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는 해물맛이 나는 바삭한 과자가 있어!
“엄마! 저기 엠버 주유소에 엄마가 좋아하는 해물맛이 나는 바삭한 과자가 있어!”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대건이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것처럼 나에게 다가오더니 도서관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는 대건이를 살짝 안고 자리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해보라고 했다.
어제 남편이 대건이를 방과후 학교에서 찾은 뒤 기름을 넣으러 동네의 주유소에 다녀왔던 모양이었다. 아일랜드의 주유소는 한국과 달리 주유소와 함께 편의점 수준의 작은 가게가 함께 딸려있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주유소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크고 번쩍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남편과 잘 알면서 오랫동안 동네 주유소를 운영하던 빌 아저씨가 주유소와 편의점을 한꺼번에 다른 사람에게 팔고 난 뒤로 우리는 괜히 다른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넣곤 했다. 그러다 웬일인지 오랜만에 그 주유소에 방문을 했던 모양인데, 아일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 브랜드의 과자와 식료품이 가게에 가득 있었다고 했다.
제임스가 주유비를 계산하는 동안 대건이가 가게의 곳곳을 돌아보며 축구 카드를 찾고 있었는데 아이의 두 눈에 ‘신라면’과 ‘튀김가락국수’이라는 한글이 눈에 쏙 들어왔다고 했다. 최근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비행기에서 먹는 신라면의 맛을 알아버린 대건이에게 아일랜드 바닷가 마을 편의점에서 만난 신라면은 그야말로 유레카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대건이가 말한 엄마가 좋아하는 ‘그 해물 맛이 나는 바삭한 과자’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결국 퇴근한 남편의 차를 타고 그 편의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대건이는 나의 손을 붙잡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그 과자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진열장 가득 놓여있는 라면과 수프 사이에 딱 하나 남은 ‘새우깡’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새우깡을 발견하고 엄마가 좋아할 것을 기억하고 뿌듯해하며 어제 이 자리에 서 있었을 대건이의 모습이 떠 올라 괜히 찡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제임스가 나에게 다가와 무려 4유로(5600원) 짜리 새우깡을 굳이 사라며 등을 떠밀었는데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 음식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며 얼른 사진만 한 장 찍고 편의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열장에 놓여 있던 새우깡이 계속 생각났다. 진열장 가득 영어로 적힌 식료품들 사이로 한글로 적힌 새우깡이라는 글자가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아일랜드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는 내 모습 같이도 느껴졌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가끔 내가 경험했던 차별과 편견의 순간들은 어쩌면 다르게 생긴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일랜드인들이 느꼈을 이질감의 감정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불편함이나 불쾌함의 수준으로 바뀌는 때에 저질러진 일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대인배처럼 다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살다 보면 일상의 단순한 순간이 마치 내 인생을 꿰뚫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어쩌면 나는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고, 상황을 관조하는 힘을 키우며 삶을 견뎌내고 또 배워나가며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비록 내가 사는 현실은 어딘지 어색하고 어딘지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이의 따뜻한 사랑 덕분에 나는 그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