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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Jul 07. 2022

지렁이는 시원했을까?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은 누가 지었는지... 이왕이면 칠월도 좀 넣어주지 그랬나 원망스럽다. 덥고 습한 이 뜨끈뜨끈한 7월에 콧물을 줄줄 흘리는 꼬맹이 덕에 괜히 아무나 원망해본다.


콧물을 흩뿌리고 재채기를 시작하더니 여느 때처럼 열이 오른다. 그나마 이제 많이 큰 건지 어릴 때처럼 뜨끈뜨끈 고열은 아니다. 이 정도는 뭐… 귀엽게 봐줄 수 있다.




"산책 나가자!"


투명한 콧물이 반짝  아래로 슬쩍 비춘 채로 밖엘  나가봐야겠단다. 이럴  집에서 키우는 반려강아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도 싶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이면 안된다 못을 박을랬지만 모두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슬쩍 둘러본 베란다  거리가 제법 한산하다.


안 그래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일부러 볕을 쏘이는 편이다.

요 투명한 콧물도 햇볕에 바짝 말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콧물이 나니 휴지를 챙기고

목이 마를 테니 물병을 챙기고

밖은 더우니 손선풍기도 들어야 한단다.

야무진 딸내미 덕분에 짐이 많아진다.





숨이 턱 막히는 습도에도 밖에 나오니 신나나보다. 동네 한 바퀴를 부르며 자기도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겠다는 꼬맹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동네 한 바퀴를 돌기엔 너무 덥단다 꼬맹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작은 연못에는 올챙이와 개구리들이 산다. 그곳을 꼬맹이는 '개구리 공원'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가자며 앞장선 꼬맹이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공원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보니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된다. 얼마 전 빨간 앵두가 잔뜩 열러 두 손 가득 따고 놀았던 곳에 이제는 하얗고 노란 계란꽃과 여름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간질간질 강아지풀을 좋아하지만 항상 풀독으로 고생하는 탓에 꼬깃꼬깃 가져간 휴지를 뜯어 둘둘 말아 쥐어 주었다. 잡고 싶어도 쭈그앉아 보기만 하던 강아지풀을 손에  아이는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 분명하다.





한참 앞서 걷던 꼬맹이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럼 그렇지.. 이 더운 날 개구리 공원까지 가기는 힘들지 암만...'


가까이  들여다본 꼬맹이는 선풍기를 틀어 탈탈탈탈 땅바닥을 비추고 있다.



지렁아~덥지~~ 이제 시원하지이~~


아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장면이다. 오전에 내린 소나기에 길 밖으로 잠시 외출 나온 왕지렁이가 땅바닥에서 더위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밟힌 흔적은 없었지만 더위에 꿈틀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도 했다.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지나가시던 아주머니는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들여다보셨다가 소리를 지르며 냅다 뛰셨다. 꿈틀꿈틀 마디마디를 늘렸다 줄였다 뒤트는 왕지렁이를 보며 나도 당장 악을 쓰며 손을 털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꼬맹이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어 같이 쭈그리고 앉았다. 단, 멀찍이서.


이젠 시원하겠지?

라며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얼굴엔 뿌듯한 웃음이 묻어 있다. 아, 코 아래엔 투명한 콧물도 여전히 묻어 있다. 그 얼굴에 지렁이가 선풍기 바람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잠시 묻어두었다.


 두었다간  손으로 지렁이를 집어 흙 아래 묻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젠 시원할 테니 어서 개구리 공원에 가자고 서둘렀다. 개구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며...

미안, 나는 때 묻은 서른아홉의 어른이란다.








가끔  어린이의 예쁜 마음에 행동에 마음이 착해질 적이 있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해진다. 지렁이의 더위마저 공감할  아는 아이의 맑은 심성이 잠시 전염되는 것도 같다.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길거리의 지렁이를 보고 악을 쓰며 도망가는 어른이 될지도 모르기에 더더욱 지금의  이쁨을 담아두고 싶다.






더위에 다 숨어버린 개구리들 덕분에 성과 없는 산책이었지만,

집에 오는 동안 힘들다며 징징 댕댕 누가 이 더운 날 산책을 하자고 한거냐며 서로 눈을 흘겼지만,



그럼에도 그 덕에 잠시 시원했을 커다란 왕지렁이와

엄마 등에 노곤히 업힌 채로 맞았던 시원한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리던 하늘하늘한 계란꽃과 여름 코스모스들은 오래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꼬맹이.



그 지렁이도 흙냄새를 맡고 힘껏 기어가 촉촉한 흙에 당도했기를...






왕지렁이와 내꼬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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