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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an 01.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_1화

 2021년 1월, 아물다 매장 개점을 1달여 앞둔 시점. 시험 삼아 만든 스콘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곧 있으면 퇴근하는 새미를 마중 나갔을 때였다. 도어 포켓 안 휴대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새미이겠거니 하고 화면을 켰는데 아니었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경비실에서 이 시간에 왜?’ ‘택배가 경비실로 갔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짐작가는 곳이 없었다. 새미가 기다릴까 봐 무시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할 수 없이 자동차를 갓길에 세운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xxx호 맞으시죠? 지금 어디세요? 어서 빨리 집으로 와요. 지금 현관문 아래로 물이 콸콸 새어 나오고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큰일 났다고요. xxx호 현관문 아래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고요.”

 “네? 이해가 가게 설명을. 지금 밖이라 돌아가려면 10분은 걸리는데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엄청 급하니 얼른 집으로 오세요. 얼른”

 “네...”     


 마지못해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저층도 아닌 우리 집에서 어떻게 물이 새는 거지?’ 그를 차지하더라도 현관문 아래로 물이 샐 정도라면 집이 침수되었다는 말인데, 그게 현실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머릿속 상황이 뒤죽박죽인 채 새미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새미는 이미 퇴근하고 밖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크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조수석 문을 열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앞집 아주머니가 전화 주셨는데, 우리 집 문틈 사이로 물이 콸콸 새고 있대!!”

 “나도 들었어. 아니 그게 왜 새는 거야?”

 “공용 배관이 터졌다나 봐.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일단 집으로 가자”


  10분 후,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계단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 내려오는 물,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흘려보내는 경비원과 이웃 주민들, 한겨울 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새하얀 입김. 평소 조용하고 고요한 아파트는 공용 배관 파손이라는 사고로 인해 뉴스에나 나올 법한 재난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경비원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봤다.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통화한 지 20분이 지났는데 여전히 물이 새는 상황이다. 이 정도 양이라면 우리 집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두 고양이(나지와 바미)가 먼저 떠올랐다. 평소에도 물이라면 칠색 팔색을 하는 아이들인데, 지금쯤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서둘러 주차를 마친 후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었으나 안까지 물이 유입됐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 순간에도 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공용 배관이 터진 후 곧바로 수도 시설을 차단했지만, 이미 갈라진 콘크리트 벽 사이로 아파트 동 전체에 물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첨벙첨벙’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양말이 젖었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침내 집 앞에 다다랐다. 경비원 말대로 현관 아래로 물이 콸콸 새어 나왔다. 문틈으로 나오는 양도 상당한데, 과연 안은 어떠할까? 조심스레 비밀번호를 누른 후 문을 열었다. 우려한 대로 집 안은 온통 물바다. 거실은 물론이고 작은 방까지 이미 물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심(?)이 깊은 곳은 5센티미터에 달했다. 안방과 옷방은 문지방이 제방 역할을 해 준 덕분에 무사했다. 고양이들은(나지와 바미) 우리가 오자 왜 이제 왔냐는 듯 쉬지 않고 울었다. 젖은 기색이 없는 걸 보니 물이 들이닥치자마자 식탁 위로 피신한 것 같다. 그러게, 우리도 당황스러운데 너희는 얼마나 놀랐겠니.     


 상황은 심각했다. 작은 방에 마련한 손님용 매트와 물에 젖은 와인셀러 전원선, 그리고 매장에 진열하기 위해 마련한 중고 책 200여 권이 물에 잠기거나 젖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장판이었다. 장판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콘크리트 바닥까지 젖은 것이다. 장판을 말리려면 1~2주는 걸릴 텐데. 한겨울에 젖은 장판을 들추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장판 처리는 후 순위로 두고 고인 물부터 밖으로 퍼 날랐다. 경비원과 이웃 주민들도 합심해서 도와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양이 많다 보니 물기를 걷어내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얼추  정리를 끝내고 도와주시던 분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우리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1월이다, 안 그래도 쌀쌀한 날씨에 배관이 터져서 집 밖으로 물을 퍼 나르는 모습이라니. 화재나 침수로 이재민을 접하는 상황은 TV에서만 보는 줄 알았다. 설마 우리가 그렇게 될 줄이야.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하나둘 안부 연락을 건네 왔다. "가게 준비하는 데 이게 무슨 일이냐."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바로 말해."라든가 "창업하기에 앞서 액땜했다. 앞으로 떼돈 벌 일만 남았네."라며 저마다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책이 젖었다는 말을 들은 지인 몇 명은 책을 보내주었다. 어림잡아 100권 정도의 분량. 덕분에 낙담하고 있던 우리도 조금씩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집 안 청소를 마무리했다. 물에 젖은 장판은 말린 다음 새 장판으로 바꾸고, 벽지도 교체하면서 새 집으로 거듭났다. 매장도 본래 계획해 놓은 일정에 맞춰 문을 열었다.     


 오픈하면 떼돈을 벌겠다는 친구의 덕담은 아쉽게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어림짐작 전망을 가늠해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해를 입은 당시 주위 사람들이 보내준 온정과 배려는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매장 준비로 정신없고 빠듯한 경제 상황으로 초조했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었다고 할까. 덕분에 입었던 타격에 비해 생각보다 일찍 일어설 수 있었다. 받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베풀 줄 아는 사람도 되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주위 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3년째 초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는 아물다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분들에게 어떠한 보답을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였다. 남몰래 뒤에서 돕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준비했다. 그 외에다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는 행사를 진행해 볼 예정이다. 참여 인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주위 분들과 소통하며 진행하는 행사를 꾸려 나가고자 한다. 여러분이 자리한 그곳에서도 몸과 마음이 아무는 시간이길 바라며.              


콘크리트 틈새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온 물. 수심(?)이 깊은 곳은 최대 5cm에 달했다.


        

젖은 바닥에 신문지를 깐 모습(왼), 물에 젖은 중고 책을 집 밖에 쌓아 놓은 모습(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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