러진 아이 방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행인 건 어지러운 아이 방을 보기 전에 어지러운 부엌과 거실을 정리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 방을 정리해 보니,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입장에 되어보니 그때의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이 보인다. 오랜 시간 정리를 해도 막상 보면 한 것 같지 않고, 정리된 상태가 오래 유지되지 않은 채 금방 어질러지는 이유를 알았다고 해야 할까.
1. 엄마! 이거 어디에 놔둬야 해요? 엄마, 이거 어디에 있어요?
->물건도 제자리가 필요하다.
매일 최소 5개씩은 접는 팽이나 종이상자, 거실 식탁에 있는 아이의 물건을 정리하라고 하면 곧바로 어디에 둬야 하는지 물어본다. 아니면 대충 침대나 책상 한 구석에 가져다 놓기만 하거나. 아이 나름대로 잘 놔뒀다고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물건을 두는 자리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
'어디에 두지'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고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 '대충 여기 둬야지'라 생각하게 되고, 눈에 들어오는 곳에 아무렇게나 둔다. 한참 뒤에 '귀여워서 샀던 스티커 어디에 놔뒀었는데, 어디에 뒀더라?' 생각이 안 날 확률이 높음!
책은 책장에, 그릇은 싱크대에 두는 것처럼 물건의 제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일단 고정적으로 '넌 여기 있어!' 하는 자리를 만들면 정리해야 할 순간에 '어디에 둬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항상 그자리에 있을테니 필요한 순간에 찾아 쓰기 편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작아서 잊어버리기 쉬운 차키는 늘 현관 옆 선반에 올려둔다. 나갈 때 가지고 나가고 집에 들어오면 주머니나 가방에서 차키를 빼서 그 자리에 둔다. 외출하고 돌아온 뒤 가방은 안방 행거에 걸어둔다. 지갑, 무선이어폰, 장바구니 등 매일 들고 다녀야 하는 소지품은 바로 위에 있는 선반에 모두 올려두면 가방을 바꿔서 들어야 할 때에도 그 선반에 있는 것들을 넣어서 가지고 나가면 되니까 편하다.
아이 장난감은 서랍을 만들어서 아이에게 직접 자리를 정하라고 알려줬다. 티니핑은 여기, 포켓몬은 여기. 이런 식으로 아이만의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자리를 만들고, 가끔 새 장난감이 생기면 어디에 둘지 먼저 고민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다. 가끔 '엄마, 그때 산 장난감 어디에있어요?'라 물어봤을때 '네 장난감은 니가 어디에 두기로 정했어? 네가 주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곳이 어디야?'라 대답하면 80%는 스스로 찾아낸다. 20%는 아직 연습이 필요한걸로.
2. 오늘 이거 만들어왔어. 절! 대! 버리지 마세요!
-> 비움이 없다면.. 감당할 수밖에. 그런데 비우면 여유로워져요.
유치원을 졸업하면 만들기도 같이 졸업할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에서도 이어져서 일주일에 몇 번은 학교에서 뭘 가지고 온다. 집에서도 종이접기를 하고 오려 붙여서 나름의 작품을 만든다. 장난감은 시즌별로 어찌나 다양한 종류가 새로 나오는지. 인형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다 귀엽고 예쁜지! 둘째는'와-예쁘다'하며 사고 싶어 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어린이날이나 생일, 특별한 기념일에 손에 넣는다.
한정된 공간에 비움 없이 계속 채워지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시각적으로 여백이 많으면 굳이 정리되어있지 않아도 깔끔해보이거나 혹여나 어수선해 보이더라도 '금방 정리할 수 있겠지'라며 만만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물건 자체가 많다면?! 칼각으로 정리되어 있거나 정리함이 통일되어 있어야 '정리 되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정리함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색감이라도 한 톤으로 맞춰서 정리해야 정돈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매번 칼각으로 정리하거나 정리용품을 통일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물건의 갯수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정리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줄이는 것! (공간도 늘리고)
공간에 맞는 물건만 가지겠다 다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워야지!'다짐하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 필요할 것같고, 비울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없어도 되는 물건이었다는 것을 경험하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다시 보였다. '꼭 있어야 할까.' 하다못해 쓰레기만 비워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정리정돈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것이다.
3. 아 맞다! (정리 안하고 취침 혹은 등교)
-> 쌓여서 힘들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해두면 (비교적)쉬워진다.
첫째는 갈아 입은 옷은 빨래바구니에 잘 가져다 놓지만 읽던 책,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옮길 때가 많다. 아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쌓아두면 나중에 큰 일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때 그때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고 알려주고 있다. 특히 밥 먹기 전에, 자기 전에, 학교가기 전에.
한 번 정리했을 때의 단정함이 계속 유지된다면 좋겠지만, 이불을 흐트러뜨리며 일어나는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어지르는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단정함을 위해 정리하는 것은 평생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진다. 다만 이왕 하는 것 힘들지 않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인데 그중에 하나가 '정리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사용하던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만 해도 비교적 정리정돈이 쉬워진다. 문제는 잊어버리거나 의도적으로 뒤로 미룬다는 것.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정리하게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도 아이도.
그런데 이렇게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1분, 2분의 정리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건의 제자리가 만들어져 있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제자리가 없다면 빈 박스 하나를 만들어서 한 곳에 모아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 빈 박스에 있는 물건들도 언젠가는 제자리에 가져도 놓아야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간을 내서 불필요한 것들을 비운 뒤, 그 공간에 물건들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고 생활방식에 따라서 물건을 어디에 둬야 편한지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 마련이지만 분명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매일 주방정리를 하고 거실정리를 하면서 다시금 깨닫는다. 그저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도 금방 단정해지니까 말이다. (물론 청소도 해야하지만)
한번에 몰아서 하는게 힘든거나,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 힘든거나 똑같이 힘들긴 하지만 습관을 만들어두면 일단 정리만큼은 덜 힘들어진다. 일단 익숙해지면 더이상 힘들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니 시간을 들여서 정리를 하고, 물건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있다. 평생 해야하는 것이라면 이왕하는 것 쉽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리습관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꾸준히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친정엄마도 끊임없이 두 번 일 하지 말아라~ 쓰고 제자리에 가져다놔라~ 알려줬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이가 잘 따라와주지 않아도 난 할 말이 없다. 내가 대신 정리해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