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를 만나다.
내가 처음 새를 보기 시작한 때는 2002년 1월이었다. 방학 때만 되면 생물부 동아리 학생들과 장기 여행을 다니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당시에도 학생 3명과 함께 내 차로 동해안을 돌고 있었다. 속초를 거쳐 강릉으로 이동하면서 주로 항구에 들려 먹거리 탐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물가가 워낙 쌌기 때문에 매일 살찌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생물부니까 생물을 봐야 하는데 계절이 겨울이라 마땅히 볼만한 생물이 없었다.
주문진을 거쳐 강릉에 들어가면서 난 아이들에게 그래도 강릉에 왔으니 경포호도 보고 경포대도 보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경포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경포대를 거쳐 경포호를 도는데 어떤 사람이 경포호 다리에서 망원경으로 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마도 새를 보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마침 볼만한 것이 없는 상황이라 아이들에게 저기 가서 저 사람이 뭘 보나 알아보자며 핸들을 돌렸다.
주차하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대학 3년 선배였다. 그 선배는 대학 때부터 새를 전공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원주 어느 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포에서 새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서로 인사를 하고 새가 잘 보이냐고 물었다. 선배는 한번 보라며 망원경을 보여줬다. 생긴 것은 다르지만 당시 학교에도 천체 망원경이 있었고 성능이 시원치 않아 망원경으로 새를 봐봐야 얼마나 잘 보이겠느냐는 생각으로 망원경 접안렌즈에 눈을 가져갔다.
망원경을 보고 바로 고개를 들어 새를 찾았다. 상당한 거리에 있는 새였지만 매우 훌륭하게 잘 보였다. 아니 이게 이렇게 잘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학생들에게 보라고 하고 선배에게 질문했다. 망원경 성능이 대단하다. 이렇게 선명하게 잘 보일 줄은 몰랐다. 원래 이렇게 잘 보이는 거냐. 이게 어디 제품이냐 등등 숨 돌릴 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선배는 웃으면서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했다. 다 이렇게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망원경이 상당히 좋은 제품이다. 가격이 비싸다 등등. 좀 더 새를 보면서 드디어 겨울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숙소에서 고민했다. 저 망원경을 내가 살 능력은 안 된다는 것. 망원경이 없으면 새를 볼 수 없다는 것. 어떻게든 망원경을 사야 한다는 것. 가능하다면 학교 과학과 예산으로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등 많은 고민을 하며 잠이 들었다.
개학한 후 학교에 와서 과학과 동료 선생님들을 설득했다. 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과학과 예산으로 망원경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망원경이 있으면 학생들과 매우 독특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특별히 살 게 없다면 망원경을 사자며 여러 날을 투자하여 설득한 결과 허락을 받았다. 이제 다음은 교장 선생님이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학생 활동에 관해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오직 그것에 희망을 걸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나름 최대한 조리 있게 설명을 했다. 결국 교장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행정실에 갔다. 과학과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 망원경을 사달라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사야 할 망원경이 국산이 아니라 외제였기 때문이다. 또 단일 품목으로 그렇게 고가의 제품을 학교에서 구입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필요한 서류와 견적서를 다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구매에 들어갔다. 한달을 기다려 만난 필드스코프는 내게는 둘도 없는 보물단지였다. 필드스코프는 배율이 높기 때문에 손으로 들고 볼 수 없는 장비다. 그래서 삼각대도 마련하였다.
이제 새를 보러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새는 어디 있는 거지?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