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Mar 28. 2024

고독한 나의 정식

아이가 만으로 세 살 반이 되었을 때 동네에 있는 유아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등교 첫 날, 아이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음 한 편에 구멍이 생겨 그 사이로 쓸쓸함과 허전함이 바람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또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일랜드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기 보다 내향적인 사람이기를 선택했다.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 내가 쓰는 영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말들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 동네에서 아기가 있는 엄마들이 모두 모인다는 toddler group에 나가지도 않았다.     


또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한국처럼 동네에 지하철이나 마을버스 같은 것들이 없으니 어디든 걸어서 가야 했다. 게다가 하루에도 한 두 번씩 꼭 비가 내리는 아일랜드 날씨 탓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라도 나가려고 하면 준비를 하고 나설 때면 번번히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아이와 함께 집에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국 엄마들과 달리 쿠팡도 없고, 배달의 민족도 없고, 김밥 천국도 없고 또 백화점 문화센터도 없이 육아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엄마로서 내가 미안한 것은 나의 성격 때문에 동생도 없는 아이가 친구도 없이 혼자서 노는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할 때였다.      


그러다 아이의 나이가 새롭게 도입된 3세 이상 무료 아동보육 지원 정책에 해당되면서 조금 이른 나이지만, 유아원에 보내기로 남편과 함께 결정을 하게 되었다.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이니 아이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날 아이를 유아원에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가만히 앉았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집안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본 뒤 가만히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정신없이 남편 출근을 돕고, 아이의 도시락을 싸서 옷을 입혀 유아원에 보냈던 바쁜 아침이 다시 떠오르며 배가 고팠다.   

  

칼칼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어린 아이의 식사를 만드는 일과 한국 음식을 잘 먹을 줄 모르는 남편을 위한 식사를 만드는 일만 했던 지난 4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오직 나를 위해서 맵싹한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라고 해 봐야 오징어 맛이 나는 라면 한 개가 전부였지만, 뭔가 조금 다르게 ‘요리’를 해 보고 싶었다.     


먼저, 라면 두 개 정도를 끓일 수 있는 냄비를 선택해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파를 썰어 넣어 파기름을 만들었다. 양파와 스프를 넣어 볶다가 뜨거운 물을 넣고 금방 물이 끓어 오르면  잠시 뒤 면을 넣었다. 마지막에는 계란 대신 낙농국가 아일랜드의 고소한 치즈를 한 장 넣고 불을 끈 뒤 약간 뜸을 들인 다음 그릇에 옮겨 담았다.  

    

김이 모락 나는 라면 앞에 혼자 앉았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아이가 만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김치 냄새가 날까 괜히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나만의 식사가 차려진 시간이었다. 배가 꽤 고팠고, 오랜만에 먹어보는 칼칼한 국물이었지만, 나는 후다닥 먹어치우고 싶지 않았다. 면 한번 후루룩, 국물 한번 후루룩. 천천히 그 순간을 집중하며 음식의 맛과 순간의 고독함을 뱃속 가득히 채워 넣었다.    

 

남김없이 라면을 다 먹고 나자 이마에 송글하게 맺혔던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나는 다 먹은 그릇을 그냥 밀어두고, 소파에 누웠다.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내 가슴 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4년 동안 고생이 많았다. 수고 했네.’라는 소리가 마음을 따라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내는 일이 결혼을 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임신과 출산을 하는 일에 대하여 그리고 24시간 스탠바이하며 육아하는 퇴근이 없는 삶에 대해 이 일을 시작하기 전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모든 순간에 가슴을 졸이며 직면해야 했었다. 게다가 나는 국제결혼을 해서 낯선 곳에서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었기에, 사실은 세상에 막 태어난 내 아이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모든 것이 새롭고 또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보낸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잘 끓여진 얼큰한 라면 앞에 앉았을 때 누군가 내게 어깨를 두드려주며 칭찬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생이 많으니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이 가끔 휘몰아치기도 한다. 그런 감정이 찾아오면 나는 스스로를 위해 라면 한 그릇, 떡볶이 한 그릇을 만들어 내 앞에 잘 차려 두고 고독함을 벗 삼아 먹곤 한다. 그렇게 나를 위해 만든 음식으로 홀로 즐기는 고독 정식은 스스로에게 주는 칭찬이고 또 위로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