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이 바뀐다.
이달 말에 태국을 간다.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데 갑자기 출판사에서 전화가 와서 예전에 만들던 책을 다시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다. 원고는 예전에 줬으니 사진을 달란다. 태국 가기 전에 급하게 작업을 하느라 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다. 이번에 나가면 내년 1월에 들어오기 때문에 부랴부랴 사진 작업을 했다. 이제 다시 새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태국에 가서도 글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하던 것은 끝을 내고가야 편하다.
다시 흑기러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동정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에 했으니 이번에는 이 녀석들의 먹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흑기러기는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다. 나도 매년 보지 못한다. 보통 새를 보는 사람들이 흑기러기를 보려면 동해안으로 간다. 동해안에 가면 넓은 모래사장도 있지만 바위가 있는 해변도 있다. 바닷가 바위에는 다양한 해조류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중에서 흑기러기는 구멍갈파래라는 파래를 즐겨 먹는다. 구멍갈파래는 우리나라 바닥가라면 어디든지 있는 해조류다. 보통은 조직이 억셔서 먹지 못하는 해조류로 알려져 있지만 전라도에서는 구멍갈파래로 감자탕 비슷한걸 만들어 먹기도 한다.
동해안에서 바닷가 바위로 유명한 곳 중 대표적인 곳이 아야진이다. 아야진은 속초에서 고선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작은 항구지만 새를 보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항구다. 항구 남쪽에 아주 잘 발달한 바위 지대가 있고 그 바위 지대의 수중에는 다양한 물고기와 해조류가 살고 있어 다양한 새들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탐조지이기 때문이다.
1931년 이전의 흑기러기는 주로 잘피를 먹고 파래는 먹지 않았다. 1931년 북미 동부 해안에서 잘피 마름병이 확산되면서 잘피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잘피를 주식으로 먹던 흑기러기는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상당히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먹이 부족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한 때 절종 단계에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흑기러기 중에서 구멍갈파래를 먹는 개체가 등장한다. 잘피 대신 구멍갈파래를 먹는 개체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게 된다. 이 같은 사건은 아일랜드에서도 일어나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다른 기러기들처럼 농경지의 낙곡이나 식물의 뿌리를 먹지 않는 흑기러기들은 차츰 대담한 식성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해안가 농경지에도 찾아오는 개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흑기러기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기러기로부터 학습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보고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까지 흑기러기 전체 개체수가 40~50만으로 10배 이상 증가하면서 강하구나 해안의 먹이 수용력이 한계에 도달하여 흑기러기 안에서 먹이의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피는 구멍갈파래에 비해 더 깊은 수심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또 해조류인 구멍갈파래는 환경에 의해 쉽게 죽는다. 때때로 해안에서 구멍갈파래가 너무 많이 발생하여 오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다. 흑기러기가 서해안 보다 동해안에서 주로 관찰되는 이유도 구멍갈파래가 서해안 보다 동해안에 더 많기 때문이다. 물이 탁한 서해안은 식물의 쉽게 진흙에 덮힐 수 있고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식물은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