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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n 17. 2022

영국 현대미술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을 보고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일 시: 2022. 6.16 (목)


★장 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어제부터 내린 비는 오늘 아침까지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꾸리꾸리 하던 하늘과 달리 나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그것도 거진 10년 만에 방문하는 예술의 전당에 대한 생각으로 푸르 둥둥 들떠 있었다. 


'와~ 이게 정말 얼마 만인가' 


결혼 전엔 지하철을 타고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던 나였는 데 약 10여 년의 세월 동안 '서울'이란 동네는 어느 지방 못지않게 낯선 곳이 되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경기도에 한 번 정착하니 서울로 한 번 나오는 일이 왜 이리 큰 일처럼 느껴지는지. 어느새 나는 혹시나 차가 막히진 않을지, 아이들 하교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서울'이란 동네는 심리적, 물리적으로 거리감 있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울 나들이는 나에겐 일종의 커다란 이벤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예술의 전당 가서 전시회 관람하자!"라는 친한 언니의 말에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좋아요"를 연신 외쳐댔다.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보다 단지 '서울'로 향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하늘도 내 마음을 아셨는지  우리가 이동하는 도중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비 온 뒤에 부는 바람도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온 우주가 우리의 서울 나들이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한가람 미술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을 홍보하는 핑크색 배경화면이었다. 파란색 우산과 핑크색 배경. 단연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작품 전체적인 특징은 이렇듯 비비드(vivid)한 색감을 사용한 것이다. 언젠가 한 번  회색, 검은색, 흰색으로 점철된 내 옷장을 들여다 보고 '내가 그동안 이런 옷들을 좋아했고 입고 다녔구나. 이제 좀 변화를 줘 봐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내 옷장 안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오늘 전시회를 보고 '그래 바로 이런 색감이야! 내 옷장에서 필요한 색깔이 모두 여기 있었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가지지 못 한, 한편으로 소화하고 싶은 동경의 색들이었다. '나도 좀 봐줘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라고  각자 자기를 뽐내는 작품에서 그동안 내게 없었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작품들이 언뜻 보면 '팝아트'일 거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는 '개념미술'의 선구자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흔하고 친숙한 오브제를 이용해 선과 색에 변화를 주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버림과 동시에 관람자의 경험, 기억 등의 주관적인 생각을 투여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아주 사소한 사물들을 오브제로 사용한다. 일회용 컵, 커피머신, 마스크, 헤드폰, 여행가방, 카세트테이프, 손소독제 등.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물들을 같은 공간에 배치하기도 하고 같은 사물에 색의 변화를 주어 관람자들에게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그의 작품은 크게 탐구(Exploration), 언어(Language), 보통(Ordinariness), 놀이(Play), 경계(Fragment), 결함(Comdination)이라는 5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었고 제목들이 하나같이 'Untitled' (무제)다. 그럼에도 그가 무엇을 표현했는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사물들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에 우리가 미술작품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기도 한다. 나는 보통 미술 작품을 대할 때 '작품에는 분명 작가의 심오한 뜻이 있을 거야.' 란 생각을 전제로 깔고 간다.  그 뜻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답을 찾지 못하면 '역시 예술의 세계는 어렵군'이란 말로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 서사 따위는 없다"라고 당당히 외친다. 예술가라면 없는 서사라도 만들어야 할 판인데, 그런 거가 없다니!! 거 참 이 또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대신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라.",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라!"라고 얘기한다. 같은 작품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느낌, 생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둘 테니 알아서 상상하라는 얘기다.


결국 작품의 마무리를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둔 작가.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그의 한 작품 한 작품은 나에게로 와서 형형색색의 꽃이 되었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왔을 때 먹구름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그 하늘을 올려다 봄과 동시에 나의 오감, 마음, 정신에 숨죽여 있던 세포들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하라고, 상상하라고, 깨어나라고,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라고.


2021년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 내가 글을 왜 쓰는지, 왜 써야만 하는지 그 답을 찾느라 6개월이 흘러 버렸다. 마틴전을 관람 후 그 해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는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 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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