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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Feb 12.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 7화

베란다에 거미줄 친 파커의 모습

 꿀 같은 휴일을 마치고 맞이하는 서점 출근 날. 책장 옆 ㄷ자 모퉁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반투명한 줄이 쳐져 있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끌려 너풀너풀 춤추는 그것. 바로 거미줄이다.     


 우리가 쉬는 날은 매장 내 거미들에게 있어 천국같은 날이다. 매장 문을 잠그고 나오는 순간부터 거미는 구석진 틈에서 나와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줄을 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눌러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를 통해 왔는지 짐작은 간다. 바로 카운터 좌석 아래, 환기용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겠지.     


 창문에는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충망을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몸집이 작은 거미는 거뜬히 들어올 정도의 크기였나보다. 실내라면 천적의 위협에서 안전하고 먹고 지내기에도 제격이라 판단했던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대체 어떤 것을 먹으며 생활하려는 거지?     


 사실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거미줄은 썩 반갑지 않은 존재다. 비단 매장뿐일까? 대부분 집에서 거미줄을 발견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청소기나 빗자루를 찾으러 가기 마련이다. 겉보기부터 흉물스러운 데다 집 안에 거미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 자신이 게으름뱅이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 허름한 폐가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줄줄이 거미줄 친 모습을 비추는 것은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 시선에서 보면 게으름 그 자체로 보이는 거미들. 하지만 그들도 파리나 모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일찍부터 그물을 쳐 놓고 기다려야 한다. 알고 보면 그들도 부지런한 동물인 것이다.       


 오래전 베란다에서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고정축을 중심으로 외곽부터 나선형의 줄을 만드는 중이었다. 엉덩이를 위아래로 실룩이면 끝부분에서 실이 뽑아져 나왔고 그 실로 줄과 줄 사이를 촘촘히 이었다. 10분 동안 가로세로로 왔다 갔다 하며 줄을 이은 끝에 나선형 거미줄을 완성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집을 만드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감탄한 나머지 집거미에게 ‘(피터)파커’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파커야, 베란다에서 오랫동안 있어도 되니 그 대신 모기랑, 날파리 좀 많이 잡아줘.” 그 후로 파커는 크기가 새끼손가락만 해 질 때까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무럭무럭 컸다. 약 한 달 후, 강릉에 태풍이 불어닥친 이후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지만.     


 거미줄은 외견상 성가시지만, 말벌이나 모기처럼 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 구석에서 저 혼자 알아서 지내겠다는데 꼭 내쫓아야 할까? 그건 너무 매정해 보였다. 하지만 매장은 내가 아닌, 손님을 위한 공간. 손님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리 매장을 방문하는 만큼 그에 따른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매장 뿐 아니라 올라오는 길목에 거미줄을 청소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아침 청소를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거미줄을 치운 지 2, 3일 밖에 안 지났는데 그새 또 만들었구나. 왜 이렇게 부지런히 사는 거니.’ 청소기 전원 버튼을 켜고 천천히 거미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거미는 갑작스러운 기계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라며 책장과 벽 사이 틈으로 숨는다. 안전하게 대피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바깥에 친 거미줄만 빨아들였다.


“너도나도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살려면 이 수밖에 없단다. 마음씨 넓은 네가 이해해 줘”     


 오늘도 거미와 숨바꼭질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마 다음 주도, 다다음 주도 출근하면 보란 듯이 거미줄을 쳐 놓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 때문일까? 허락도 없이 들어온 이 불청객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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