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환 Oct 21. 2020

교육에 대한 단상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교사로 근무한지 25년이 넘었다. 이젠 나도 뭔가 교육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와 경험이 쌓였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지도 않는다. 교육의 성과는 결국 가장 마지막에서야 이야기되어지곤 한다. 이런 문제들이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너저분한 말은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몇 가지만 말해보고 싶다.


    첫번째 덕목은 일관성이다. 학교 교육이든 가정 교육이든 모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우리는 홍길동이 아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해야 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교육이 아니다.


    내가 귀찮아서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거나 그 말을 듣는 사람과 척지기 싫어서 말을 안하면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 것이다. 특히 학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결과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어서 나쁜 것에 대한 질책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본인의 행동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의 기분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도 큰 문제이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넘어갔다가 내가 기분이 나쁘면 오만가지 꼬투리를 잡아 아이를 혼내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다른 곳에 가서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그리고 그곳에서 그 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봐야하는 사람은 무슨 죄인가?


    두번째 덕목은 공평함이다. 누구나 내가 남과 비교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분위기와 느낌으로 쉽게 안다. 학생에 따라 다르게 훈육하는 것 만큼 나쁜 교육은 없다. 특히 기본적인 규범에 대해 차별은 정말 극악이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사는 학생을 차별하는 교사이다. 이런 교사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 그러나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 간혹 차별화된 교육을 불공평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 중에 하나가 개인차이다. 학생은 다양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있고 못하는 학생도 있다. 기회는 언제나 공평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은 학생의 개인차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학을 못하는 학생에게 공평을 근거로 어려운 문제만 풀게한다면 교육의 기본 개념 조차 없는 것이다.


    세번째 덕목은 선입견이다. 학생은 나이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작년에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는 참고가 될뿐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현재가 중요하다. 때때로 정보를 준다고 작년에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본인의 주관적 평가를 근거로 떠드는 교사들이 있다. 교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모든 면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교육이다. 또, 공부를 못한다고 모든 면에 대해 부족하지도 않다. 그래서 난 학생을 만날 때 그 학생의 성적을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교사는 학생을 소개할 때 이런 토를 단다. 이 친구가 작년에 전교 1등을 한 학생이라고....  그래서 어쩌란 것인가?


    내가 현재 그 학생을 파악하고 있는 부분은 현재의 상황일뿐이다. 또 내 주관적인 판단이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난 내 평가가 확실한지 언제나 의심을 한다. 그리고 되도록 모든 상황에서 선입견 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난 되도록 학생의 행동이나 말을 듣고 그 학생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나만의 기준으로...  그리고 그 뿐이다.


    마지막 덕목은....  학생은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이다. 나의 교육으로 그 학생이 완성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때때로 학생의 세밀한 부분까지 교사가 대신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게 과연 학생에게 도움이 될까? 난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소 닭 쳐다보듯 보고 지나가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아직 어려서 그럴까? 그럼 나이를 더 먹으면 안그럴까? 나랑 내기하실래요?  ^^ 심지어 이런 부분 조차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행동이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배워본적이 없으니 안하는 것이다.


    우리반 급훈은 예나 지금이나 '너나잘해'다. 어떤 사람은 이걸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너도 잘하고 나도 잘하자는 뜻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말 그대로 너나 잘하란 뜻이다. 난 내가 할 일을 잘 할테니 니들은 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건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 드물다. 이게 좋은 방향에서는 관심이지만 나쁜 방향에서는 간섭이고 참견이 된다. 그리고 이게 집약되면 왕따가 된다. 가장 나쁜 사회 환경인 것이다. 그래서 난 교실에서 불필요한 간섭이나 참견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응징의 쓴맛을 보게된다.


    교육이 어디 몇가지 항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겠나....  하지만 최소한 교사든 부모든 이 정도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점점 변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걱정도 된다. 아마도 이런 변화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분위기와 많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야 세상이 변하는 것이니까...


    아무튼 그래도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환경 교육에 대한 단상(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